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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ㅣ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리를 거스른 변화는 모순으로 귀결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강력한 진실을 발견한다.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 속 인물들은 혁명 이후 소련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하듯 계급이라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충돌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우생학에 몰두하던 반혁명주의자 ‘쁘레오브라젠스끼’ 교수는 실수로 짐승(개)과 인간(프롤레따리아)의 혼종 ‘샤리꼬프’를 창조하며 붕괴(혁명)를 일으킨다. 이름도 없던 떠돌이 수캐에게 일어난 급작스러운 계급 상승은 그가 통제 불가능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소설의 초반부에 자본주의를 맛본 개가 교수의 권력에 편승하는 데 만족하지만 인간으로 신분이 격상한 후에는 다소 뻔뻔할 정도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교수의 권력을 강탈해나간다. 이는 개목걸이에서 넥타이로 등록증과 거주 공간, 결혼이란 상징적 매개체로 점차 확대된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인물들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샤리꼬프는 자신을 한 명의 시민으로 인정해주는 프롤레따리아 계급 ‘시본제르’의 꼭두각시가 되고, 보조 의사 ‘보르멘딸리’는 어려울 때 자신을 보살펴준 교수에게 살인도 불사하겠다는 큰 충성심을 보인다. 그러나 시본제르와 교수는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인 척 행동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알고 이용하는 자들이다. 시본제르가 샤리꼬프를 이용해 비겁한 수로 교수를 끌어내리려하고, 교수는 보르멘딸리를 이용해 샤리꼬프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어떤 발전 단계에 있는 동물이든 간에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다룰 수는 없는 법”이라던 교수의 말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모순을 보여준다.
1920년대의 시대상을 잘 표현해냈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이 개인적으로 서글프게 다가온 장면이 있다. 샤리꼬프가 떠돌이 개 시절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한 여인을 가엾게 여기고, 인간이 된 후 온갖 거짓말로 구슬려 결혼을 약속하는데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고 관계가 틀어지자 권력을 빌미로 그녀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렇다. 개-인간은 그녀의 상사였다. 소설은 급진적이고 인위적인 변화를 부정하지만 주체를 바꾸니 절실해진다.
이렇듯 미하일 불가꼬프는 순혈주의에 빗대어 스탈린 체제를 풍자했다. 교수는 자신의 실패가 실험체의 출신에 있다고 판단했지만 샤리꼬프를 처리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 다시 개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작가는 비합리적이고 강압적인 시대의 종말을 절실히도 바랐을 것이다. 실제로 <개의 심장>은 정부의 검열을 받았고 빛을 보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소련의 해체는 그가 옳았음을 증명한다. 개가 인간이 되었다 한들 심장은 개의 것, 즉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