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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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물네 살의 아일린은 굉장히 불안정하고 결핍된 인물이다.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고 자학적이면서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것에 흥미를 느끼고 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저자 오테사 모시페그는 그동안 청소년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방황의 감정을 성장을 거부한 미성숙한 주인공을 통해 진솔하고 건조한 문체로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폭언을 일삼는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냉담한 직장 동료들이 인간적 교류의 전부인, 공상(空想)속에서조차 지독하게 외로운 투명인간의 삶 그리고 사랑에 구원받길 원하는 어리고 무력한 존재. 당신이 <아일린>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보편적 불행에 대한 이야기다. 내 안에서 쉼없이 몰아치며 고통을 자아내지만 입밖에 내는 순간 식상해져버리고 마는 만연한 불행에 대한 쓸쓸한 회고다.




"지옥에 떨어질 거다." 내가 손목을 그을 때 아버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그렇게 말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두려웠다. 천국은 믿지 않았으나 지옥은 진짜 있다고 믿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항상 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자살할 생각은 없었다. p.86




아일린의 페르소나는 데스마스크다. 불안과 억압된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채 자라버린 자에게 세상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이러한 분노를 감추기 위한 그의 행동은 늘 어딘가 과장되고 어색하다. 우울증, 섭식장애, 자기혐오, 강박장애와 좀도둑질까지 온갖 문제를 끌어안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그는 자주 딜레마에 빠져 "아버지를 죽이고 싶으면서도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진 않는다는 것"처럼 양가감정에 허우적거린다. 짝사랑하는 '랜디'를 스토킹하면서도 성적 흥분이 일면 가학적일 정도의 태도를 취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참을 수 있는 한계까지 자신의 더러움을 견디기도 하며 풍경처럼 녹아들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길 원하는 마음. 난 아일린에게 깊히 공감한다. 혹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누구나 모순의 시기를 지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먼지로 뒤덮힌 집은 거실 한구석에 작동을 멈춘 텔레비전의 모습과 닮았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지만 손 대지 않고 방치해 케케묵어버린 것들처럼. 이러한 집안 풍경은 고장난 안락의자에서 술에 취해 죽은 듯 잠에 빠진 아버지나 집을 드나들 때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심장에 내리꽂히는 상상을 자연히 떠올리는 것과 더불어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케한다. 온통 어둡고 음습한 것에 "면역" 되어버린, 천국은 믿지 않지만 지옥은 있다고 믿는 아일린. 이렇듯 누군가에게 집이란 지옥일 수도 있는 것이고 때문에 비록 배기가스를 뿜어내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차일지언정 훌쩍 사라져버릴 수 있는 달콤한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주먹으로 배를 두드리고 얼마 안 되는 허벅지 살을 꼬집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내 존재가 줄어들면 내가 겪는 문제도 적어지리라 진심으로 믿었다. 어머니의 옷을 입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테다. 별로 크지 않았던 어머니의 몸집만큼도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말했듯이 나에겐 어머니의 인생, 여자의 인생이 철저히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일만큼 싫은 게 없었다. 물론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아버지에게 그 두 가지가 모두 되어 있었다. p.263




아일린의 여성성에 대한 수치심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자식들을 방치하고 술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아일린은 그 울부짖음을 피해 다락방으로 도망쳤다. 아버지와 하느님을 한데 묶어 비난을 퍼붓던 어머니보다 죽은 개 '모나'에게 더 애틋함을 느낀다. 예쁜 외모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언니 '조우니'는 어쩌면 같은 이유로 집을 나갔을지도 모르고 가끔씩 집에 오는 고모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무관심하다. 주변 여성의 부재가 혐오감을 키웠을까. 모두가 떠난 자리에 아일린은 홀로 남아 아버지를 돌본다. 살을 에는 추위처럼 수치심과 혐오감의 정체는 또 다시 외로움으로 귀결된다. 그때 모든 편견을 깨뜨리고 "완벽하게 행복한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리베카'의 존재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몇 마디 대화로 마음을 빼앗긴 아일린은 더 이상 랜디나 아버지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들쥐로 맛봤던 권력의 힘은 아버지와 한몸이던 총을 손에 넣으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일으키고 이는 리베카 앞에서 설렘에 들떠 허세를 부리는 아일린의 모습과 겹치며 독자로하여금 불안감을 조성한다.




나는 그 현관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때 마치 하느님의 의지가 작용하기라도 한 듯, 마당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고드름 하나가 갈라졌고, 내 볼을 향해 떨어진 그 고드름은 예리한 칼날처럼 눈에서 턱까지 길게 긋고 지나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약간 따끔했을 뿐이다. 피가 고이는 느낌이 나면서 한기가 유령처럼 상처로 스며들었다. (중략) 내게 그것은 언젠가 다른 사람이었다는, 탈출한 그 젊은 여자, 아일린이었다는 표시일 뿐이다. p.361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4년의 시대상은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주지 못 한다. 백여 년 전 선원들의 금주를 위한 합숙소로 지어진 지금의 무어헤드(소년 교도소)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변화를 거듭했지만 언제나 남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도 아마 그곳에 갇혔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여성으로서 겪는 억압을 은유적으로 시사한다. 남편의 권태에 자신을 탓하고 돌아온 남편의 손길에 행복한나머지 아들의 고통을 묵인한 미시즈 포크. 작중 그의 이름이 나왔던가. 그저 온기가 절실한 또 다른 아일린이었을지도. 그렇다면 왜 오십 년 후일까? x빌에서, 아버지에게서, 무력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며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이 소설은 노인이 된 아일린의 회고록이다. 가끔씩 어린 날의 자신을 변호하기도 하고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기색도 내비치지만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이렇게 극렬히 불행했던 자신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온전한 나로서 행복감을 얻었다는 것이 아닐까. 갑작스레 x빌을 떠나오던 길에 마주친 사슴은 서툴고 유약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상징하지만 곧이어 허벅지를 토닥이는 남자의 두툼한 손은 평탄하지 않을 앞날을 암시한다. 그날밤 리베카를 만나러 가던 길에 훔친 예수의 담요가 아일린의 혹독한 여정에 위로가 되어주었길 바란다. 늘 좌절 뿐인 크리스마스였지만 언제나 희망을 놓지 않았던 모든 아일린을 위해.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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