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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왕께 올림 - 수원 화성으로 보는 정조의 개혁 ㅣ 어린이를 위한 역사 인물 2
신현수 지음, 비깔 그림 / 상상의집 / 2022년 3월
평점 :

조선의 22대 왕 정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편지글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생들의 입문서로 부담 없이 읽기 좋아 보였다.
평소에도 대신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는 정조,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7세 아이가 읽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있었다.
아이가 아는 왕이라고는 세종대왕 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조 대왕께 올림 책을 처음 만났을 때도 세종대왕이야?라고 물었다.
물론 같은 조선의 왕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동일하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하겠지만
세종과 정조의 시간은 18대를 넘어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먼 시간의 차이가 있는 왕이라는 것을 설명해 줬다.
"우리가 정조대왕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정조도 세종대왕을 만날 수는 없었어."

정조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부친인 사도세자, 그리고 조부 영조의 이야기다.
백성들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 영조는 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왕중의 한 명이지만
아버지로서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인에게는 자비롭고 후하던 영조...아들에게는 지독하게 엄격했다.
그 결과 사도세자는 양극성장애를 갖게 되고
이런 아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정조 나이 11세였다.
이런 이야기에 아이는 정조라는 임금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임금의 편지를 비밀리에 배달하는 하인의 실수로
다른 편지가 정조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내용인즉 어렵게 살아가는 한 백성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정조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할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백성들을 위한 개혁 정책을 펼치려고 했다.
그 시작이 수원 화성인 것이다.
또,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세상에 당당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묘를 명당이라는 수원 화성으로 옮기고 매년 참배를 갔다.

역사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우리 딸,
하지만 매번 엄마 욕심에 종종 접하고 있다.
알수록 재미있는 역사, 좋아해 주려나?
역사를 알기 위해서 무엇부터 알려줘야 하는 걸까?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현재에는 당연한 평등사회가 이 시기에는 당연하지 않았음을,
배고파 굶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부터 조금씩 이야기해 주었다.

정조 때에는 훌륭한 실학자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수원 화성에 큰 역할을 한 거중기를 발명한 정약용,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 박지원, 홍대용 등이 그들이다.
훌륭한 임금 아래, 그에 버금할 만큼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많았다는 건 정말 큰 복인 것이다.
정조가 등용문을 넓히고 고루 선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조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뽑히는 수원 화성은 군사적 기능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을 직접 가보기로 약속했다.
아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정조가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을 때 거절되었다고 한다.
전쟁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재건했어도 당시의 모습이 없을거라고 판단되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화성성역의궤를 보여주고 난 뒤 등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약 220여 년 전 그 당시 모습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수원 화성, 만날 그날을 생각하니 설렌다.
아이와는 그림을 보면 당시 얼마나 힘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이야기해 봤다.

정조대왕의 글씨, 조선시대 왕의 행렬 등을 보면 당시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특히 수원 화성 건축에 참여한 이가 남기 편지글에서는
정조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그 마음이 잘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정조.
백성들의 삶이 고달플까 걱정하는 그 앞에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면서 점점 밝아지는 표정,
정조는 어떤 편지를 받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