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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평점 :
이제는 명실공히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배우 차인표 님의 세 번째 장편소설 '인어사냥'을 만났다.
전 세계에 등장하는 인어 중 조선 시대의 문신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나오는 우는 인어를 모티브로 쓰였다. 조선의 한 어부에게 잡힌 인어는 흰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울었다고 했다. 왜 울었을까? 혹시 누군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행위보다 내면을 강조한 이 한 문장에서 인어에 대한 연민을 갖고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는 욕망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생불사를 누리고자 했던 인간 덕분에 욕망은 영생불사가 되었다."
인어의 기름을 먹으면 영생한다는 이야기다. 불로장생을 바라는 인간의 탐욕과 근원적 욕망을 잘 표현했다.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인어, 불로장생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당신은 먹겠습니까?"
나라면? 내 욕망을 채울 수 있다면 허락되지 않는 것을 먹을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처음은 덕무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다. 덕무는 외딴섬에서 아내와 딸, 아들과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원인 모를 폐병으로 아내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 영실도 같은 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하루하루 피를 토해내고 숨쉬기 힘들어 하는 딸아이를 위해 자신의 폐라도 내주고 싶은 덕무에게 공 영감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런 기름 한 방울, 이 기름 한 방울에 영실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공 영감이 영실에게 먹인 기름은 인어 기름이다. 다 큰 암컷 인어를 삶아 기름을 짜내서 먹으면 천년을 살 수 있고 아픈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인어 기름 이야기는 27대를 거슬러 올라간 신라시대 공랑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 영감의 선조 공랑은 우연히 인어 아이를 만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인어를 만난 곳에는 다시 가지 말라고 당부하던 서씨할머니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마을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 그 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인어 기름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탐욕으로 마을은 갈등과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인어 아이를 잡고 인어 애비를 잡고 결국 인어 어미까지... ...

p.54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배고프거든.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금방 또 배고파지거든."
이야기의 서두, 일본의 강치 불법 포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 강점기 시기 가죽, 기름, 뼈 등을 노린 무자비한 포획으로 인해 멸종된 바다사자 강치, 인간의 욕망으로 행하진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야기 속 공 영감은 일본에 돈을 받아 강치 포획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볼 수 없는 강치의 포획 현장. 이를 목격했던 덕무.
잔인하고 잔혹한 모습에 이를 갈았던 덕무는 자기 자식을 위해, 아니 자식을 살린다는 핑계로 인어의 살갗을 벗겨 기름을 짜내려고 하고 있다.
p. 193
"영감님, 이보다 더 험한 꼴이 어디있습니까? 영감님도, 내 아부지도, 참 딱합니다. 사람처럼 생겨서, 사람처럼 먹고, 사람처러 말하는 걸 보고도 저 아이를 잡아먹겠다는 거요? 헉헉, 나더러도 잡아먹으라는 거요? 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합니까? 사람은 나 살자고 아무거나 해도 되는거예요?"
덕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공 영감의 성난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귓가에 박혔다
"아니다!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물고기야! 사람 말 따라하는 요망한 물고기라고! 네가 모르는 사이에 필경 인어에게 홀린 게야. 저 요물 때문에 제정신을 잃고 미친거라고"
"알았으니까 내 달에게 소리 지르지 마소!"
덕무가 공 영감의 말을 끊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비가 마지막으로 말하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오늘 밤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러 오지 않으면 찔레를 잡아 기름을 내겠다."
이야기는 현재(조선)와 1,200년전(신라)을 넘나들며 흘러간다. 시대의 차이가 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인어를 포획하고 기름을 얻기 위해 이성을 잃는 인간들의 모습은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다.
p.195~196
사람의 정이라곤 한 점도 묻어나지 않는 말투에 덕무는 새삼 눈을 돌려 공 영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리만치 급격히 노화한 것 같아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달빛에 비친 그 얼굴이 세월의 소낙비를 맞은 듯 지나치게 늙어보였다. 오래된 나무를 꽉 채운 수백줄 나이테처럼 그의 얼굴은 쭈굴쭈굴 한 주름으로 구겨져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앞니도 며칠 새 죄다 빠지고, 입술 위아래로 세로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듬성듬성 나 있던 머리털은 모조리 사라져 민머리가 되었고, 낯빛은 차디찬 수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얼굴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불로불사의 삶을 갖는다는 게 행복한 일일까~? 물론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단명하는 건 슬픈 일이겠지만 다른 생명을 앗아가면서 이어가는 삶은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소원이 변질되면 욕망이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얻는 기회?는 행운이 아닌 저주가 분명할 거다.
작가의 상상력을 공유할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어라는 존재. 그와 어우러진 인간의 심리가 담긴 탄탄한 이야기!! 차인표 작가님의 다음 소설도 기대된다.
이번 소설도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