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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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러운 상실과 그 부재를 몸소 깨닫기도 전에 주변에서 쏟아지는 상투적인 위로는 오히려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듯 나를 둔감하게 만든다. 현실감 없는, 마치 연극과도 같은 상황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일상에서 떠나간 이의 부재가 느낄 때(가령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당신의 머리카락을 볼 수 없다거나, 당신의 잔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뒤늦게 몰아치는 슬픔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게 마련이다. 맥스 포터의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잃게 된 한 가족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가 화자가 되어 고통의 침잠에 함께 한다. 예사롭지 않은 말하는 까마귀의 등장은 이 소설이 우리에게 익숙한 슬픔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슬픔은 눈물처럼 쉽게 흐르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악몽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기괴한 이미지와 폭력성으로 발현되고, 남편에게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아이들을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부담감, 새 인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형상화된다. 아빠와 아이들 곁에 머무는 까마귀는 시험하듯 불쾌한 말을 서슴없이 늘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에게서 가족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들이 둥지를 지키기 위해 함께 고통을 유영하는 모습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받는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란, 다 잘될 거라는 공허한 위로는 그저 공허하게 흩어질 뿐이란 것을 알기에 저자 맥스 포터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생략하고 독자의 눈앞에 들이미는 한 가족의 고통은 내 안의 까마귀와 마주하게 한다. 음산한 울음소리로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저마다의 시간이 흐르면 절망은 끝내 날아갈 것이라고, 그러니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잔혹동화처럼 때론 시처럼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 얇은 책의 무게감이 맥스 포터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든다.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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