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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Poverty: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Paperback) -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제프리 삭스 지음 / Penguin Books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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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종식 –The End of Poverty

콜럼비아대 교수인 제프리 삭스가 쓴 세계 경제 불평등 해소 방안에 관한 정책 제안서다. 저자의 전공은 거시경제학이기 때문에 주로 환율, 무역, 재정정책, 통화량 따위를 연구하는 것이 본업이 된다. 1985년 우연한 기회에 남미의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볼리비아 경제 담당 관리들과 대화를 하면서 당시의 극심했던 인플레이션을 잡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 주효하여 정책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라고 본인은 주장한다.) 이후 공산권 붕괴 당시 경제 혼란에 빠지게 된 폴란드를 위기에서 건져낸 후, 연달아 소련의 자본주의 편입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여러 가지 정책 제안을 한 바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하버드 출신 경제학자가 자신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여러 개발도상국을 도와준 미담 사례를 약간의 과장을 섞어 자랑하는 것으로 치부할 여지도 있겠지만 이것은 배경에 불과하고 이 책의 진면목은 지구촌 빈곤 지역의 현황과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의무 원조를 촉구하는 중후반부라고 볼 수 있다.
삭스가 주장하는 지구촌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빈곤의 양상은 국가별로 다르기에 단지 몇 가지 거시 경제학의 지표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그 나라의 역사, 지리, 자원, 산업 구조 등을 두루 살펴 특화된 진단과 대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정학에서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는데 볼리비아나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지역 국가의 빈곤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내륙국 요인과 대륙 수운의 미비와 같은 조건에 주목한다. 이는 이들 국가가 국제 경제 분업 구조에 편입을 저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또 하나는 빈곤의 덫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빈익빈”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지형 조건 때문에 혹은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빈곤이 누적되면 지리적 난관을 극복할 인프라 건설도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인재 양성도 어려워지므로 빈곤을 탈출할 사다리에 첫발조차 올려 놓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저자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들이 빈곤 탈출의 사다리에 오르도록 국제사회가 초반 여건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를 얽어매고 있는 대외 채무도 과감히 탕감해 주고 이들이 삶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고 약간의 축적을 일궈 자립적 국민 경제를 건전하게 꾸릴 때까지는 대부가 아닌 무상원조를 일정 기간 지속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를 지원해 주어야 하며 누가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국제 사회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간 합의를 했으므로 이를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대안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고 하기로 약속한 것만 이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룰은 선진국의 국내 총생산의 0.7%를 공적 개발 원조금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주로 OECD 국가들이 내게 되는데 이미 완불을 하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미국도 절반 정도만 내고 있는 등 미온적인 도움에 그치는 나라가 많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이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GNI의 0.1%대를 지출하고 있기에 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최근 통계를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하는가? 또 이렇게 열심히 돕는다고 하여 과연 도와지는 일일까? 이는 선진국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도 책은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하는 것은 인도주의의 발로가 가장 큰 이유가 되지만 그들을 돕지 않으면 그 여파와 후과는 곧 선진국들이 치르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러인데 불평등한 국제 경제 관계와 그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국민들의 상황을 본 젊은이들은 극단주의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테러 행위에 대비하고 보복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테러 본거지 국가를 쳐들어 가는데 돈을 쓰느니 차라리 이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자본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일이 돈도 적게 들고 인심도 얻으며 향후 자본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얼마나 분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석도 자세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주장은 미국이 국내 공공 지출로 쓰는 비용이 GDP의 30%인데 대외원조를 위해 0.7%를 내는 것은 ‘새발의 피’와 같다는 것이었다. 돕지 않는 이유는 불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작위에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적 빈곤선이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계산하면 3~400불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고 한화로 따지면 1년에 50만원을 버는 것이니 기아를 면하기에 급급할 뿐 교육이니 의료니 하는 기본욕구조차 못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이들을 돕는 것은 인류 공동의 의무가 된다. 지구촌 빈곤 문제에 대해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겠고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맡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지 감시하고 이행을 촉구하는 등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20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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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900 Days: The Siege of Leningrad (Paperback, 2) - The Siege of Leningrad
Harrison E. Salisbury / Da Capo Pr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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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일간의 농성기- 레닌그라드 포위전 – The 900 Days; The Siege of Leningrad

해리슨 E 솔즈베리가 쓴 (구)소련 레닌그라드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포위전의 기록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즈에서 기자와 편집인 생활을 오랫동안 한 언론인이다. 주로 중국, 베트남, 소련의 공산 혁명 과정과 관련 국제 정세를 연구한 저서 여러 권을 냈다. 중학교 시절에 그가 쓴 “대장정”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원어로도 한 번 읽어 볼 작정이다.
소련이 2차대전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상이 어떤지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말이 900일이지 근 3년에 가까운 세월을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봉쇄 속의 갇힌 삶을 살았다. 이 싸움은 1941년 6월 22일에 독일의 기습으로 시작되었고 소련군이 승기를 잡기 시작한 44년 1월이 돼서야 포위는 풀리고 시민들은 자유를 되찾게 된다.
900일 간의 기록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전쟁 초반기의 민중 수난사에 서술은 집중되어 있다. 서두에서는 왜 전쟁이 나게 된 것인가를 설명한다. 독일이 전세계 지배 야욕을 충족하려면 숙적 영국과 소련을 처단해야 하는데 영국은 미국과 돈독한 관계이므로 우선 소련부터 정리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거기에 더하여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지방의 원유나 식량 등을 전쟁 물자로 징발해야 할 실제적 필요성도 컸다고 한다. 곧 독일이 침략할 것이라는 첩보는 갖가지 경로를 통해 접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의 지도자인 스탈린 서기장은 독소 불가침 조약만을 맹신하면서 독일이 위협하면 일부 타협책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는 안이한 정세 판단을 했기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게다가 스탈린은 전쟁 직전인 30년대에 경험이 많은 군사지도자들을 숙청한 바 있다. 그 결과 현장 지휘관들의 능력 부족, 경험 부족 문제도 심각했던 모양이다.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각국의 강군을 상대로 전투경험을 갈고 닦은 독일군에 비해 소련군은 군비 면에서나 지휘관의 자질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에 파죽지세의 적군에 밀려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레닌그라드에 최후 방어선을 치고 항전에 들어가게 된다.
본토 모스크바와의 육상 교통로가 끊어진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300만에 달하는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방법이었다. 곧바로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었는데 식량 조달이 점점 여의치 않아짐에 따라 배급량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41년 연말이 최악이었는데 비전투원인 아동이나 부녀자의 경우 125그램의 빵이 하루 양식의 전부였다고 한다. 식빵 한 쪽을 50g이라고 치면 2장 반으로 하루를 견뎠다는 것이다. 초근목피는 기본이고 우리 역사 속의 남한산성 농성이나 보릿고개의 참상과 같은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개와 고양이, 그리고 쥐가 자취를 감췄고 도서제본용 풀을 끓여 먹거나 가죽 혁대를 푹 고아 먹는 것은 훌륭한 식사 축에 속하게 되었다. 기아로 인한 근위축증 및 영양실조에 위한 합병증을 않고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책에는 그렇게 굶어 죽어가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소련군의 필사적인 반격으로 보급물자를 수령할 교두보를 교외에 확보하고 도시 북서쪽에 있는 라도가 호수가 얼자 호수 빙판 위로 보급로를 개척해 식량을 조달함으로써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게 된다. 당시 라도가 호수 위의 얼음길은 ‘생명의 길’이라고 불리웠다. 이 길로 생필품이 들어 왔고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이 길을 통해 보다 안전한 도시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점차 이곳는 군사도시처럼 변해갔다. 군인과 군수공장 노동자, 공무원과 경찰 등과 같은 필수 인력만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람들이 전쟁시기에 일상적인 문명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기에 교향곡 7번을 작곡했고 지인들을 불러 자신의 작곡한 부분을 연주로 들려주었다. 문인들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애국적인 시와 사기 독려문. 시민들을 위로하는 글을 발표했다. 박물관과 공연장 그리고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본연의 일을 하면서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단지 생계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버티는 것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적과 싸우는 것임을 서로 공유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냈던 것이다.
레닌그라드가 해방된 것은 자체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주요하게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의 전세가 기울자 레닌그라드 포위 병력이 지원군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농성전의 기록으로는 기간과 희생자의 수에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900일 동안 대럐 백 만 명 정도의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한다.
이 책은 구 소련 시절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되지 못했다. 이유는 레닌그라드 항전 초반기의 실패를 최고존엄의 오판으로 돌리는 등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그들은 곧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무모한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것은 고금이 마찬가지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202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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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bridged Teaching Edition (Paperback, Teaching)
하워드 진 외 지음 / New Pr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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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 저항사 –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다. 이번에 원어로 읽은 책은 학생의 역사 공부를 위한 축약본이자 워크숍 용 연습문제가 달려 있는 교육용 참고 도서다. 역사 교사인 케이시 에머리가 연습문제와 교수법을 첨부했다. 에머리가 이 책을 편집한 것은 현행 미국 역사 교과서의 편향을 바로 잡고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 정본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대안 역사서에도 접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주체적이고 비판적 의식을 가진 시민으로 기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이는 하워드 진의 역사 서술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그는 정복자, 승자, 지배자의 사관으로 저술되는 정본과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 피정복 원주민, 피지배자 민중, 식민지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미국의 역사를 조망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였다.

피지배 민중이란 어떤 사람인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콜럼버스의 도착을 환대했지만 도리어 노예가 되어 금 채취에 동원되거나 농장에 배속되어 강제 노동을 했다. 미국의 경우엔 원주민들에 대한 전쟁, 축출, 보호지역 강제 수용 등이 일어났지만 공식 역사는 이를 구입이나 협정 체결을 통한 영토 확장으로 미화한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나름의 농업 문명을 가지고 순탄하게 살아왔는데 서구에서 온 불한당들에게 조상대대로 물려받아 왔던 땅을 빼앗긴 것이 서부 개척의 역사의 진면목이라고 정직하게, 공평하게 평가하고 있다.

인디언뿐만 아니라 노동자, 소농, 흑인, 여성, 식민지 주민 모두에게 저자는 공정한 관심을 기울여 그들이 어떤 비참한 상태에 놓였고 어떠한 투쟁을 거쳐 어떠한 정의를 쟁취하게 되었는가를 시대별로 서술한다. 노예제 존속을 두고 맞붙었던 남북전쟁, 승리했던 북부쪽 이념의 불철저성,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끈질기게 존속했던 차별 대우를 열거하며 미국 독립선언서의 평등이나 자유, 행복 추구와 같은 미사여구가 얼마나 허언이면서 선택적으로 활용되는지를 폭로한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서술 또한 방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노동 운동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들이 모두 미국에서도 한 차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사안의 축약적 반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동 시간의 축소 (그들은 10시간 노동제를 위해서도 한참을 싸웠다.) 노동 조건 개선 (작고 환기가 안 되는 침침한 방에서 옷을 만들던 미국 소녀들은 청계천 피복 노조를 떠올리게 했다), 임금을 현행 화폐로 달라는 요구 (자본가들은 월급 대신 식당 쿠폰과 같은 회사 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증권으로 퉁치려고 하였다.) 는 결국 모두 관철되었지만 모두 블랙리스트 등재, 취업 불이익, 체포, 투옥, 반란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과 같은 막대한 댓가를 치른 끝에 얻어낸 것이지 지배계급이 순순히 내어어 거저 얻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망이 없을 것 같았던 이들 피지배 민중과 약자들의 투쟁은 30년대와 60~70년대에 이르는 민중들의 거대한 저항에 힘입어 점차 그들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고 제도화된다. 8시간 노동제가 공인되고 노동자들의 고충을 처리하는 기관이 설립된다. 여성투표권이 보장되며 흑백분리의 여러 제도들이 철폐된 것이 성과다. 그렇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 도입과 더불어 노조의 세력은 약화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며 민주당 공화당 가릴 것 없이 호전적인 외교전략으로 전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어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며 지배엘리트의 통치를 공고화하려는 것은 여전하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진의 대안과 전망은 무엇인가? 이는 저자 후기에 간략히 나타났는데 깨어있는 민중들이 지치지 않고 진상을 폭로하고 역사를 기억하며 주변 시민들을 조직하여 다수 민중의 의지가 관철되는 정치 체계를 수립하는 것에 있다. 그러기 위해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고 대안적인 역사를 서술하여 학생과 시민들에게 교육하며, 반전, 반핵, 반차별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같은 민중운동의 싹은 지금도 굳건히 살아있으며 이제까지 죽은 적도 없다는 것이 그의 낙관적인 전망과 견해다.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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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Captain James Cook (Paperback)
Arthur Kitson / Alpha Edition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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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쿡 선장 일대기 - The life of Captain James Cook

영국의 발명가인 아서 킷슨이 1907년에 발간한 제임스 쿡 선장에 관한 칭송 전기다. 호주 가이드북에 영국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역사를 설명해주는 책으로 추천되어 읽어 보았다.
영국이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은 영국쪽 입장이겠다. 그전에도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 각국 선원들이 간헐적으로 흔적을 남기기는 했다. 하지만 쿡처럼 철저히 관찰하고 기록과 지도를 정밀히 남기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쿡은 소싯적부터 배에서 도제로 일했고 커서는 해군에 입대하여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 쟁탈전에 참전한다. 주로 프랑스와 퀘백 지방을 놓고 다퉜는데 이때 쿡의 역할은 지형 관측, 항로 개척의 임무였다. 임무 수행에서 꼼꼼함과 정밀함을 인정받아 귀국 후 남해 탐험선인 엔데버 호에 승선기회를 얻게된다.
새로운 남방 영토를 발견 개척하려는 것도 동기 중에 하나였겠지만 1차 탐험의 주된 목적은 금성의 태양 모습을 관찰하여 본토 영국에서의 관측치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관측장소는 지금의 타이티 섬으로 정해졌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엔데버호는 대서양 마데이라섬을 경유하여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남미로 향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해안을 따라 항해한 후 혼 곶을 거쳐 태평양으로 나아가 타이티 섬에 도착하여 관측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후 폴리네시아 제도의 여러 섬을 방문하여 원주민들과 무역 등 교류를 하고 누벨칼레도니 섬,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을 일주하였으며 호주의 동해안 곳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긴다.
쿡은 한 번 나가면 보통 2년에서 4년간 항해를 했기 때문에 식량 조달과 파손 장비 수리 문제는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식량은 주로 원주민들과의 물물교환으로 확보하였는데 영국측이 댓가로 내놓은 것은 구슬이나 못, 도끼 등 공산품이었다. 원주민들은 아직 철기문명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단단한 재질의 철기는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지 못할 경우 훔치는 것도 불사하였다고 한다.
쿡은 괴혈병의 치료나 대응방법을 고안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생기는 이 병 때문에 장거리 항해 선원의 20%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쿡은 절인 양배추라고 할 수 있는 사우어 크라우트와 맥아즙 (엿기름)을 상비하여 두고 이를 정기적으로 섭취케 함으로써 괴혈병으로 사망하는 선원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쿡이 만난 원주민이 보인 반응에는 여러 갈래가 있었다.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호기심을 보이고 교역에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아예 접근을 금지하며 위협하는 부족들도 있었다. 친해지면 성인식이나 선조 추모 예식 등에 초대받아 참례하기도 했고 그들의 공연을 함께 즐기고 품평을 일지에 남기기도 했다.
쿡이 다닌 곳은 진정한 해외일주라고 할 수 있다. 남극까지는 못 갔지만 유빙의 한계점까지는 내려갔다. 북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엥커리지의 에스키모를 만나고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서 군인들의 영접을 받기도 한다. 일본과 중국의 항구(마카오와 광둥)에 들러 물자를 보급받았고 귀로엔 자카르타도 들른다.
그가 죽은 곳은 하와이의 빅아일랜드다. 원주민 부족과 잘 지내다가 작별시점에 부속 선박의 도난 문제로 추장을 억류하려던 일이 틀어져 우발적 분쟁에 얽히고 돌과 창에 맞아 죽는다. 사체는 토막내어 일부 먹히고 일부 절여지고 일부는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귀환한 부하들이 가져온 쿡의 항해일지는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고 미망인과 자식들에게는 연금이 따로 주어졌다.
쿡이 활약한 1760년대말에서 1770년대말까지의 시기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조의 치세였다. 탕평책이나 거중기의 활용 정도가 당대의 업적으로 나오는 것에 비교해 당대 영국은 그 포부나 실력면에서 월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 겁먹지 않고 용맹히 나아갔던 탐험가들의 정신은 여전히 경외스럽게 느껴진다.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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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age to Catalonia (Paperback)
조지 오웰 지음 / Penguin Books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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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찬가- Homage to Catalonia 조지 오웰

한글로 번역된 책은 2006년도에 영화 "판의 미로"를 보고 나서 읽었다. 영화와 책은 모두 스페인 내전을 다룬다. 스페인 내전은 선과 악이 싸워 선이 패배한 케이스로 기억된다. 프랑코의 군사반란과 이후 도래할 파시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스페인 내외의 민주세력이 결집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스페인 내전은 1930년대 유럽을 강타한 파시즘을 둘러싼 국제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인민전선을 지원한 것은 소련 공산당이었다.인민전선은 좌파민주진영의 총집합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공산당에서부터 무정부주의자, 노조원, 중산층까지 다 모였고 온갖 정당한 명분은 이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었다. 민주적 절차로 구성된 합법정부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것, 노동자 농민의 복리를 우선시 한다는 것, 민주주의를 지키고 군사독재를 막아낸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영국 독립노동당의 소개로 종군하게 된 오웰은 자매당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맑스주의 노동자 당이 주도하는 민병대에 배속되어 전선에 배치된다.
책은 대략 3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오웰이 36년 겨울에 바르셀로나에 와서 전략요충지인 우에스카 공방전의 지역전술 단위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활약과 무용담이 나온다기보다는 참호전의 고단함과 열악한 환경을 생동감있게 묘사한 부분이다. 쥐와 이에게 시달린 이야기, 졸음과 추위에 맞서 싸우는 고생담이다.
두번째 파트는 잠깐 휴가 나와서 목격한 좌익간의 내전과 그 흉악한 속사정을 폭로하는 것이다. 일종의 노선갈등이었다. 당신 소련의 무기 지원에 힘입어 공산당의 발언권이 세졌는데 이들은 교조적인 2단계 혁명론을 고수한다. 즉 선파시즘 타도 후사회주의 건설론이다. 눈앞의 프랑코를 없애기 위해선 노동자의 기업 접수, 농지배분, 정치세력별 민병대 운영 등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잠시 부르조아 민주주의 질서를 복원시켜야 겠다는 구상을 펼친다. 문제는 근본주의 분파가 이를 혁명의 후퇴로 간주하면서 무기 반납 거부 등 엇박자를 낸다는 것이다.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정치적 능력이 당시 인민전선 참여 분파들에겐 극히 부족했던 것 같다. 주된 해결책은 무력으로 압도하는 것이고 대화상대이여야 할 다른 정파를 파시스트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하는 것이었으니까
세번째 파트는 부대에 복귀한 오웰이 전선에서 총상을 입고 의병제대한 후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다시 겪게 되는 좌파정치의 난맥상이다. 오웰이 속했던 맑스주의 통힙 노동자 당은 이제 완전히 폐족이 되어 있었고 외국인이지만 언제라도 체포, 구금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오웰이 분노한 것은 자기 정파가 탄압을 받고 있다는 현상 자체이라기 보다는 이런 분열이 가져올 반파시즘 연합 전선의 약화의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편협함과 이기심, 비민주성 등이었다.
당시 유력한 정치세력이었던 집권 공산당이 저질렀던 편협성, 비열한 악선동, 무관용의 태도와 정치력 부족은 아직도 우리 정치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 치열한 반성과 개선점 찾기가 과제로 다가왔다.
이런 실망과 환멸로 가득찬 내란에 참여한 외국인으로서 오웰이 찬가를 써서 오마주를 바치고 싶어했던 대상은 누구였을까? 넓게 본다면 늘 느려터지고 비효율적으로 행동하지만 친절하고 사람의 냄새를 풍겼던 스페인 민중 일반에 대한 찬미였다고 생각한다. 작은 범위로는 오직 민주주의와 평등세상의 건설이라는 대의 하나에 헌신하여 전선을 지킨 애국자들 그리고 민주주의 사수라는 순수한 일념으로 참전했고 희생되었던 국제여단의 외국인 참전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라고 짐작해본다.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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