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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카페 - 평범한 일상이 철학이 되는 공간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맵 / 2023년 5월
평점 :
불혹이 가까워지면서 철학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인생 90세까지 산다고 계산하면 가장 뜨거운 정오가 되기 직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보다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요즘이다. 최근 내 최대의 관심사는 '나'인데, 책을 읽고 (억지로지만)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다, 라는 완전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내 상한선과 하한선이 어딘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자꾸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알고 있다. 이 책, <소크라테스 카페>는 철학에 대한 타인과의 생각 공유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혼자만 읽었을 때 생길 수 있는 편협함이나 진실 왜곡의 위험성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는 것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합치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준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 카페를 연 것은 아닐까. <소크라테스 카페>는 철학적인 문답을 펼치는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이다. 카페가 아니라 산꼭대기, 노인복지관, 학교, 감옥 등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철학적으로 탐구하기'라는 주제가 현재 내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주제이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분명히 파악해 높은 식견을 갖고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철학을 분명하게 표현해 삶에 적용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지혜를 추구하는 숭고한 정신을 품은 삶 말이다. 더 좋은 질문을 더 많이 던지면 우리는 더 큰 자율성을 갖게 된다.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지식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세상과 그 세상 속 자신의 위치를 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단순한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정직성이 필요한 문답법이다. 정직한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논제를 자주 세심하게 살펴보지만 진실성이 있는 사람은 논제를 검토하지 않고 진심으로 확신할 수도 있다. 즉,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단순한 명제가 이 문답법의 기본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은 내가 가진 모순이나 오류를 인정하고 갇혀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카페 운영자이자 이 책의 저자는 그 장소가 어디든 달려가 함께 사유의 장을 펼친다. 교회, 감옥, 학교, 카페 등 어디에서 어떤 구성원들과도 문답을 진행할 수 있다. 모든 참가자가 평등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민주적인 체계이며 이 문답법을 통해 다루기 힘든 문제와 미래 지향적인 문제를 구별하고, 미래 지향적인 문제를 체계적으로 탐색하면 탐구자가 더 이성적이게 된다는 것, 내가 왜 나인지, 어떻게 내가 열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모임이 진짜 내 주변에도 있다면 당장에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아니 만약 없다면 내가 우리 지역의 장이 되고 싶을 만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크라테스 카페의 수많은 장소와 수많은 구성원들, 수많은 토론 거리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친구, 사랑 등 친숙한 주제들부터 시작하여 믿음이란 무엇인지, 지혜롭다는 건 무엇인지 등을 토론하며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단어를 정의한다. 내가 생각하던 관념들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부서져 재정립되기도 하며 더 확고해지기도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이 책에 담겨져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누군지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책의 말미에는 책에 거론되었던 여러 철학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다. 정말 소크라테스 카페가 내 주위에 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들었고, 사람들마다 생각이 모두 다르며 그 모든 것들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책을 읽으며 한층 더 확고히 알게 됐다.
인생의 의미, 내가 누군지, 일상에서 철학하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에도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함께 풍부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대들이 발견한 삶의 길,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그 길을 끊임없이 추구하라고 말이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