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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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쥔 손에서 비죽 튀어나온 천 조각을 마술사가 현란한 손길로 잡아 뽑는다. 숨겨진 공간이랄 것도 없는데 끊임없이 뽑혀 나오는 색색의 천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이다. 충분히 믿을 수 없이 많은 양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술사는 정말이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천을 뽑아댔다. 뽑고 또 뽑고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당신은 대체. 이것이 472 페이지,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도록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노벨문학상 수상작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난 한줄평이다. 분명 난 한 권을 읽었는데 열 권은 읽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바다를 찾아나선 이들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무지에 '마콘도' 라는 마을을 세우며 장장 100여년의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가 시작된다. 워낙 외진 곳이라 다른 마을과의 교류가 어려워 가난했지만 평화로웠던 마을은 집시들의 등장으로 반전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집안의 돈을 탈탈 털어 집시에게서 희귀한 물건들을 사들이며 일명 사업병에 걸린 듯한 모습을 보였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소설에서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그 진귀한 물건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를 보았을 때는 아하, 이것이 바로 마술적 리얼리즘이구나 싶었다. 여기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를" 말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의 단순명쾌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큰 혼란만이 남았다. 이를테면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불면증이 마을 전체로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가 하면, 죽어서 유령이 되어도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등 초반부의 이야기는 우화를 읽는 듯한 기분으로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

 


문제는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앞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뒤로 왔다가, 같은 말만 되풀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구 자식이었더라같은. 이마를 짚은 손과 찌푸린 미간은 펴질 생각을 않고 한숨과 함께 잠시 책을 덮으니 표지에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아아, 이것은 경고였구나. 읽다보면 눈치를 채겠지만 이 책은 무한 돌림노래 같은 소설이다.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이 딱히 없고 저마다 장대한 사연을 지닌, 범람하는 인물들의 홍수 속에 선조의 이름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후손의 이름을 지어대는 통에 중도포기를 수없이 갈등하며 완결까지 겨우 도달했다. 그러니까,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를 낳고 문란한 아우렐리아노는 전쟁통에 17명의 아우렐리아노를 낳고 계속해서 또다른 아우렐리아노들이 나오는데 이 끝도 없는 아우렐리아노는 돌림노래의 일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아르카디오와 우르슬라 등등 다른 버전도 넉넉하다. 이렇게 세대간에 반복되는 이름처럼 부엔디아 가문의 삶도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취한다. 친족 간에 싹트는 음습한 욕망, 이루어지지 못하고 재가 되어버린 애끓는 사랑,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뒤늦은 속죄, 전쟁과 대량학살 속에 자행되는 잔혹한 죽음들, 그리고 삶의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좌절감, 허무, 고독까지. 다소 자극적인 소재들이 실제 콜롬비아 역사와 맞물려 진행되는데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각각의 특징이 뚜렷하여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문장표현은 정말 환상적이다. 누가 누군지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술술 읽어나가기에 좋은 소설이다.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대신에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도 역시 길가로 난 문 쪽으로 가서는 행진을 벌이는 곡마단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들었다. 그는 코끼리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황금빛 옷을 입은 여자를 보았다. 그는 구슬퍼 보이는 단봉낙타를 보았다. 그는 네덜란드 여자처럼 옷을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서 수프 국자로 튀김판을 두드리는 곰을 보았다. 그는 행렬의 끝에서 바퀴로 재주를 피우는 어릿광대들을 보았고,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이 다 지나간 다음에 다시 뒤에 남은 비참한 고독과 마주 섰으며, 밝고 넓은 길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늘에는 개미들이 날아다녔고, 길에 남은 몇몇 구경꾼들은 미지의 세계를 기웃거렸다. 그러자 그는 곡마단 생각을 하면서 밤나무 밑으로 갔고 오줌을 누면서도 곡마단 생각만 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기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린 병아리처럼 머리를 두 어깨 사이에 처박고 이마를 밤나무에 기대고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튿날 아침 11시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뒷마당으로 나갔던 산타 소피아 드 라 삐에다드는 콘도르들이 날아 내려오는 것을 보고 웬일인가 하고 둘러보다가 밤나무 밑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을 발견했다."  p. 298-9

 

 

서른두 번의 전쟁을 치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우연히 마을을 지나는 곡마단을 보고 어린 시절의 향수에 잠긴다. 일찍이 부인을 잃고 서른두 번의 실패와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무수한 죽음의 위기에서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고독 앞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 소설이 콜롬비아 역사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행위를 폭로하는 소설이라는데 사실 나는 세계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이 긴 이야기에서 내가 읽어낸 것이 겨우 고독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 긴 세월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 황금물고기를 만들고 다시 녹이기를 반복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수의를 짓고 푸르기를 반복하는 여인, 남편의 죽음 후 스스로를 가두고 집을 제 무덤 삼아 천천히 죽어가는 여인이나, 정부의 은폐로 존재하지 않는 대량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서 홀로 양피지를 해독하는 모습처럼 전반에 걸쳐 스며있는 고독의 면면이 자꾸만 숨통을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치열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고독에 잠긴다. 나는 왜 사는 걸까. 꾹꾹 눌러둔 바보 같은 질문이 또다시 고개를 쳐든다. 겨우겨우 지루한 시간을 죽이고 틈틈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결국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삶을.

 

 

그냥 그런 것이다. 오지에 마을을 세우고 외지인들이 들어오고 체제와 종교가 생기고 집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마을이 번영하고 둑을 세워 배가 오가고 기찻길로 많은 것들이 드나들고, 그렇게 이룩한 모든 것들을 사방에서 호시탐탐 달려들어 갉아먹는 개미떼와 많은 것을 휩쓸어버린 대홍수, 빗발치는 총알에 쌓여가는 시체도 태어나고 자라 겨우 찰나를 살다가 죽음을 맞는 삶처럼 잔혹해보여도 그저 세월의 흐름일 뿐이겠지. 결국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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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6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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