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00 Days: The Siege of Leningrad (Paperback, 2) - The Siege of Leningrad
Harrison E. Salisbury / Da Capo Pr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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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일간의 농성기- 레닌그라드 포위전 – The 900 Days; The Siege of Leningrad

해리슨 E 솔즈베리가 쓴 (구)소련 레닌그라드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포위전의 기록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즈에서 기자와 편집인 생활을 오랫동안 한 언론인이다. 주로 중국, 베트남, 소련의 공산 혁명 과정과 관련 국제 정세를 연구한 저서 여러 권을 냈다. 중학교 시절에 그가 쓴 “대장정”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원어로도 한 번 읽어 볼 작정이다.
소련이 2차대전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상이 어떤지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말이 900일이지 근 3년에 가까운 세월을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봉쇄 속의 갇힌 삶을 살았다. 이 싸움은 1941년 6월 22일에 독일의 기습으로 시작되었고 소련군이 승기를 잡기 시작한 44년 1월이 돼서야 포위는 풀리고 시민들은 자유를 되찾게 된다.
900일 간의 기록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전쟁 초반기의 민중 수난사에 서술은 집중되어 있다. 서두에서는 왜 전쟁이 나게 된 것인가를 설명한다. 독일이 전세계 지배 야욕을 충족하려면 숙적 영국과 소련을 처단해야 하는데 영국은 미국과 돈독한 관계이므로 우선 소련부터 정리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거기에 더하여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지방의 원유나 식량 등을 전쟁 물자로 징발해야 할 실제적 필요성도 컸다고 한다. 곧 독일이 침략할 것이라는 첩보는 갖가지 경로를 통해 접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의 지도자인 스탈린 서기장은 독소 불가침 조약만을 맹신하면서 독일이 위협하면 일부 타협책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는 안이한 정세 판단을 했기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게다가 스탈린은 전쟁 직전인 30년대에 경험이 많은 군사지도자들을 숙청한 바 있다. 그 결과 현장 지휘관들의 능력 부족, 경험 부족 문제도 심각했던 모양이다.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각국의 강군을 상대로 전투경험을 갈고 닦은 독일군에 비해 소련군은 군비 면에서나 지휘관의 자질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에 파죽지세의 적군에 밀려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레닌그라드에 최후 방어선을 치고 항전에 들어가게 된다.
본토 모스크바와의 육상 교통로가 끊어진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300만에 달하는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방법이었다. 곧바로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었는데 식량 조달이 점점 여의치 않아짐에 따라 배급량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41년 연말이 최악이었는데 비전투원인 아동이나 부녀자의 경우 125그램의 빵이 하루 양식의 전부였다고 한다. 식빵 한 쪽을 50g이라고 치면 2장 반으로 하루를 견뎠다는 것이다. 초근목피는 기본이고 우리 역사 속의 남한산성 농성이나 보릿고개의 참상과 같은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개와 고양이, 그리고 쥐가 자취를 감췄고 도서제본용 풀을 끓여 먹거나 가죽 혁대를 푹 고아 먹는 것은 훌륭한 식사 축에 속하게 되었다. 기아로 인한 근위축증 및 영양실조에 위한 합병증을 않고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책에는 그렇게 굶어 죽어가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소련군의 필사적인 반격으로 보급물자를 수령할 교두보를 교외에 확보하고 도시 북서쪽에 있는 라도가 호수가 얼자 호수 빙판 위로 보급로를 개척해 식량을 조달함으로써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게 된다. 당시 라도가 호수 위의 얼음길은 ‘생명의 길’이라고 불리웠다. 이 길로 생필품이 들어 왔고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이 길을 통해 보다 안전한 도시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점차 이곳는 군사도시처럼 변해갔다. 군인과 군수공장 노동자, 공무원과 경찰 등과 같은 필수 인력만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람들이 전쟁시기에 일상적인 문명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기에 교향곡 7번을 작곡했고 지인들을 불러 자신의 작곡한 부분을 연주로 들려주었다. 문인들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애국적인 시와 사기 독려문. 시민들을 위로하는 글을 발표했다. 박물관과 공연장 그리고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본연의 일을 하면서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단지 생계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버티는 것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적과 싸우는 것임을 서로 공유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냈던 것이다.
레닌그라드가 해방된 것은 자체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주요하게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의 전세가 기울자 레닌그라드 포위 병력이 지원군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농성전의 기록으로는 기간과 희생자의 수에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900일 동안 대럐 백 만 명 정도의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한다.
이 책은 구 소련 시절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되지 못했다. 이유는 레닌그라드 항전 초반기의 실패를 최고존엄의 오판으로 돌리는 등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그들은 곧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무모한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것은 고금이 마찬가지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202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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