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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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힙합을 전혀 알지 못하는 힙알못, 힙찔이의 생각이니 대충 읽으시거나 비웃으셔도 좋습니다^^ 댓글로 비난하면....... 컨트롤 비트 못 틀어요 저는.


내가 더 이상 힙합을 듣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꽤 오래 전인 것 같은데 사실 쇼 미더 머니 3가 시작되던 2014년부터 나는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X같은 놈', 'f---'같은 욕설이 터져 나오는 힙합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 전, 내 고등학교 2,3학년 시절도 쇼 미 더 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힙합을 알게 된 건 그 방송 때문이었고, 힙합이 좋아서 듣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힙합도, 쇼미더머니도 멀리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들고 있으려니 내가 왜 힙합을 좋아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쇼 미 더 머니 1은 내게 "수퍼스타K"같은 거였다. 아직 무명의 일반인 래퍼들이 가수의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존경하던 선배의 선택을 기다리고, 결국 이루어낸 무대에서 현란한 랩핑과 퍼포먼스로 자신의 성공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순수한, 오디션 같은 거. 

어둠의 세계에서 사채업자로 살던 '일통', 무명 래퍼 로꼬, 힙합 닉네임도 없던 테이크 원, 무대 위에서 악플러들을 손가락질 하던 주석 등등 내가 기억하는 쇼 미 더 머니는 무분별하게 남을 비난하지 않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떠벌리지 않았다. 

"랩을 하려는 수백 수천명이 줄을 서 있어요. 그리고 자기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쫀 상태로 서 있어요. 그러다가 심사위원이 앞에 오면 공손하게 인사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센 척 랩을 해요. 그리고 랩이 끝나면 다시 공손하게 돌아와요. 그게 뭐예요. 저는 그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제리케이가 지적했둣, 쇼 미 더 머니는 스윙스가 등장한 2 이후로 확실히 변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입에 담을 수도 없어 삐처리가 연속되는 욕을 의미 없이 하고, 자신이 제일 싸움을 잘하고, 너를 죽일 수도 있으며, 게다가 돈까지 많다고 아님 앞으로 돈을 굉장히 많이 벌어 명품으로 치장을 할 것이라고 떠벌리게 되었다. 더 이상 순수한 꿈을 찾던 일통 같은 래퍼도, 자기만의 뚝심이 있던 테이크 원 같은 래퍼도 없다. 쇼미더머니가 원하는 인재는, 그래서 대중이 원하게 된  인재는 이제 그들이 아닌 것이다.

힙합을 국내에 주류 음악으로 만든 것이 쇼 미 더 머니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데, 이 책에 나오는 몇 몇 래퍼들이나 지금 인기 있는 래퍼들 중 일부는 쇼미더머니 보고 힙합을 논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한다. 태어나게 한 어머니까진 아니어도 길러준 이모 정도 같은 방송과 사람들을비웃으니까 솔직히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 길러준 이모에게 애증이 생기는 것을.

어쨌든 그런 방송의 입맛에 맞게 자신을 치장하고 나온 래퍼 수 천 명이 체육관에 일렬로 줄을 서고 있다. 공손하게 인사하고, 죽일 듯이 랩을 하다가, 다시 공손하게 인사하는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힙합정신'을 논하고 '자신이 힙합'임을 스스로 자랑하면서.

그런 허위로 가득 찬 작태가 너무 꼴불견이어서 쇼 미 더 머니3를 보지 않았다. 이후 쇼 미 더 머니 4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지원자 중 한 명은 그룹 세븐틴의 멤버 버논이었다. 왜 여기에 나왔냐는 심사위원의 물음에 자신이 속한 그룹을 알리고 싶어서 나왔다는 솔직한 대답 때문이었다. 그 발언은 순식간에 힙합정신을 모독한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버논에게 던졌지만, 나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그 시즌의 우승자 바비는 아이돌이 아니라 힙합을 하고 싶다고 했으나 진정한 힙합을 했는지, 러브송을 부르는 아이돌로 더 많이 일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으니까.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진짜가 아닌데도 자신이 keep it real하다고 말하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만일 쇼 미 더 머니가 원하는 지원자가 바르고 올곧은 품행단정한 래퍼였다면, 스윙스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방송과 래퍼 중에 무엇이 먼저 탄생한 건지 잘 모르겠는, 그리고 자신도 헷갈려하는 지원자들을 볼 때마다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만일 내가 좋아했던, 그래 크루셜스타.. 어머니께 자랑스런 아들,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정진한다던, 방구석 꿈만 꾸는 게으름뱅이들을 질타하던 크루셜스타가 쇼미더 머니에 나올 때는 솔직히 너무 괴로웠다. 그 얘기는 손가락으로도 못 쓰겠다, 정말. 가사를 잊어버려서 탈락하고 나서도 몇 시간을 기다려 타블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던 그의 모습은 keep it real인가? 아... 그래도 문제다. 그만 하자.

그렇다고 내가 힙합이 유교 경전을 달달달 말하고 예의범절을 중요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래 누가 알겠느냐만은) 자신은 그런 모습이 아닌데 방송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하는 모습이 너무 진실 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거야 말로 힙합을 좋아하던 리스너들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그래서 많이 생각해 봤다. 미디어나 음악을 통해 보여지는 게 진짜 그들의 모습인지, 아님 대구 지하철 참사를 가벼운 가사로 쓰고, 고인을 모독하고, 테러집단을 장난처럼 모방했던 게 그들의 진짜 모습인지. 아님 늘 "내가 제일 쎄!"를 외치다가 뒤의 일에 대해 대중들이 비난하자 얼른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들의 진짜 모습인지. 너무 혼란스러워서, 나는 더 이상 힙합을 듣지 않는다. 내 속마음을 대신 해 주듯 시원하게 욕을 내뱉는 래퍼가 사실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사람이면 어쩌나. 두려웠다. 여기서 김봉현과 래퍼들이 발라드 가수들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그들은 다르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곧 발라드 정신임을, keep it real을 외치진 않잖는가. 

김봉현이 래퍼들을 인터뷰하면서 real이란 말이 진짜 많이 나왔는데, 바로 이 단어 때문에 이 책의 출간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의 이동진 평론가와 이다혜 기자는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아닐수도있다.), 실제로 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이 부정을 저지른 사례가 있지만, 그래서 최근에도 친일파였던 이광수의 이름을 쓴 문학상을 제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내 나름의 기준을 내려보려고 해도 정말 어렵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더욱이 개인의 비행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약자를 짓밟는 행위를 한 래퍼들이 이 책에 나올 때는 정말 이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느라 너무 괴로웠다. 사실 이 책 추천사에 고등래퍼 우승자 양홍원이 있을 때부터 그랬다. 언젠가 학교 폭력 당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꿈에서는 엄청 아프고, 무섭고, 숨이 막혔다. 

그리고 내가 래퍼 창모의 노래를 참 많이 들었는데, 어느 날 그가 과거 '대구 지하철 참사'를 아주 가볍게 가사로 옮긴 것을 알고는 단번에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해 버렸다. 대구에 살면서,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 아닌가.  

이 책의 출간목적이 분명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나라는 독자는 그런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대느라 좀처럼 책 읽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열 두 명의 래퍼들 중 몇 명은 정말 흥미롭고, 몇 명은 기가 차고, 몇 명은 좋아하게 되었다. 

기가 차는 래퍼들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뜨악 하기도 하고,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일이 나열 할 수 없어, 그냥 뭉뚱그려 얘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나름의 real한 래퍼들, 강약약강을 보이지 않는 최소한 겁쟁이는 아닌 래퍼들을 가려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힙합을 다시 들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들의 음악은 찾아 듣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김봉현은 예술가(의 그림자)와 예술을 분리하려고 한다.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오직 그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 만을 인터뷰한다. 비평서가 아니니까 당연하다. 결코 문제 되지 않는다. 힙합을 미친 듯이 들었다가, 스스로 멀리 했기 때문에, 그 애증 때문에 괜히 잔소리를 늘어놓기는 했지만 좀처럼 인문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유명 래퍼들의 인터뷰와 속내를 볼 수가 있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흥미로웠다. 간만에 머리 아픈 고민까지 했으니까 그것도 좋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나 같은 범생이 한 명 쯤은 있겠지. 그리고 희열도 느끼고? ^^;

학교에서 '대중가요의 역사'를 다룬 교양 수업을 듣고 있어서, 그와 관련한 책을 몇 권 찾아 읽어보았는데,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이 책도 그 역사서들 틈에 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 한 오십 년 쯤 뒤에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빼들고 힙합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려나.
그리고 좀 놀라지 않을까? 오, 김영사가 이런 힙! 한 책을 냈단 말이야? 이거야말로 허슬~스웩~
(으잉?^^;;)

아무튼 의도치 않게 나를 '힙지(知)리'로 만들어 준 책(이 라임 쓰고 싶었다. 힙질이, 힙지리~ yo)

아 참, 제리케이 뒤에 스윙스가 나온 것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힙합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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