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진부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 초능력


나는 초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물을 좋아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마블사의 히어로들까지.. 판타지, SF장르는 단조롭고 따분한 내 삶을 활기차게 해주는 알콜같은 존재다. 호모도미난스는 사람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정신조종능력자'들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어떻게 이런 힘이 생겨났는지에 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꽤 그럴싸 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초능력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결코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란 얘기다. 어차피 판타지라는게 다 뻥 아닌가. 작가가 설정한 장치와 배경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읽는다면,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물들


이야기는 정신조종능력자 즉, 흰원숭이들이 속한 '백원단'이라는 단체에 의문을 품은 흰원숭이 '천슈란'이 중국의 사형수들을 상대로 잔혹한 실험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형수는 천슈란의 지시에 자신의 눈알을 빼버리고, 겁먹은 어린 자식의 목까지 조르며 타인에 의해 의식을 지배당한다. 잔혹한 행위를 말그대로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행하는 천슈란이란 캐릭터와 정신조종능력의 실제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건, 권력욕에 찬 악의 캐릭터를 여성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권력과 욕망은 남성의 것이라는 낡은 인식을 날려버리는 신선한 설정이 아닐까.


주인공 '안시현'은 아내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난 뒤로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중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백원단의 수장 '류잉춘'의 눈에 띄어 정신조종능력이 전이되는 '금강승'을 통해 흰원숭이가 된다. 안시현은 주인공으로써의 모든 덕목을 갖췄다. 물론 류잉춘 박사가 오랫동안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아낸 결과였지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 주인공이 좀 더 고난을 겪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처음 등장은 비탄에 젖은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아마도 '지배하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안시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지배하는 자를 '지배하는 자'.


일가족 살인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은 일본소년 '스스미'. 의문의 '머리띠를 한 남성'에게 가족이 살해당하는 현장에 있었지만 스스미는 사건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힘'을 가진 미성숙한 소년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범죄스릴러가 연상되는 극초반부 속 스스미의 등장은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소설 속 가장 비운의 인물을 극의 흐름은 매몰차게 파멸의 길로 이끈다. 아마도 소설 속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 홀든 콜필드를 무책임하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혐오하면서도 스스미는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한다. 이처럼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해, 이를 스스미가 극 속에서 읽게 함으로써 작가는 독자들이 좀 더 스스미라는 인물을 이해하도록 돕고있다. 소년이 겪고있는 혼란, 슬픔, 분노...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생겨버린 '힘'.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것임에 비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하여


호모사피엔스에서 한 단계 더 진화된 신인류, 호모도미난스. 소설은 권력을 가지려는 자와 없애려는 자의 대결을 다룬다. 말 한마디로 타인을 통제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무적의 존재에게 평범한 인간은 적수가 될 수 없다.


극 중에서 그들에게 유일한 제동장치는 '충동사'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자살충동 현상을 작가는 어떤 의도로 넣었을까? 그저 거칠 것 없는 호도모미난스들에게 약점을 주기위해? 아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노력없이' 손에 넣을 수 있기에 거기서 오는 허탈감이나 권태로움? 류잉춘 박사의 오랜 연구에도 밝히지 못한 난제를 내가 감히 마음대로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호모도미난스는 아직 불완전한 존재가 아닐까. 초능력을 지닌 진화한 존재이지만, 그들 역시 결국엔 인간일 뿐이다. 권력을 쥐고 신처럼 구는 인간말이다.


백원단의 최종목적은 정신조종능력을 없애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흰원숭이는 비생산적인 개체이며 궁극엔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게 단체의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평범한 인류와 그들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미 세상에는 소수이지만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머리가 비상하다거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예지력이 있다거나, 용한 무당이라던가... 큰 틀에서 보면 초능력과 크게 다르진 않지 않을까? 사실 나의 입장은 백원단과는 다른 이념을 가진 '방바재단'쪽에 가깝다. 정신조종능력을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쓰자는 그들의 사상이 나에게 좀 더 타당하게 다가왔다. 


변호사 '캄팻'은 오랜시간 올바른 신념으로 방바재단의 조력자 역할을 해왔지만, 금강승을 통해 흰원숭이가 되고 권력을 맛보자 그 힘을 잃을까 두려워 천슈란의 악행에 가담한다. 그도 결국 권력에 지배당했다.


소설 말미에 안시현은 교도소로 찾아가 아내를 숨지게 한 자와 대면하고 분노하지만, 그는 아무일도 벌이지않는다.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갔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결국엔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막대한 과제가 있는 만큼 다시 답을 찾아야 하겠지만, 아마도 그 길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왜냐면,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닌 지배하는 '인간'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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