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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 기후위기를 외면하며 우리가 내뱉는 수많은 변명에 관하여
토마스 브루더만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 / 2024년 5월
평점 :
나는 이 책의 목차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늘어놓는 '변명' 25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날씨와 같이 즉각적인 변화나 양상을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반면 기후 변화와 같은 것은 그 변화가 느리고 결과가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갖기 쉽지 않다. 이 책의 목차만 읽어도 그간 인류가 하고 있던 말들이 변명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얼굴이 화닥거릴 것이다. 어떤 변명은 실로 뻔뻔하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인간은 원래 모순적이다,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환경 문제가 아니라도 걱정할 게 많다, 사실 나는 환경친화적으로 살고 있으며 내 의도는 선량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내 잘못은 아니다, 나보다 더 환경 파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이 발전하는데 기술이 우리를 구해줄거다 등등.
이 수많은 변명을 정확하게 꼬집는데, 이 책은 그걸 인간의 심리와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기후친화적이지 못한 많은 변명을 기후 심리학을 소개함으로써 분석하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못하게 방해하는 심리적 장벽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본다. 나, 나의 가족과 친구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나의 주변인들이 내리는 의사결정들이 사실은 그다지 기후친화적이지 못하지만 긍정적인 자아상, 그러니까 나는 환경을 잘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그런 모순을 직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직시를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웃으면서도 정곡을 찔리는 듯한 효과를 주는 책이다.
내가 이 책에서 상당히 유의미하게 봤던 부분은, 책 제목답게 나는 대체로 환경친화적으로 살고 있다는 착각이 사실은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는 부분이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거나 에어컨 사용하지 않는 것, 전구 끄기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지구를 지키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자주 해외여행을 가고 매일 자동차로 출퇴근을 한다면 그건 정말 모순적인 거다. 평소보다 비행기 한 번 덜 타고, 대중교통을 더 이용하는 게 분리수거 철저히 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지닌다면 계획된 해외 여행을 취소하거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겠는가?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 자신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환경이 제일 큰 이유는 아니지만서도 말이다. 내 행동이 어쨌든 환경에 큰 효력을 갖는 선택이라 하니 뿌듯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말한 새뮤얼 존슨의 문구가 이 책에 적혀 있다.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결과가 무조건 좋거나 그게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일명 코브라 효과라고도 하는 이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정말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차량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바이오 연료가 장려되었는데 그 결과 팜유 수요가 커져 팜유 플랜테이션을 늘리기 위해 열대 우림이 과도하게 개간되었다. 그러면 이는 기후와 환경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책 마지막에 나와 있는 <모든 변명에 대한 반대 주장>은 이 책의 요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변명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팩폭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게으르다(그러므로 기후 변화는 에라이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카리브해까지 가는 수고 없이 집 발코니에서 휴가를 보내도 아무 문제 없겠네? 그러니 여행도 가지 마! 하는 식이다. 게으른데 어떻게 여행을 가겠는가. 나는 이런 팩폭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모순을 끄집어 내는 것에 부끄러운 희열감을 느낀다. 이 책은 정말 기후, 환경 책 중에서도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가 어떤 모순적 사고를 갖고 있으며, 진실이 무엇인지 한발짝 다가가게 해준다. 흔히 말하는, 우리 후손에게 지구를 빌려 쓰고 있다는 말은 정말 그러하다. 기후 변화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나의 아이들, 손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