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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사노요코 #사노_요코 #아침에눈을뜨면바람이부는대로 #아침에_눈을_뜨면_바람이_부는_대로 #북폴리오 #私の猫たち許してほしい
어쩐지 요새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을 것만 같은, 주변의 조그마한 변화에 무덤한 듯 민감하게 이것저것에 대해 조근조근 읊조리는 그 톤이 좋다.
"고양이는 나한테만 와서 기댔다. 고양이는 나를 용서해주었을까. 용서해주지 않았다 해도 나 때문에 마음을 다친 일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내 쪽에서 하룻밤, 아들 이불에서 세 밤을 자고 또 어딘가로 가버렸다./ 다음 해, 또 겨울이 다가올 듯 쌀쌀한 날, 고양이가 돌아왔다. 한층 더 야생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빤히 보더니 휙 시선을 돌렸다. 그때는 하룻밤만 자고 가더니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곧 겨울이 올 것 같은 밤이면 아들과 나는 고양이를 기다린다. 나와 아들은 떠난 고양이까지 키우고 있다." _127쪽 (내고양이들아, 용서해줘)
이 책은 사실,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 (私の猫たち許してほしい)>가 원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짬짬히 등장하는 고양이 그림! 엄청 좋다. (게다가 원작 삽화라니까!)
표지도 뭔가 (질투나는) 고양이 커플... (웃음)
"우주를 쥐어뜯어서라도 시간의 흐름을 막고 싶을 때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지구를 걷어차서라도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를 어떻게 같은 시계로 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것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같은 일이어서 시간이 없는 세계에 갈 수는 없다./ 줄었다 늘어났다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도 줄었다 늘어났다 한다." _68쪽 (세월은 흘러간다)
<죽는게 뭐라고>로 한국 독자들에게 화끈한(?) 모습을 보여 준 작가의 초창기 수필은 되려 소소하게 그리고 사뿐하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면 더 옛날의 생각이 나는 걸까, 작가의 과거가 반짝인다.
나는 사실 어릴 적 일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
마흔 즈음 썼다던 이 책에서 조금은 먼지앉은 파삭한 종이향이 난다.
난 수필은 좀 옛날의 그 올드(old)한 듯한 느낌이 취향이라서, 매우 마음에 든다.
(호불호는 갈릴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관찰과 생각과 감각과 감동이 나는 좋다.)
엄마한테 궂은 말을 들으며 혼나는 모습도, 독일에서의 생활도, 대학에서의 일들도, 누군가를 마음에 뒀던 이야기도, 고양이들도, 더 어릴 적의 학창시절까지도-
나한테 나눠줄 수 있다는게 어쩐지 감격스러운 저녁이다.
글로 나눠 준 추억이 책에 나왔던 그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같아서, 고맙다.
전학 온 여학생을 다짜고짜 불러 내 때렸던 그 친구도, 부뚜막을 닮았다던 그 고양이도, 독일 주인집 할머니도- 다들 잘 지낼 것이다. 아니 잘 지냈을 것이다.
다만 이 책, 책끈이 없는게 아쉽다,
뭔소린가 싶겠지만, 아니 정말로 책등에 붙은 하늘색과 민트색의 중간인 그 색의 끈조각의 책끈이 정말로 있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 끈으로 읽는 속도를 한 숨씩 쉬어 갈 수 있도록.
사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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