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문턱에 서 있다가 양산을 가지고 나와 펴 들었다. 비둘기 털빛처럼 무지갯빛이 도는 회색을 띤 비단 양산을 통과한 햇빛이 그녀의 하얀 얼굴에 비쳐 빛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양산을 받쳐든 채 그 은은한 온기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팽팽하게 펼쳐진 양산의 비단 위로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마땅히 따라와야 할 행복이 느껴지지 않자 어쩌면 자신이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마는 책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도취, 열정, 희열 같은 말이 실제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샤를이 처음 베르토에 왔을 때 그녀는 더이상 배울 것도 전혀 없고 느낄 것도 없다는 듯 삶에 몹시 환멸을 느낀 상태였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불안 혹은 그 사내의 존재가 야기한 흥분은 그녀로 하여금 근사한 열정을 마침내 품게 되었다고 여기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그때까지 열정이란 찬란한 시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밋빛 날개를 가진 커다란 새 같은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영위하고 있는 이 침체된 삶이 바로 자신이 줄곧 꿈꾸었던 행복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녀는 이때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사람들이 말하는 밀월이 아닐까 하고 이따금 생각했다
이 남자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했고 아는 것도 없었으며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평온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둔감함, 자신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를 원망했다
서글픈 눈길로 아들의 행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녀는 추억을 빙자해 자신의 수고와 희생을 아들에게 환기시키면서 그것들을 에마의 소홀한 태도와 비교했고, 그가 그렇게 유난스럽게 에마를 귀히 여기는 것이 부당하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노년에 막 들어선 사람도 젊은이 같은 태도를 지녔고, 젊은이의 얼굴에도 노숙한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무심해 보이는 눈길 속에는 언제든 바로바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평온함이 감돌았다
친절한 태도 이면에는 혈통 좋은 말을 조련하면서 힘을 단련하거나 화류계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식으로 비교적 손쉬운 목표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특유의 야비함이 엿보였다.
그녀의 가슴도 구두와 같았다. 부유한 삶을 언뜻 스치면서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무엇인가가 덧입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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