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달의 유일한 도시 아르테미스의 시민인 '재스민 바샤라'는 EVA(선외활동) 자격증 시험에서 화려한 쇼까지 선보이며 시원하게 낙방했다. 돈이 없어 중고로 구매한 우주복이 말썽이었다. 혼자 살고 있는 그녀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관(棺)처럼 생긴 캡슐형 주택에 몸을 뉘였다. 제대로 설 수 조차 없는 이 공간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개인 욕실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을 자는 일이 전부일 만큼 좁은 공간. 시험에 붙었더라면 지구에서 달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관광 안내일을 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오늘도 재즈는 쉬지 않고 일을 하지만 부자가 되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다섯 개의 거대한 구(球)로 이루어진 아르테미스에서도 재력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극명하게 갈린다. 좁디 좁은 집과 끊임없는 노동도 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이야 말로 달에서의 가난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첫 번째가 아닐까. 마크 와트니가 질리게 먹었던 감자는 겅크에 비하면 사치품 수준이었다. 해조류와 향신료를 섞어 만든 겅크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대표적 음식인데, 재즈의 말에 따르면 그 맛이 아주 끔찍하다고 한다.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에 살고 있어도 삶의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재즈의 직업은 밀수업자. 달의 특성상 유통이 엄격하게 금지된 품목들을 고객의 요청이 있다면 지구에서 공수한다. 단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밀수업자이지만 애는 착해요st 이랄까..



<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생존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다면 <아르테미스>의 재즈는 가난을 벗어나 제대로 된 생존권을 얻기 위해 싸운다. <마션>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아르테미스>를 보고 분명 입가가 씰룩이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화성에 갈 일이 있다면 꼭 챙겨가야 할 물품인 '덕트테이프'라던지, 광활하고 척박한 행성에 나 홀로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좆'된 심경이라던지. 재즈는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의 모습에 더해 좀 더 가볍고 시니컬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천재적이고 생존능력이 뛰어나며, 배짱과 유머감각까지 갖춘 캐릭터이기도 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기기도 하고, 한때의 어리석은 실수로 지금까지도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경찰과 아빠와의 소원해진 관계까지.. 삶이 팍팍한 그녀에게 드디어 한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자그마치 100만 슬러그를 주겠다는 억만장자의 제안. 어딘가 찜찜해 보이는 이 계획에 재즈가 가담할까? 말해 무엇하랴. 승낙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론 이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 과연 그녀는 무사히 미션을 완수하고 개인 욕실을 갖게 될 것인가!



                                                         Artemis, Guercino, 1658


달의 신이며 사냥의 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Artemis). 저자 앤디 위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달의 최초 도시를 만들었다. 인류가 우주를 벗어나 처음으로 건설한 정착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남성인 앤디 위어가 여성을 화자로 설정해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이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저돌적이고 매력 넘치는 '재즈'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다. 어렵사리 백만장자의 꿈에 한발짝 다가섰으나 고용주에게 사고가 생기고, 본의 아니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 재즈가 도피생활을 하던 도중 범인과 대치를 벌이는 장면이나 끝이 날카로운 파이프를 무기로 쓰는 모습은 신 아르테미스를 연상케 한다.


전혀 다른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세세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스릴러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일이다. 이제 막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지만 전작의 놀라운 성과를 보면 이제 앤디 위어 특유의 방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아르테미스> 역시 벌써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다고 하니 또 한편의 걸작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도 낭만적인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에서 펼쳐지는 범죄와 스릴의 현장으로 관광을 떠나보시길.



그 순간 무릎이 꺾이면서 무너져 내렸다. 달은 정신을 잃기에 좋은 곳이다.

쓰러지면 아주 부드럽게 바닥에 부딪히니까.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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