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리커버 특별판)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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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빠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순간순간 우리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과 까마득한 어린 날의 기억, 젊은 세대의 불안정함을 담아낸 김애란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 <침이 고인다>. 역시나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소설엔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또 한번 깨닫는다. 이 단편집은 '방'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져 있다. 집이 아닌 방은 나만의 공간으로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나는 나답게'가 실현될 수 있는 곳으로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삶과 고군분투하며 비루한 현실과 타협해간다. 성장통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끝은 영영 알 수 없을테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고 결국엔 누구든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삶에 있어서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이 성장통은 수월하지 않은, 고독하고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공감을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위트가 가미된 소설이지만 웃음에 어딘지 한숨이 베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른 한국 문학처럼 분명 무거운 글이지만 왠지 그 무게가 싫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p.15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p.151


"괜찮은 곳 같은데 왜 그만두셨어요?"

'취업 경로'가 밝혀질수록 나는 좀 쩔쩔맨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내가 그보다 낫다고 느껴서인지, 그가 나를 자신보다 낫다고 느껴서인지. 나 스스로 누군가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오래된 배려심이랄까, 그런 습관에 쫓기는 기분이다. 사내가 혹시라도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례함을 느끼지 않을까 초조하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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