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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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재밌고 웃기다는 후기에 냉큼 결제 버튼 누르고, 시간 날 때 읽어야지~(읽을 책은 항상 쟁여놓는다) 이래놓고선, 보건소 자가격리 통보에 (이건 기회야!) 바닥을 굴러다니며 금새 읽어치웠다.

1.

1편만 읽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죄다 읽어치웠다. 고전을 읽기 위해 아껴두던 강철 의지 따위 재미 앞에 바람 앞의 등불이더라. 촘촘히 박힌 깨알같은 말개그에 킬킬대며 웃다보면, 집에 갇혀지내는 우울 따위가 단박에 날아간다. 감옥으로부터 사색하던 사람 한 명 단번에 행복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표지에서부터 한국 축제의 키치스러움에 혹한다. 귀요미 부부 캐릭터가 지역 축제에 맞닥뜨릴 때 느낄 법한 황망함도 언뜻 스쳐지나간다. 

재미있는 부분을 고르려니 너무 많아서 어렵다. 일단 12편의 축제 중 삘(?)이 오는 1편을 읽고 독서 여부를 고르는 게 가장 낫겠다. 근데 1편만 읽으면 마성의 글재주에 정신을 홀라당 넘겨 줄 터라 여유시간 확보도 해두길 추천한다.

주최 유관기관들이 생각이 있다면 여기에 소재가 된 축제들은 작가님이랑 계약해서 축제 마케팅에 갖다 써먹겠지.(젓가락 페스티벌, 연어/산천어축제 제외) 이다지도 개그개그하게 지역 축제를 홍보하는 분들을 만나기가 어디 쉽겠어? 관에서 작성한 근엄하고 진지한 축제 기획서에 맛깔나는 마케팅을 할 수 없다면 찾아서 써먹기라도 잘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 책은 다소간 시일을 두면 여기저기에서 타이틀을 더 많이 거머쥐지 싶다.


3.

재미만 있다면 그렇고 그런 인스턴트가 될 이야기였지만,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본 이 개막식, 다른 축제의 개막식들과는 사뭇 달랐다. 줄줄이 이어지게 마련인 내빈 소개를 이름과 소속이 나열된 '내빈 참석 현황' PPT 슬라이드 한 쪽을 화면에 띄워 쿨하게 끝내 버리더니만, 산청곶감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명도 향상에 기여한 방송사 PD 등에게까지 감사패를 수여하며 공훈은 아주 꼼꼼하게 챙겨 주는 느낌이었다. 더 중요한 건 개화사와 축사들의 톤이었다. (중략) "농가 소득 5000만 원을 향해"같은 수치화된 목표를 제시하며, 그러면서도 모든 노고와 공을 농민들의 몫으로 돌렸다. 회사 MT 겸 워크숍 온 줄......

하지만, 아니 그래서 좋았다. (중략) 무엇보다도 저 말들은 바깥에서 뒤늦게 말만 얹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안에서 함께 부대껴 온 사람의 말이었다. 섣부른 환상의 당의정으로 눈과 귀를 흐리는 말이 아니라 오늘을 즐기되 현실을 똑똑히 마주하자는 다짐이 실린 말이었다.

작지만 맞춤한 것들을 만나기 위해 - 경남 산청 지리산산청곶감축제 중에서


와 같은 대목을 만나며 농촌경제 활성화를 기지로 의기투합하는 각종 위원장과 군수들의 (진짜) 농민 중심 모습에 훈훈해 하고,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인간도 아낀다."라는 말은 믿지 않지만(히틀러만 봐도 그렇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라는 칸트의 말은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로 연어 맨손 잡기 같은 체험을 요약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인간의 생명 VS 동물의 생명'이라는 화두까지는 어림도 없고, '인간의 재미 VS 동물의 생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의 재미'를 선택하는 그 해맑은 가학성이 별생각 없이 돼지를 번지점프대에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번지점프당하는 돼지를 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고 즐거운 유희였을 것이다.

이제 그만 거꾸로 거슬러 올라야 할 - 강원 양양 양양연어축제 중에서


와 같은 고통을 접하며 '물고기'가 아닌 '물살이'라는 표현을 새로 배운다.


4.

개인적으로 곶감을 좋아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디저트 메뉴로 곶감이 엄청난 궁합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한 후,(감말랭이 마찬가지) 카페에는 왜 곶감을 안 파냐며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치즈케이크, 스콘, 쿠키, 바나나 따위 흥이다.) 곶감은 그냥 먹어도 단 데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무시무시하게 달아진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 이유는 모르는데 아무튼 그렇다. 게다가 빵류 디저트는 특유의 묵직함 때문에 더 이상 먹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곶감은...마구 입안에 들어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설마 카페에 곶감이 없는게 신의 한 수..?

유통구조 문제라면 참으로 아쉽다. 쓰디쓴 커피에 달달한 곶감이 어우러지는 그 기막힌 감탄을 나만 아는 건 아닐텐데, 제발 어떻게 좀...아니되겠습니까?


p.s.

작가님, 두 분은 함께 쓰셔야 쓰겠어요. 박태하 작가님 혼자 쓰신 젓가락 페스티벌이 가장 서글펐어요. 재미1만 가지고 글을 쓴 느낌적인 느낌? 축제가 지닌 인위성이 강해서 그랬다고 납득하긴 하는데, 김혼비 작가님의 재미1도 포함해야 1+1이 시너지 효과를 뿜어내나 봐요. 4고 완성 효과가 책 전체에 만발할 때야 비로소 글이 야무지게 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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