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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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분명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고전. 동물농장. 커서 조금은 세상을 더 알고 읽으니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같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된 역사 공부의 필요성도 느꼈다.



수퇘지 메이저가 죽기 전 설파하고 간 그의 지론에 감화를 받은 동물들은 그의 사후에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동물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 중, 말재주는 없지만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나폴레옹, 쾌활하고 말이 유창하며 생각이 기발한 스노우볼, 언변이 좋고 설득력있는 스퀼러 이렇게 세 마리 돼지들은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를 정립하여 주인이 자러 가면 비밀 모임을 가지고 사상을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한다.

동물들 중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거나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암말 몰리, 거짓말쟁이 갈까마귀 모제스 등은 설득이 쉽지 않았고, 당나귀 복서나 클로버는 비밀 모임을 지지하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결국 주인 존스 씨가 먹을 걸 제때 안줘 배고픈 상황에서 동물들이 갑작스레 봉기를 일으켰고 생각보다 쉽게 동물들이 농장을 점령했다. 인간들은 모두 쫓겨났고 농장은 모두 동물의 세상이었으며 인간들 어깨너머로 문자를 독학한(?!) 돼지들이 동물농장이란 팻말도 붙였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그간 공부하며 요약한 동물주의 원칙인 7계명을 공포했는데, 마지만 조항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였다.



물론 동물들이 모두 7계명을 이해하고 글자를 아는 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문자를 습득하지 못했으며 제일 똑똑한 건 돼지들이었다. 우유와 사과 등은 주로 돼지들이 힘든 정신 노동을 하고 동물 복리후생에 신경쓰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돼지들에게 거의 다 돌아갔다. 나폴레옹은 갓 태어난 강아지 등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중요하단 이유로 어미에게서 떼어내 교육을 시켰다. 사상교육의 중요성을 돼지들은 알았던거다. 현재의 북한과 더불어 익히 알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오버랩된다.

어쨌든 동물 집단 봉기사건은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퍼지고 존스를 포함한 인간들의 습격도 스노우볼의 진두지휘로 물리쳤다. 그러나 이와중에도 꼭 반체제자들은 있어서 흰 암말 몰리는 이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마을로 도망쳐 새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치장하고 산다. 그러던 중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 풍차건설 문제로 대립하다 나폴레옹이 스노우볼을 무력 축출한다. 이때 나폴레옹이 예전에 교육시킨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성견이 되어 스노우볼 축출에 한몫 했다. 다른 동물들 중 이에 항변하고 싶었지만 언변이 부족해 말못하는 동물들이 있었고 말 복서는 나폴레옹이 언제나 옳으며 자신이 좀 더 일하면 된다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사실 복서는 이 책에서 가장 우직하고 성실하며 불쌍한 동물이다. 자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나폴레옹을 덮어놓고 지지하던 복서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공산주의에서 단지 이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차건설에 반대하던 나폴레옹은 돌연 스노우볼이 얘기했던 풍차건설은 사실 자신의 계획이었다며 동물들에게 노동을 부가했고 급기야 부족해지는 자원으로 인해 인근 농장 인간들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며 인간과의 접촉을 금지했던 계명을 스스로 깨버렸다. 우둔한 동물들은 계명을 읽을줄 몰랐으므로 그 말이 맞겠거니, 혹은 자신들의 기억이 잘못된거겠거니 했다. 돼지들은 급기야 농장 집안을 점거해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생활했는데 집은 사용하지 않는다던 계명 역시 어긴 것이었다.

복서 등 동물들의 고된 노동으로 반쯤 완성된 풍차가 바람에 전부 박살나버리는 일이 생겼고 나폴레옹은 이를 스노우볼의 짓이라며 사형선고를 내려 그를 잡아오면 훈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존스와 결탁하고 있다고까지 했는데, 동물들은 모든 나쁜 일들이 스노우볼때문이라고 여겼다. 이 부분은 참... 왜인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조롱거리가 되었던 그분이 생각난다. 그러는 중에 일부 암탉들이 자신의 알 거래 중지를 위해 소규모봉기를 벌였지만 제압되고 나폴레옹은 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든 일을 스퀄러를 대변인삼아 처리하게 하고 개들을 앞세워 자신을 지킬 뿐이었다. 또, 나폴레옹에게 봉기하거나 반대의견을 내세운 동물들을 강제자백하게 한 뒤 곧바로 동물들 앞에서 처형시켰는데, 스노우볼과 결탁했다는 이유였다. 동물들은 그 피비린내 앞에서 얼어버렸지만 동물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주인인 동물농장을 보며 존스 시절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냥 나폴레옹으로 불리지 않았다.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라는 연호가 꼭 붙었고 미니무스는 그에 대한 충성심 가득한 시를 지었으며 그의 초상화와 함께 계명 옆에 붙였다.

그러는 동안 동물들의 스노우볼에 대한 의심과 그와 결탁한 동물들의 자백 및 자살 사건도 발생했으며 핀치필드 농장 소유주인 프레드릭에게 목재를 팔았다는 나폴레옹의 발표에 동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겉으로는 필킹턴의 폭스우드 농장과 우호관계인듯 하며 안으로는 프레드릭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와중에 목재를 팔고 얻은 지폐가 위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레드릭 측의 인간과 동물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풍차가 박살나고 많은 동물들이 죽었지만 인간들을 다시 후퇴시키고 승리했다. 복서는 그 전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죽은 동물들의 장례가 거행되었다.

어쩐 일인지 돼지들은 갈수록 살이 찌고 점점 지위가 높아져 갔으며 다른 동물들은 먹는 양이 더 줄었다. 스퀼러는 존스 시절보다 먹는 양도 더 많고 자유도 더 많다고 소리 높여 동물들이 그 사실을 믿게 만들었다. 농장 유일 수퇘지인 나폴레옹은 수많은 암퇘지들가 새끼를 낳게 했으며 그 새끼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과 분리된 교육을 받았다. 동물농장은 자주 행진을 했고 대통령도 유일무이의 후보 나폴레옹으로 만장일치 선출했다. 복서는 풍차를 재건하다 쓰러졌는데 그를 치료해준다고 실어간 마차는 말 도살 문구가 적힌 마차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뮤리엘, 벤자민이 황급히 마차를 멈추려 했지만 늦었고, 스퀼러는 자신이 직접 복서가 병원에서 치료받다 죽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 마차는 수의사가 백정에게 사들인 후 페인트를 지우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했다.

수년이 지나고 뮤리엘도 죽고, 존스도 죽고 봉기를 기억하거나 예전 생활을 기억하는 동물도 없어졌다. 다 늙어버린 클로버가 벤자민에게 계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그 계명에는 딱 하나만 적혀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돼지들은 이제 뒷다리로 서서 두 다리로 걸으며 존스 씨가 입던 옷을 입고 필킹턴 씨와 사이좋게 앉아 좌담을 나누고 카드놀이를 하며 축배를 들고 있고, 하층 계급의 적은 식량배급, 긴 노동, 자유 통제에 대해 치하했다. 돼지와 인간이 마지막에 카드 놀이를 하다 싸우는 장면에서 인간이 돼지인지 돼지가 인간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스노우볼은 어디로 갔을까? 몰리는 동물농장을 떠나 더 행복해졌을까? 드문드문 나타났던 갈까마귀 모제스는 결국 누구의 편이었던걸까.



개인의 재산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의 재산 소유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는 빈부격차를 없애고 공동체의 재산이 곧 구성원의 재산이라는 아름다운 논리를 들이밀지만, 이런 체제는 일하기 싫어하는 꼼수쟁이들이나 개인의 탐욕같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일 뿐이다. 권력의 맛을 본 나폴레옹이 평등과 주인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우매한 동물들을 그럴듯하게 설득시키고 선동시키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자본주의의 약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각국에서 모색하고 있다. 결국 동물농장도 나폴레옹의 독재라는 치명적 단점과 함께 돼지들의 사유재산이 늘어나며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어쩔 수없이 나아가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와 끊어질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고리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도 들어있고 세계사도 들어있다. 동물에 투영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당시의 스탈린주의 실상을 은유적인듯 직접적으로 파헤친 정치소설로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 속 동물농장이 그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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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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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철학을 어렵고 머리아픈 사변적 학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 우리 삶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논하는 학문이 또 어디있을까. 뭔가 들여다보고 싶지만 높은 벽이 있는 것같은 철학. 이 책의 제목처럼 철학으로 휴식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때때로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내 영혼을 지탱해줄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책은 33인의 철학자를 한 명씩 만나보면서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동시에 마음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책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 욕망과 집착으로 괴로울 때,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용기가 필요할 때, 혜안이 필요한 순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는 큰 힘이 된다. 소크라테스, 공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이미 익히 알려진 철학자의 이야기도 있지만 한나 아렌트, 지그문트 바우만와 같은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 들려주는 충고도 있고, 엘자 고다르나 데이비드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처럼 현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 철학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신선했으며, 고대 철학자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초월한 철학자들의 지혜를 만나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대목은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 관련 부분이다.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했기에 더 세상을 냉정하게 볼 줄 알았던 그는 재산과 명예가 무대소품에 불과함을 느꼈고, 오로지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용기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생기며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 몇 장으로 그의 생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에 추가적으로 관심가는 철학자나 그의 사상은 따로 찾아보게 된다. 또한, 데이비드 브룩스의 경우는 일전에 읽었던 '인간의 품격'과도 연결되어 더욱 그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는 철학책같기도 하면서 인간 내면의 상태를 파고들어 도움이 필요한 심리상태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는 측면에서 심리서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철학자의 메시지를 풀어놓는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간결하다. 매일 15분이면 충분히 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고 현재 나의 마음이나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각 철학 또는 철학자의 핵심을 살리면서 부드럽게 마음 상태에 접근하는 방식이 책의 가독성을 높인다. 철학이 사라지는 경쟁사회에서 마음의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과 같은 시대에 따뜻한 메시지와 더불어 지혜와 지식까지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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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율, 강의와 강연 하이데거 전집 10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김재철 옮김 / 파라아카데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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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현존재, 저서인 <존재와 시간>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윤리 교과서에 단 몇 줄 소개되어있던 철학자이지만 불안, 존재 자체, 죽음 등 실존하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현대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었다.



이미 잘 알려진 <존재의 시간>이란 책은 하이데거의 전반부 철학 사상을 서술하였고, '근거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근거율>은 하이데거의 후반부 철학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아름다운 말의 철학적 근거를 조목조목 따져보며 근거율이 하나의 명제로 존재하는 방식은 다른 모든 명제들과 비교될 수 없는, 즉 근거율은 모든 근거명제들 중의 근거명제임을 말하고 있다. 마치 수학에서의 공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수학도 결국 철학의 하나라는 것을 뒷받침하듯 이 책에서는 라이프니츠가 자주 언급된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너무 많이 의심하고 너무 쉽게 의심하는 것과 거리를 둠으로써 실수를 범했다고 말하며 사유의 대담함과 절제함이 각기 적합한 장소에 있어야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파이데이아와도 연결된다. 라이프니츠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성의 원리를 근거의 원리와 동등하게 보며 증명과정을 위한 두 가지 최상의 원리로 모순의 원리와 이유 보충의 원리를 내세웠는데, 여기서 이유 보충의 원리가 근거율의 강력함을 나타내준다.

근거율은 근거에 관한 진술이 아니라 존재자에 관한 진술이다.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는 어떤 것을 위해 설명될 수 없다. 이를 부연하기 위해 칸트의 '선험적 가능성의 조건'과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철학도 연동된다. 결국 사유의 자유로운 가능성인 도약을 통해 '존재의 역운'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것에까지 접근해본다.

더불어 괴테는 '때문에'에 머물고 '왜?'를 묻지 말라고 했다. '때문에' 는 '왜' 에 대한, 즉 근거 정립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막는다. '때문에'는 그 자체로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술술 읽어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열세번의 강의와 근거율에 대한 맺음 강연을 통해 끊임 없이 던져지는 인간의 존재 자체의 사유는 하이데거의 후기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을 쌓게 해줌과 동시에 지금 살아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한 근거가 어디에서 오는지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그냥 되는대로 살지 말라고, 내 삶의 이유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또 탐구하라고, 헛되이 살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러한 감성적인 말은 이 책에 단한번도 없다. 철저히 이성적으로 근거율에 대해 파헤치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미약하나마 조금이라도 느껴보면서 나의 철학적 감성을 건드린다. 어쩌면 그것이 철학의 지향점인지도 모르겠다. 존재와 실존의 그 미세한 차이, 내재된 불안, 그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그 날것에 대한 사유가 인간을 더욱 성숙한 주체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힘겹게 읽으며 한층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사유하는 만큼 성장함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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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쓸모 - 불확실한 미래에서 보통 사람들도 답을 얻는 방법 쓸모 시리즈 1
닉 폴슨.제임스 스콧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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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의 다른 수학 교양 도서에 비해 확실히 신선하다. 일단, 미국 시카고대 통계학 교수가 저자이기 때문에 다른 수학의 분야보다 확률과 통계에 초점을 많이 두고 있다.



미래의 핵심 알고리즘은 검색이 아니라 추천이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이 조건부 확률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P(A|B)와 P(B|A)를 혼동하기 쉽고 전자를 알면 후자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없음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이 조건부확률과 데이터 통계를 이용해 헝가리 수학자 왈드는 항공기 기종별로 생존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는 추천 시스템을 만들어 2차대전에서 연합군 폭격기 조종사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조건부확률을 이용한 방대한 데이터와 모형화를 통한 것이었다. 추천 알고리즘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이를 적절히 이용해 암연구(맞춤형 요법)나 신경과학 등에 쓰인다면 수학이 이보다 어떻게 더 실용적일 수 있을까.

패턴 예측을 수학적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한 르장드르의 최소제곱법은 헨리에타 레빗이란 과학자가 맥동 주기와 밝기의 관계를 나타내는 직선을 알아내는데 쓰이기도 했고 정교한 AI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쓰인다. 구글번역도 결국 예측 규칙이다. 방대한 문장 데이터베이스에 걸쳐서 어떤 영어문장이 어떤 언어의 문장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패턴을 기술하는 복잡한 방정식이 구글 번역이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해답은 베이즈 정리에 있다. 이것은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을 때 기존 믿음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알려준다. 자동차는 데이터를 받을 때마다 베이즈규칙을 이용해 위치에 관한 자신의 믿음을 갱신하는 베이지언 업데이트 과정을 거친다. 투자법에도 쓰이고 분실된 잠수함을 찾는데도, 로봇팔을 움직이고 스팸 메일을 걸러내는 데도 쓰인다. 실제로 고3 아이들이 확통에서 많이 접해본 문제 중에 어떤 질병에 대한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 실제로 그 병에 걸렸을 확률 구하기가 바로 베이즈규칙이다.

우리가 '기하와 벡터'로 치를 떤 나머지 수능에서도 저 멀리 역사로 사라진 벡터는 단어 벡터로 새로 태어난다. 여기서 벡터는 숫자(수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스칼라의 반대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구글 보이스같은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가 다룰 수 있는 수학적 언어로 한 문장의 문맥을 부호화하는 것은 모두 단어 벡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드무아브르라는 수학자는 예전 6차교육과정 시기에는 복소수와 삼각함수를 이어주는 기본 정리로 유명하지만 제곱근 규칙, 일명 드무아브르 방정식은 통계학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표본 평균의 변동성과 표본 크기의 제곱근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대량의 데이터 집합으로부터 알고리즘을 통해 이상을 찾는 역할을 하는데 예를 들어 가스 누출 탐지나 부정거래 적발 등에 쓰인다.

나이팅게일은 사실 수학하는 사람들에겐 통계로 더 알려져 있다. 나이팅게일의 '데이터의 시각화'와 새로운 통게 처리 방법으로 인해 세상은 좀 더 나아졌고 의료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서 전문성의 새로유 표준이 세워졌다.

이 모든 것은 수학적 사고의 바탕 아래 가능한 것이다. 수학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만들기도 하며 발전시키기도 한다. 확률과 통계에만 한정지어서 보기만 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수학이 어디에 쓸모가 있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은 아마 자신이 배운 지식이 활용되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동전과 주사위 던지기에 집착한 확률 문제가 아니라, 정형화된 통계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하고 처리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시험에 나오지 않아도 즐겁지 않을까, 그런 경험은 ...?

여튼, 나는 이 책을 통해 수학을 배운게 아니라 수학 이외의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수학 내적 세계에만 빠져 있었단 얘기가 되겠다(쉽게 말해 문제풀이에만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수학 바깥 세상에서 수학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이 책에는 복잡한 수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수학적 지식이 탄탄하지 않은 독자에게 지식을 강요하는 부분도 없다. 물론 조건부확률이나 베이즈 정리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살짝 언급하는 정도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단지 수학이 이렇게 요모조모로 쓰이고 있는데 그래도 수학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반문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수학의 4대 가치가 모두 들어있는 것 같다. 가장 중심이 되는 실용적 가치와 더불어, 자연스레 정신도야적 가치가 빛을 발하고 데이터가 그래프로 표현되는 과정은 심미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수학은 이제 하나의 문화이자 혁신가치다. 이 아름다운 학문을 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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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첫 과학책
황북기 지음, 김태은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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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 책이 아이에게 읽어준 첫 과학책은 아니다. 이미 다른 책들을 읽으며 이것저것 주워들은 과학 지식은 있긴 했지만 글로 읽어 알게 된 지식과 직접 체험해보고 알게 된 지식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직접 손쉽게 엄마 또는 아빠와 함께 과학을 체험해보며 느낄 수 있는 첫 과학책이다.

본책은 머리가 좋아지는 과학, 몸이 튼튼해지는 과학, 감각이 발달하는 과학, 마음이 따뜻해지는 과학 이렇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내용을 접해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밀도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토마토주스와 오렌지주스를 섞었을 때, 우유와 토마토주스를 섞었을 때, 이들이 고루 섞이지 않고 토마토주스가 아래에 위치함을 그림으로 제시하고 그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우리는 무거운 것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걸 쉽게 이해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를 직접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본책에 딸린 소책자 워크북이 따로 있다.

설탕물로 다시 확인해보는 가상 실험을 해본다. 컵 2개에 똑같은 양의 물을 붓고 한 컵에는 설탕 한 숟가락, 다른 컵에는 설탕 다섯 숟가락을 넣고 저은 후, 한컵에는 빨간 물감, 다른 컵에는 노란 물감을 풀고 빨간색 설탕물 위에 노란색 설탕물을 부었을 때 어떤 색이 아래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것을 직접 해볼 수 있게 워크북에 다시 실험 단계를 제시하고 결과를 적는 란에 실험 결과를 적게 한다. 모든 주제가 이러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와 다른 책에서 심장의 역할과 혈관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림을 보았었다. 심장에 귀를 대보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맥박이 1분에 몇 번 뛰는지 횟수를 세어보게 한다. 가만히 서서 세어보고 뛴 다음 세어본 후 차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 차이가 난 이유는 본 책에서 다시 설명되어 있다. 본 책과 워크북을 동시에 활용하며 체험하고 이해하기를 반복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성이 잘 되어 있고 주제가 다양하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모든 영역이 고루 녹아 있고 초등 과학으로 자연스레 연계된다. 이 책 맨 뒤에 교과연계표가 있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 5세부터 시도해 볼만한 내용이 꽤 있다. 독후활동때문에 난감해하는 엄마표 책육아하는 엄마들이 쉽게 독후활동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워크북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 같다. 워크북을 실행하고 미션을 완수하면 스티커를 붙일 수 있게 해서 재미가 배가 될 것 같다. 하루에 하나씩 간단히 과학을 체험하고 놀면서 배울 수 있는 유아 과학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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