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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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기록을 통해 남기려고 하죠. 그러나 어떤 기록도 순간의 모방일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남겨져야 합니까?



누구나 브라운관 속 인물을 좋아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돌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괜찮은 애' 정도는 있을 것이다. 비단 아이돌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나 모델, 뮤지컬배우 등등 여러 분야의 방송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히 예쁘거나 멋있어서, 혹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계기로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열정을 불러낸다. 그러나 이 세계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그냥 호감을 표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상의 이성적 감정을 드러내면 곧바로 정상의 범주에서 쫓겨나 사람들과 나 사이에 두터운 벽이 생성되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팬보다 유독 철없는,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취급을 받는 게 바로 아이돌 팬들이 받는 시선이다. 일명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그래서 누군가의 팬들은 일코를 한다. 잘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해야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적정선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까?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정도껏 사랑을 하는 게 당신은 가능한가? 



내가 사랑한 남자들은 언제나 육체적으론 가장 아름답고, 정신적으론 불안정한 시기의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리석고, 맹목적이며,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했다. 취향이 없고, 말이 많으며, 언제나 노골적으로 애정을 갈구했다. 나는 그 눈멂을 무척 사랑했다.



어쩌면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들어진 이미지에 환호하면서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모순과 굉장히 탐미적이면서도 동시에 높은 순수성을 자랑하는 복잡한 감정. '만옥'에겐 딸기를 넣은 시리얼이 그랬다. 수저를 입안에 넣은 순간, TV 광고를 볼 때의 환상적이던 그 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만옥에게 눈 앞의 시고 무른 딸기는 가짜였다. 진짜는 TV 속에 있었다. 어떤 일들은 실제로 겪는 것보다 눈으로 볼때 더욱 크고 다채롭게 다가온다.



나는 그가 가방이나 신발 따위로 사람의 가치를 재는 인간이라 싫다. 나는 그가 상대방의 얘기는 듣지도 않은 채 자기 얘기만 하는 폭력적인 사람이라 싫다. 나는 그가 원치도 않고 처치 곤란한 애정을 주는 사람이라 싫다. 거부를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 싫다. (중략) 그는 나를 의도적으로 오독한다.

나는 그가 말하는 운명이 뭔지, 그가 말하는 다른 여자가 어떤지도 모른다. 그는 망가졌다. 그는 사람을 좀 만나야 했다. 자기한테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그를 조롱하거나 우습게 만들어서 아, 씨발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 깨닫게 해줄 사람을.



만옥이 자신의 곁을 맴도는 민규를 외면했던 것은 단지 그의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 했을 때 사람들은 노골적인 혐오적 감정을 드러낸다. 만옥이 민규에 대해 생각했던 말들은 곧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과도 같다. 우리는 서로를 오독한다. 애초에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긴 할까. 짝사랑도, 둘의 사랑도, 2D와의 사랑도, 세상 모든 사랑은 결국은 혼자만의 것이다. 'm'은 공중에 흩뿌려진 인공눈을 손에 쥐었다 피는 만옥을 보며 가짜(사랑)을 손에 쥐려 애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m의 사랑은 끝이 났다. 그녀가 만옥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사실 그 자신의 것이었다. 그렇게 가짜 눈은 진짜가 되고, 비록 시작과 달리 허망하게 끝난 사랑일지라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열렬함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타인의 사랑을 멋대로 재단하고 폄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본 경험이 있다면 <환상통>이란 단어가 주는 저릿함에 공감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오독하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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