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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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유년 시절은 위험하다. 보편적으로 미화된 유년기는 순수했던 그 시절로 자주 회상되곤 하는데 기억의 더께를 거쳐 제일 밑바닥을 들여다본다면 온통 불순물로 가득할 것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순수는 그 시절이 아닌 뭘 모르는 나였으며 평생의 삶을 좌우할 조타를 잡은 이는 결코 내가 될 수 없다. 자전적 경험을 담은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는 한 여성의 생애를 다룬 단편집으로 예리하게 짚어내는 감정선이 인상적인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인 온타리오주에 위치한 핸래티는 마치 경계선이라도 그은 듯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을의 계급이 나누어진 곳이다. 엄밀히 따지면 '로즈'의 가족은 하층민들이 많은 웨스트핸래티에 속하지만 강가에 위치한 집탓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 동떨어진 집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삶을 살게 될 로즈의 정체성과도 같다. 그리고 가족들. 잦은 마찰을 빚는 새어머니 플로와 매질을 일삼는 아버지, 이복동생인 브라이언. 웨스트핸래티의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녀는 아이를 배고 어딘가로 옮겨졌다가, 다시 돌아와 또 아이를 배고, 또 어딘가로 옮겨지고, 또 돌아와 아이를 배고, 또 옮겨졌다. 라이온스클럽이 비용을 대서 프래니에게 불임수술을 시키자, 돌아다니지 못하게 가두자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그녀가 돌연 페렴에 걸려 죽으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 p.57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친족에게 겁탈 당하는 '프래니 맥길'의 뭉개진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간헐적 호흡과 울부짖음을 하나의 놀이처럼 낄낄거리며 목도하는 아이들, 거듭된 임신과 '어딘가로 옮겨진다'는 공포스러운 표현,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결' 되었다는 문장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장애를 가진 여성 프래니에게 가해지는 '보편적인 의미'가 없는 폭력은 목격자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배제시키고 철저한 관찰자로 둔갑시킨다. 학교에도 가정에도 울타리는 없다. 선생도, 학생도, 부모도 아무도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웃으며 행해지는 죄악 속에서 희생양의 자리는 언제나 공석이고 그곳에 앉는 것은 언제나 약자다. 청중들에게 뒤따르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안도감뿐. 나의 어린 시절에도 더러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과 소문들을 떠올려보면 가끔씩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른이 된 내가 무법지대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 커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프래니와 같은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학교에 코텍스가 전시되었을 때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를 두고 "나 같으면 자살, 하고 만다." 조급함이 서린 말을 내뱉던 이름 없는 학생처럼, 단 한마디 혹은 무관심한 시선이면 충분하다.




목이 비틀린 소녀 '베키'의 아버지를 때려 죽인 '해트 네틀턴'은 아주 잘 먹고 잘 살았다. 백두 해를 넘기고 장수를 기념해 라디오에 나온 그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버기 경주의 위험성에 대해 떠들어댄다. 하지만 정말 위험했던 건 버기 경주 따위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아니던가. 상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맡듯 '장엄한 매질'을 일삼던 아버지와 야생 백조의 아름다움을 논하던 목사의 추행이 그것이다. 폭력에 노출된 유년기는 로즈에게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야기시키고 그릇된 남성관을 갖게 한다. 투철한 기사도 정신의 '패트릭'에게서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뒤 그가 휘두른 폭력에 안도하고, 어린 나이에 부유한 농가로 보내져 온갖 핍박과 폭행을 당한 플로가 그곳을 탈출하고도 계속해서 그들의 초대에 응한 이유 역시 결핍된 감정에서 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다른 곳에서 느꼈던 질서와 조절의 감각이 되살아나, 결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난처하고 서글픈 빈곤을 보았다. 헨쇼 박사의 집이 해낸 일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향집의 자연스러움,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던 배경을 파괴한 것이었다. (중략)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도 때도 없이 돈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산 물건을 놓고 악담을 하며 그것을 공짜로 얻은 건지 아닌지 입씨름하는 것을 의미했다." p.131




'자몽 반 개'에서 싹튼 가난혐오는 '헨쇼 박사'의 생활방식과 쓰는 언어(가령 로즈를 노동 계층이라 칭한 부분)의 차이가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는 계기로, 또 사랑하지 않는 이와의 결혼으로 이어진다. 진취적인 인물로 보였던 헨쇼 박사 조차 패트릭과의 관계를 두고 대단한 성과라 일컬었으니 어린 로즈의 허영은 그 뒤로도 10년을 '행복에 대한 환상'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었다. 낭만을 부르짖듯 왕좌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코페투아왕에 자신을 대입하던 남자와 거지 소녀라 지칭된 여자. 그렇다면 부유함에서 오는 오만과 가난한 자의 오만엔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클리퍼드'가 '정태적인 모순'이라며 결혼생활의 권태를 당당히 선언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처럼. p.359 로즈가 그토록 원했던 특권은 어떤 이들에겐 날 때부터 그냥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 같아야 하며, 지도가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 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이게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성향이란 말인가. 작중에서 아버지가 본 플로를 가르킨 설명인데 그에게 다중인격적 요소가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처럼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즈의 아버지와 같은 이들은 많다. 이성과 타인,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는 오만. 오판은 여기서 온다. 소설 전반에 걸쳐 로즈는 꽤 자주 확언한다. 헛간에서 남몰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읊조리던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 확신한 것처럼 계속해서 타인을, 자신을 속단하는 실수를 범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쉽게 유대감을 느끼고 쉽게 사랑에 빠지며 또 상처받고 도망친다. 외국문학임에도 이야기가 피부로 와닿았던 건 올곧지 않은 로즈의 캐릭터에 있다. 누군가 지난날의 좌절이 나를 성장시켰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노라 대답하겠다. 보통의 소설이나 영화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바꾸는 단 하나의 사건은 없다. 모순을 저지르고 거듭 실수하며 부딪치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과정, 말 그대로 인생이다. 그 더딘 흐름을. 딸 '애나'를 통해 처음으로 가정적인 삶과 안식처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립할 힘을 얻고 '빵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그리고 '사이먼'의 죽음이 가져온 어긋난 충격은 로즈에게 또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된다.




"그녀가 늘 떨쳐내지 못했던 이상한 수치심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연기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허튼 것에만 주목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만 전달했던 걸 아니었을까, 항상 그 이상의 어떤 것, 섬세한 결이나 깊이나 빛 등이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포작하지 못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꼈다. (중략) 그때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때로는 실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p.367




세월은 흘러 핸래티와 웨스트핸래티를 가르던 차이는 사라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중년의 로즈는 이제 완벽하게 로즈를 연기하고 어릴 적 친구 '랠프 길레스피'는 완벽한 '밀턴 호머'가 되어버렸다. 살면서 자주 느끼곤 했던 출처 불분명의 수치심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옛친구와의 조우에서 유년의 자신을 마주하며 희석된다. 이는 동생 브라이언이 혐오하는 대상들로 남매가 펼치는 언쟁 속에서 우애를 느끼고 그들의 뿌리가 여전히 웨스트핸래티에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결합으로 세상에 나온 불완전한 존재들. 어쩌면 우리가 저지르게 되는 바보같은 짓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실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더디더라도 우리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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