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 박완서 묵상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용히 보내기로 한 게 슬그머니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바탕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들어와야 잠이 올 것 같은 이상한 밤이었습니다.
드디어 부부가 팔짱을 끼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기웃대보아도 우리를 받아주는 데는 없었습니다. 모두 끼리끼리만놀고 우리는 거들떠도 안 본다는 소외감이 우리를 집에 있을 때보다 더욱 쓸쓸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데가 성당이었습니다. 말이 성당이지상가 4층에 자리잡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당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자정미사는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렸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의식을 따라 하기도 벅찼습니다. 아마 이 사람 저 사람눈치 보기에 바빴을 겁니다. 초라한 성당답게 소박하게 꾸며놓은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예식도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자정이 지나고 배에는 시장기가 느껴졌지만 남들이 다 받아먹는 과자 같은 것도 우리에겐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지독한 추위였습니다. 날을 세운얼음이 살갗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독하고 매서운 추위였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안에서 폭발하는 기쁨 때문에 추위조차 쾌적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순전히자유의사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마중하러 갔다는 게 그렇게 기뻤습니다. 생전 처음 착한 일을 한 것처럼 소리내어 뽐내고 싶게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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