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종식 –The End of Poverty콜럼비아대 교수인 제프리 삭스가 쓴 세계 경제 불평등 해소 방안에 관한 정책 제안서다. 저자의 전공은 거시경제학이기 때문에 주로 환율, 무역, 재정정책, 통화량 따위를 연구하는 것이 본업이 된다. 1985년 우연한 기회에 남미의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볼리비아 경제 담당 관리들과 대화를 하면서 당시의 극심했던 인플레이션을 잡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 주효하여 정책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라고 본인은 주장한다.) 이후 공산권 붕괴 당시 경제 혼란에 빠지게 된 폴란드를 위기에서 건져낸 후, 연달아 소련의 자본주의 편입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여러 가지 정책 제안을 한 바 있다.여기까지만 본다면 하버드 출신 경제학자가 자신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여러 개발도상국을 도와준 미담 사례를 약간의 과장을 섞어 자랑하는 것으로 치부할 여지도 있겠지만 이것은 배경에 불과하고 이 책의 진면목은 지구촌 빈곤 지역의 현황과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의무 원조를 촉구하는 중후반부라고 볼 수 있다.삭스가 주장하는 지구촌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빈곤의 양상은 국가별로 다르기에 단지 몇 가지 거시 경제학의 지표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그 나라의 역사, 지리, 자원, 산업 구조 등을 두루 살펴 특화된 진단과 대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정학에서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는데 볼리비아나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지역 국가의 빈곤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내륙국 요인과 대륙 수운의 미비와 같은 조건에 주목한다. 이는 이들 국가가 국제 경제 분업 구조에 편입을 저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또 하나는 빈곤의 덫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빈익빈”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지형 조건 때문에 혹은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빈곤이 누적되면 지리적 난관을 극복할 인프라 건설도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인재 양성도 어려워지므로 빈곤을 탈출할 사다리에 첫발조차 올려 놓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저자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들이 빈곤 탈출의 사다리에 오르도록 국제사회가 초반 여건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를 얽어매고 있는 대외 채무도 과감히 탕감해 주고 이들이 삶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고 약간의 축적을 일궈 자립적 국민 경제를 건전하게 꾸릴 때까지는 대부가 아닌 무상원조를 일정 기간 지속하자는 것이다.도대체 얼마를 지원해 주어야 하며 누가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국제 사회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간 합의를 했으므로 이를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대안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고 하기로 약속한 것만 이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룰은 선진국의 국내 총생산의 0.7%를 공적 개발 원조금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주로 OECD 국가들이 내게 되는데 이미 완불을 하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미국도 절반 정도만 내고 있는 등 미온적인 도움에 그치는 나라가 많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이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GNI의 0.1%대를 지출하고 있기에 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최근 통계를 찾아 볼 수 있었다.)그런데 선진국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하는가? 또 이렇게 열심히 돕는다고 하여 과연 도와지는 일일까? 이는 선진국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도 책은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다.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하는 것은 인도주의의 발로가 가장 큰 이유가 되지만 그들을 돕지 않으면 그 여파와 후과는 곧 선진국들이 치르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러인데 불평등한 국제 경제 관계와 그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국민들의 상황을 본 젊은이들은 극단주의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테러 행위에 대비하고 보복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테러 본거지 국가를 쳐들어 가는데 돈을 쓰느니 차라리 이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자본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일이 돈도 적게 들고 인심도 얻으며 향후 자본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얼마나 분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석도 자세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주장은 미국이 국내 공공 지출로 쓰는 비용이 GDP의 30%인데 대외원조를 위해 0.7%를 내는 것은 ‘새발의 피’와 같다는 것이었다. 돕지 않는 이유는 불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작위에 있었던 것이었다.절대적 빈곤선이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계산하면 3~400불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고 한화로 따지면 1년에 50만원을 버는 것이니 기아를 면하기에 급급할 뿐 교육이니 의료니 하는 기본욕구조차 못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이들을 돕는 것은 인류 공동의 의무가 된다. 지구촌 빈곤 문제에 대해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겠고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맡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지 감시하고 이행을 촉구하는 등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202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