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 스프 맛있게 끓이는 법


하나. 적정 온도를 유지할 것. (고온에선 끓어 넘친다.)

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저어줄 것. (겉에 막이 생기는 것을 방지!)

셋. 고독을 견딜 것.




사람들은 익명성 앞에 솔직해진다. 요리 동호회 채팅으로 알게 된 이들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면서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던 이 피상적인 관계는 막을 내린다. 사교적이지 않지만 진솔한 매력을 가진 작가 지망생 현수와 어딜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집 잘가는 게 목표인 예쁘고 착한 홍아.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족발집에서 알바하지만 요리사가 꿈인 정선.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세 사람이 만났다. 홍아에겐 미주알 고주알 다 떠들면서 현수에게는 퉁명스러운 정선은 어딘지 모르게 속을 알 수 없다. 분명한건 이들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는 것.



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실수를 하고요. 하지만 실수한 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나를 보았다.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사과란 말로만 '미안하다'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실수한 것에 대해 어떤 불이익이든 대가를 치르겠다는 뜻 아닌가요? 세상은 다 이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다 이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자신이 '다 이런 것'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요."  p.156



현수에겐 분명 매력이 있다. 키 크고 무뚝뚝하고 할말 다하는 성격이라 남자들이 기피하는 타입인 그녀. 방송국에서 선배 작가가 자신의 시놉시스를 표절했음을 알고 담당피디에게 찾아가 묻자 "이 작가, 미안해요. 그렇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예요."  태연히 인정하고 영혼없이 사과한다. 조용히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말한다. 세상이 다 그렇다는 건 당신이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세상이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은 다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상처를 주는 거잖아. 다른 사람과 사는 시간보다 나하고 사는 시간이 훨씬 기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는 쪽이 낫지 않니?" p.158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만큼 나를 망치는 길은 없다. 늘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는 데 익숙한 홍아보다는 현수처럼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 심어 놓은 환상을 먹고 자란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생각했던 그가 아니다. 그저 내가 물 주고 햇빛에 내놓고 키운 꽃 같은 존재다. 꽃은 원래 그대로인데 이름 붙이고 의미 붙이고 애착한 건 나다. 꽃이 내게 이름을 붙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뜻이었다. p.180



선천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현수,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한 홍아, 어릴 적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평생 단 한 명의 여자하고만 사랑하겠다던 정선, 다신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정우에게 찾아온 운명적 사랑까지.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이유와 변명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다 채워지지 않을때 사랑은 배(倍)가 된다. 내가 사랑했던 것이 당신인가, 내가 키운 환상인가. <맛의 생리학>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살짝 바꿔 묻는다. "당신이 누구와 섹스했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드리겠습니다." p.57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당신을 말해주는 법. 과연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당신은 사랑을 하며 고독을 견딜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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