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기다릴게 ㅣ 넥스트
한세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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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기다릴게, 옥상으로 와.

한세계, 『옥상에서 기다릴게』(자이언트북스)

 


청소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게 만들어 준 작가님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읽는데, 마음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정확하게 형용할 수 없었다.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 다음 책장을 넘기기 무섭기도 했다. 유신이와 영원이가 갖는 마음이나 감정 등을 누렸던 그때의 나에게 미안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나에게 자신, 믿음, 확신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보다 남에게 기대야만 존재한 채 살았달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는 영원의 쌍둥이 형 김지원의 부탁을 거절하다가 결국 수락하는 유신. 유신은 남모르게 대필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꼭 용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지만, 대필할 때만큼은 시간이 잘 간다고 했다. 대필을 떠나서 ‘글’이 유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신은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영원은 바로 알아차리고 유신에게 끊임없이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 정작 자신의 세계에서는 기죽는 모습이면서. 그래도 유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있어서 영원의 세계도 분명 넓어졌다. 유신에게 대필은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이 쓴 글이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자리 잡는 것을 볼 때마다 유신은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공허할 것이다. 의뢰받은 사람인 척 글을 쓰고 대가(돈)를 받지만, 유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신이 쓴 글은 의뢰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유신의 그런 마음을, 유신도 모르는 유신의 모습을 알아준 건 김영원이었다. 영원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위로를 건네고 보듬어 줄 다정함이 있다. 김영원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친구를 구하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영원. 유신은 영원의 죽음 이후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는 것 같다. 영원을 죽인 사람이 본인이라고, 유신은 그렇게 영원을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 절망을 복합적으로 안은 채 영원과의 추억을 외로이 돌아보며, 쓴맛을 느낀다. 유신은 영원을 잊으려 하기보다(영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조차 미안해서 애써 영원과의 시간을 마음 깊숙이 꾹꾹- 눌러 내린 건지도 모른다. 영원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이 준 ‘영원의 일기장’ 때문에 유신은 어쩌면 영원과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넘기기까지, 일기장을 다 읽기까지 유신은 용기가 필요했다. 영원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영원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원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유신은 두려웠다. 영원을 향한 복합적인 감정을 달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영원과 유신이 처음 대화를 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주는 뻥- 뚫린 시원함과 동시에 사방이 뚫려 괜히 느껴지는 서늘함이 두 사람의 거리를 가깝게, 그리고 옥상을 찾는 이유에 ‘진짜 이유’를 찾아준 것 같다. 유신과 영원은 사방이 뚫려 있는 옥상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 시기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학업 문제, 부모님과의 갈등 등 수많은 것이 쉴 새 없이 몰려와 정신없는 와중에 숨구멍을 찾은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이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때론 형용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된다. 그 숨구멍이 둘에게는 옥상이었다. 옥상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이 아니었다면 이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가 되어줄 수 없었을 테니까, 서로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덥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한 여름을 보내지 못했을 테니까. 옥상에서 자주 만나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본인 세계에 들어오는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성격이 좋고 언제나 웃고 다니는 영원은 지금껏 보여준 모습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진짜 모습을 고백하는 영원은 친구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영원은 남들이 하는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형 지원과 영원을 비교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또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엉켜 영원을 힘들게 했다. 영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너무 늦은 걸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를 드러냈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각자 보고 싶은 대로 영원을 보고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주 우리가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믿는다. 영원은 사람들의 편한 생각의 피해자가 아닐까. 진짜 모습을 꼭꼭 감춘 영원이 유신에게 고백한 것은 유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믿음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영원은 진짜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상대가 유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신과의 첫 만남이 영원에게는 강렬했을 것이다. 난간에 서 있는 유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유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기장에 적은 걸 보면 영원과 유신은 특별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원은 없고, 영원의 일기장은 남겨져 있는 참 외로운 이 상황. 그 사람의 온기는 없는데,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일기장에는 그날 그 순간의 그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어 읽는 동안 심장이 비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유신은 그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평생 영원을 향한 죄책감으로 살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게 되면 영원과 보낸 찬란하게 눈부시고 행복했던 날들이 후회와 눈물로 번질 테니까. 영원의 죽음의 죄책감에 갇혀 살아가던 유신에게 지원과 영원의 일기장은 유신에게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유신은 영원이 남긴 일기를 통해 영원의 진심을, -영원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함으로써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면서도 영원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영원의 일기를 읽는 유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영원에게, 유신에게 대입해서 상상한 결과 나는 유신의 입장에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줄걸, 괜찮다고 말해줄 걸,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줄 걸, 네가 있어서 내 세상이 특별해졌다고 말해줄 걸,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렌다고 말해줄 걸’ 등 수많은 후회로 스스로 마음에 짙은 멍을 만드니까. 남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이렇게 무겁다면, 차라리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내가 떠나고 남겨진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주변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내가 떠난 이후 남겨진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가라앉아 있다. 나를 떠나보내는 일이 슬픈 일이지만, 금방 털어내고 웃으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물이 나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다면 모를까,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후회 대신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을 아주 가끔 떠올리면서. 유신은 영원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슬퍼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니 영원을 제대로 보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원이 바라는 건 유신의 행복일 것이다. 유신 당사자보다 유신의 행복을 더 간절히 바랐다. 영원은 알았을까, 영원이를 만난 덕분에 유신이 세상은 환해졌다는 것을. 영원이 살아있다면, 축- 늘어져 있는 유신의 어깨를 힘껏 때리며 “정신 차려! 기운 없으면 달달한 게 최고지!”라며, 주머니 속에서 달콤한 과자를 꺼내 유신의 손에 쥐어 줬을 것이다. 영원과 함께 옥상에서 보낸 시간, 그 여름은 평생 유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매년 여름이 오면 영원과 함께 했던 옥상이, 나눠마시던 이온 음료가, 피식- 웃음을 자아내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내밀어 얼굴을 환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영원이 유신과 함께 할 것이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 속에 꽁꽁-, 감췄던 마음을 고백한다. 고백도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고 했던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평생 후회로 남는 고백이 잔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지원이 유신에게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제안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원이 떠났는데도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아서 밉기까지 했다. 근데 영원의 유서를 써달라고 한 이유, 영원을 향한 지원의 진심을 듣고 나서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녹았다. 지원이도 영원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고,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영원이 있을 때,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원은 그런 지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원은 자꾸 영원이 생각나고, 잠을 잘 수 없는지도 모른다. 유신과 지원은 영원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한 것이다. 인정하기 싫어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정하기에는 영원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던 거다. 영원이 옆에 있었다면, “오글거려! 미안하면 앞으로 잘해!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구먼!”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분위기를 띄워줬을 것이다. 유신과 지원의 사이에는 영원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영원을 아는 아이들이라면 영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영원은 자신을 못났다고 했지만, 전혀 아니다. 그 말을 직접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유신의 모습은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아팠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기에. 당시엔 그 말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어째서 용기를 내어 솔직한 내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솔직히 털어놓고 나서 이어질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와 멀어질 거리를 지레짐작하여 겁내어 숨기를 선택했다.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싫어서 부정을 강하게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나와 반대로 영원은 언제나 솔직히 드러내고, 언제나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영원은 피하지 않았다. 영원의 확고한 행동과 말이 유신의 세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영원과 유신을 보며 알았다. 흔히 ‘첫사랑’이라고 할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며, 가끔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신에게 영원이 첫사랑인지 알 수 없으나,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읽는 내내 영원과 유신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남이 보기엔 사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하고 솔직했다. 뒤늦게 영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유신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네.’ 싶어 더 씁쓸했다. 영원도 유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영원이 감정에 솔직했던 건 유신 앞에서만이었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일기장 앞에서는 유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더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다. 용기를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라는 가정을 자꾸 한다. 영원의 죽음이 유신과 지원, 그리고 영원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만큼 나 또한 너무 슬프니까. 영원은 소설 인물 중 하나이고, 본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데 왜 자꾸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울컥했다. 유신과 지원이 영원을 그리워하며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눈앞이 흐릿했다. 특히, 지원이 영원을 질투했다는 것과 영원이 자신과 비교 당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갔고 그것에 만족을 느꼈다는 것, 영원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 부분에서는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 버스 안이어서 다행이었지, 집에서 읽었다면 청승맞게 눈물을 질질-, 짰을 것이다. 영원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불가능한 가정을 자꾸 한다. 차라리 영원이를 몰랐으면 좋았을 만큼 영원이가 보고 싶다. 영원이 같은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싶다가도 나는 누군가에게 영원이 같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금방이라도 영원이가 축- 쳐져 있는 내 어깨 위로 시원한 이온 음료를 올리고 히죽-, 웃어줄 것 같다. 영원을 잃은 건 유신과 지원인데, 나는 왜 유신과 지원이 갖는 마음과 감정을 갖는 걸까?(F성향이 강하기는 하나, T일 때도 있다. F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나를 스스로 비웃는다. 정해진 답은 없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이 답이니까.


영원과 유신은 ‘옥상’을 시작으로 서로의 세계를 넓히고, 서로의 세계가 되어주었다. 생각지 못한, 이별로 인해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해서 차라리 흐릿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유신에게 영원의 쌍둥이 형 지원은 ‘영원’을 함께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지원과 유신의 관계 또한 영원 덕분에 이어진 것이다. 영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행복과 사랑, 다정함을 아무 조건 없이 주던 아이였다. 유신이 스스로 몰라서 영원이 알려준 것처럼 유신은 영원의 그런 다정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영원의 예쁜 모습들을 직접 말해주지 못해 후회를 반복하지만, 그 후회는 이제야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영원의 죽음에 솔직하게 슬퍼하며 한층 더 성장하는 유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롭고 두려움이 앞서는 일을 유신은 잘 해냈다. 앞으로 영원을 향한 마음을 정리(추억으로 만드는 시간을 의미한다)하는데 시간을 더 보내야 할 것이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지원이 있다’(유신과 지원이 더 친해지면, 영원이 꿈에 나와 왜 둘이 더 친해진 거냐며 유신에게 삐질지도 모르겠다). 지원과 함께라면 옥상으로 가는 길도, 영원을 떠올리는 일도, 영원이 남겨두고 간 일기장과 책들을 꺼내 읽는 일도 슬픔이 아니라 영원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영원은 유신과 지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 또한 영원을 내 기억이 다하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기억하니까, 유신이 대필을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신은 대필하면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의 존재와 위치가 선명해진다고 했다. 유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단 대필이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고, 영원은 대필이 아닌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고, 써보라고 계속 옆에서 유신의 존재에 색을 칠했다. 유신은 두고두고 영원이 자신에게 해준 말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영원처럼 자신의 글이 재밌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쓸 것이다. 영원이 일기장에 적은 대로 유신은 영원에게 엄청 고마워 할 것이다. 유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영원은 그 누구보다 좋아할 것이다. 대필을 멈추고, 영원이 자신에게 남긴 책들을 읽고 형식 상관없이 한 편씩 글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넣는 모습을 보니 유신의 세계가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유신이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일, 다 영원의 덕분이다. 누군가의 세계를 이렇게 단단하고 넓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능력을 순간순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이 같은 존재들이, 유신이 같은 존재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님 말대로 세상이 조금은 더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영원과 유신이 많은 세상이라면 힘든 일들이 몰아 닥쳐도 버틸 힘이 생길 것 같다. 세상이 사랑스러워지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시간이 흘러 그 마음이 옅어지더라도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언제든 내 발밑에서 내 세계를 단단히 받쳐줄 테니까. 절대 무너지지 않을 마음이니까. 우연히 지나친 건물의 옥상을 보다가, 지는 노을을 보다가,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입을 벌리고 시원하게 웃는 학생들을 보다가 그렇게 나의 하루를 채우는 순간순간에서 영원과 유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원이 유신에게 유신의 세계를 알려주고, 세계를 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한 것처럼 나는 ‘나에게’ 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의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세상 곳곳에 유신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다가가 세계에 발을 들여 서로의 세계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는 행복한 날을 상상하며 나에게 영원이 되어주는 연습을 부지런히 할 것이다. 언제일지 알 수 있지만 영원의 숨결이 내 안에 닿을 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준비가 된 유신에게 내가 쓴 글을 들고 찾아갈 생각이다. 유신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대필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유신을 응원한다는 핑계로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며칠을 밤새울 것이다. 『옥상에서 기다릴게』를 통해, 진짜 나를 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짜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영원과 같은 존재를 만날 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다짐 끝에 붙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원과 같은 존재가 되는 날도.


영원과 유신이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옥상’을 떠올린다. 옥상에서 둘이 속삭이던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갔을 것이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는 영원과 유신에게 찾아간 것이다. 영원과 유신, 바람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옥상에서의 둘의 시간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답고, 손을 대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이 투명한지. 아니, 지원과 나는 안다(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둘의 예쁜 모습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행복만 했어야 할 만큼 예쁜 둘인데, 세상이 둘을 질투하여 마법을 부렸다. 세상의 마법은 더 이상 유신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유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영원의 죽음을 유신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보내주는 중이니까. 유신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팠지만 행복했다. 유신이 부러웠다. 영원의 친구였고 친구이고, 친구일 테니까. 유신이 옥상을 찾을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유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이 있을 것이다. 유신이 “야, 김영원!”하고 부르면 세상 밝은 얼굴을 하고 뒤돌아보며 “왜 이제 와! 보고 싶었어!”라고 영원이 말할 것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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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김은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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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타의 삶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있을까.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모로 박사의 딸』(황금가지)



 

『모로 박사의 딸』은 H.G.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이 19세기 멕시코를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란 카를로타 모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과 그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이라는 줄거리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상상하다가 책장을 넘겼다. 상상했던 부분과 얼추 맞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전혀 다르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조금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생각의 뿌리에서 다양한 모양과 길이를 가진 줄기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가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만난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과 감정, 에너지 등을 낭비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몰입’하게 만든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를로타 모로의 삶에 발을 들인 순간, 그녀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카를로타 모로는 유카탄반도 야샥툰에 자리한 외딴 저택에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자랐으며,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아버지 모로 박사의 비밀스러운 실험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뿐이다. 카를로타의 단절된 삶이 부럽다고 하면,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가볍게 여긴다고, 복에 겨워서 우스운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삶이 내가 바라는 삶, 부러워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게 꿈일 정도로 바깥세상은 내가 숨 쉬고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버거운 곳이다. 단절된 삶에서 딱히 답답함을 느끼거나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 삶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이어짐보다 단절이 어울리는, 아니 애초에 단절이 아닌 다른 것은 들어올 틈이 없던 카를로타의 삶에 모로의 후원자(에르난도) 소개로 새 집사 ‘몽고메리 로턴’를 들이게 되었다. 이어서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던 정적인 그녀의 세계’는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등장으로 서서히, 그리고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절에 틈이 생기면서, 그 틈으로 그녀에게는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보고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답답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 오랫동안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모로 박사의 실험 후원자, 후원자의 아들과 사촌은 바깥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아닐 수 없다. 야샥툰 너머의 바깥세상을 향하는 기회가 드디어 그녀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그녀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을 가둔 야샥툰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에두아르도를 알면 알수록 야샥툰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그녀의 이성이 본능을 넘어섰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엇도 본능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걸까.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 후원자의 아들 ‘에두아르도’와 모든 첫 경험을 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처음 갖는 관계, 그리고 야샥툰을 떠나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는 삶 등등. 에두아르도의 등장은 몽고메리 로턴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카를로타를 비춘다. 스토리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카를로타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이성적이고 꽉 막힌 것처럼 보이던 카를로타는 본능 앞에서 당연하게도 무너졌고, 흔히들 하는 착각과 더불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그 미래를 확신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묶어둔 아버지 모로 박사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으니까.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들하고만 지낸 그녀의 문제점이 에두아르도와 함께 있을 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에두아르도는 그녀의 두드러진 문제를 약삭빠르게 알아채고, 그저 카를로타의 아름다움에 빠져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탐하고 있었고, 그걸 같은 남자인 몽고메리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정작 알아차려야 하는 카를로타는 에두아르도 앞에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상태다. 무엇보다 아버지 모로 박사는 실험 후원자의 후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딸 카를로타를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만든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을 부려 먹을 수 있는 동물 인간을 만드는 것이 조건이었지만 모로 박사는 시간이 갈수록 그렇다 할 결과물을 후원자에게 보이지 못했고, 후원자는 모로 박사의 후원을 점차 줄였다. 후원이 줄면 당연히 실험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테고 실험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한데, 금전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딸을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시키는 거라니.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욕심은 끝이 없었다. 자연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모로 박사는 이미 정신이 무너진 건지도 모른다. 자연의 문제는 모로 박사의 욕심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은 보기 흉하고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동물 인간뿐이다. 모로 박사가 남긴 유산은 카를로타가 말했듯이 ‘비참함과 고통’이다. 원하지 않는 탄생,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삶을 모로 박사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겁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카를로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를로타는 모로 박사가 만든 가장 완벽한 동물 인간이었고, 그 사실을 카를로타에게 숨겼다. 훗날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혼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카를로타는 아버지 모로 박사와 야샥툰이 자신의 전부였다. 하지만 모로 박사에게는 떠나보낸 부인과 자식이 있었고, 카를로타는 그저 대체품에 불과했다. 카를로타는 자신이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모로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카를로타를 정성껏 돌봤지만, 그건 떠난 아내와 자식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체품마저 떠나보낼 수 없어서 애써 발버둥 친 게 아니었을까. 모로 박사는 카를로타에게 잔인했다. 카를로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야샥툰을 사랑하지만, 숨어 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주할 때마다 혼란과 분노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모로 박사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카를로타가 감당해야 할 상처가 광활한 우주를 덮을 것 같다. 바깥세상과의 단절은 카를로타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니, 카를로타의 탄생은 그녀의 선택도, 그렇다고 신의 선택도 아니었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모로 박사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모로 박사는 허영심이 가득 찬 자신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 같지만, 자신이 벌인 실험에 대한 찬사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모로 박사의 거만한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애초에 모로 박사에게 동물 인간을 조건으로 후원을 한 후원자를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구린 짓을 해서라도 큰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들을 만든 신을 원망해야 할까? 원망의 화살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겨냥한다.


카를로타의 삶이 동물 인간의 삶보다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동물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동물 인간 ‘루페’가 오히려 열린 생각을 품고 있어서 놀랐다. 동물 인간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본능만 있을 거라고 단언한 내가 어리석었다. 루페는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야샥툰 바깥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밖에서의 미래를 꿈꾸는 것 같았다. 원했지만 현실이 동물 인간들을 쉽게 놓아줄 리가 있을까. 그들은 그저 모로 박사의 실험품이며, 후원자 에르난도의 소유물뿐이었다. 하지만 루페는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구체성을 띠며, 카를로타를 자극했다. 그녀가 자극에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루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리라. 카를로타는 루페가 자신의 여동생이고, 카치토가 자신의 남동생이라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루페가 오히려 그녀를 더 가족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페는 자신의 삶보다 카를로타의 삶이 더 걱정되었던 것 같다. 반갑지 않은 방문에 미리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동물 인간들 사이에서 다시 카를로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걸 보니 말이다. 동물 인간들이 떠나는 그 길은 동물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을까? 동물 인간으로 태어나 갇힌 세상을 살던 그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인간들과 섞여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카를로타와 몽고메리도 몸져누운 모로 박사를 두고,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루페가 돌아온 것처럼 카를로타 또한 다시 모로 박사 곁으로 돌아왔을까? 내가 던진 이 물음들은 카를로타의 삶이, 야샥툰의 삶이 그들에게 잔인해서 그 잔인함의 책임을 묻고자 위함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모로 박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만, 그는 몸져누워 곧 이승을 떠날 상태가 아닌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음을 목전에 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그가 책임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던 모로 박사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가 남긴 건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반복되어서는 안 될 동물 인간이다. 수많은 불행한 삶을 탄생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단절된 삶을 살던 카를로타가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 깨어나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깨달음이 이성인지,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동물적 본능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분법적으로 딱, 나눠서 표출된 것은 아니다. \루페가 아니었다면 이 깨달음조차 카를로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 같다. 카를로타가 놓친 것이 많다.


‘동물 인간을 만드는 실험’이라는 설정은 참신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 주제로 많은 작품이 나왔고,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니 동물과 인간에게 실험하여 믿고 싶지 않은 존재의 탄생이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 읽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카를로타와 같은 존재가 인간인 척하며 우리와 같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모로 박사와 같이 자신의 욕심과 허영심, 착각에 빠져 불행한 삶을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들’이 많을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모로 박사에 의해 탄생한 동물 인간들보다 실험이 아닌 자연의 섭리를 따라 세상에 첫 숨을 뱉고, 걸음마를 떼고 언어를 배우고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우리가 더 동물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자꾸 루페가 생각난다. 동물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열려 있는 생각과 태도,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는 루페가 카를로타였다면 스토리는 훨씬 더 격렬한 파동을 품은 채 결국 본인이 원하는 삶에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카를로타가 아니었다면 격렬한 삶의 굴곡을 잘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를로타도 동물 인간이었고, 그저 모로 박사가 탄생시킨 가장 인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동물 인간이자 모로 박사 곁에 부재한 자리를 채운 대체품에 불과한 삶을 살았지만,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것 또한 카를로타가 아닌가 싶다. 카를로타가 동물 인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동물 인간이 인간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만큼 비슷한 모습이라면 진짜 인간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물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절된 삶에서 벗이라고는 무수한 책과 동물 인간이었지만 자신도 동물 인간이었다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카를로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힘으로, 모로 박사를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으니. 카를로타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씩 나열하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호위하는 별들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앞으로 어떨까, 몽고메리는 카를로타의 곁에 계속 남아줄까. ‘모로 박사의 딸’은 정말 카를로타일까? 카를로타는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삶’의 첫걸음을 뗄 준비를 맞췄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이별, 카를로타가 바라는 삶의 끝에 카를로타의 야샥툰에서 함께 한 이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세상 곳곳에 있을 수많은 카를로타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을 가두려고 한다면 겁내지 말고 맞서라고 자신을 믿으라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카를로타의 삶은 정적인 것보다 흔들리는 게 더 어울렸던 걸까. 그녀의 삶이 흔들린 건 동물 인간들이 야샥툰을 벗어난 삶을 위해서였던 건 아닐까, 결국 카를로타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자신만의 삶을 뒤늦게라도 쟁취한 그녀에게 끝없는 축하를 전한다. 앞으로의 길이 더 험난할지 모르지만, 그 전의 삶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갖게 될 것이다.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카를로타가 더 이상 모로 가에 발 묶여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유롭고 ‘카를로타답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방해하거나 멈출 수 없다, 열쇠는 각자 본인이 갖고 있으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황금가지’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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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부부 ㅣ 새소설 20
권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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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

권제훈 장편소설, 『테트리스 부부』(자음과모음)

 


너무 현실적이라서 불편했달까. 숨이 턱- 막혔다. 어릴 때부터 나는 비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전부터 비혼주의를 선언했다. 클수록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각하게 되니 ‘모든 게 다른 상대와 함께 가정을 꾸려 흔히 말하는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 생활’에 대한 나름 갖고 있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환상적인 순간들이 완전히 파바박- 산산조각 부서졌다. 비혼주의에 대해 아는 게 없을 때부터 비혼주의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다녔던 내가 꽤 똑똑하게 느껴진다. 나이에 비해 세상의 물정을 일찍이 알아버린 내게 결혼 생활의 속사정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결혼 생활 속사정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현실 아닌가. 부모님, 친척들, 심지어 한 집 건너 부부만 봐도 결혼 생활이 매일 전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생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을 수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부모님을 보고 가진 것이 아니다. 한창 드라마에 빠져 살 때 가졌다. 드라마에서 결혼 생활은 어찌 되었든 대부분 위기를 극복하고, 그 극복으로 사랑이 더 단단해져 절대 깨지지 않는 사랑을 맹세하면서 행복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정말 드라마라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그런 사랑이 있겠지만 열 손가락을 채우긴 어려울 것이다.


『테트리스 부부』는 ‘강지웅’과 ‘한민서’ 두 인물의 입장으로 챕터를 나눠 진행된다. 남자, 남편 ‘강지웅’의 입장에서 보는 결혼 생활은 현실적인 지옥을 보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듯한, 아내지만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아내와 함께 사는 그가 짠하게 느껴지면서도 ‘한민서’라는 여자를 모르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의 선택이니까, 그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의 생활이 너무 무거워 보이고, 하루빨리 탈출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그의 선택에 대한 강지웅 본인이 아닌 제3의 인물인 내가 갖는 안쓰러움이다. 이혼을 권유하게 하고 싶은 부부를 많이 봤지만, 소설에서조차 권유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지웅은 성실, 근면, 정직 아이콘으로 부지런하고 우리가 흔히 평범한 일상을 산다고 하는 사람 부류에 속한 인물이다. 세상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선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이벤트가 매일 일어난다. 아내 한민서가 곧 거대한 이벤트다. 그는 아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는 일, 사고 싶은 등 마음대로 할 수 있게 그냥 둔다.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멈출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끌려 다닌다(그는 끌려다니는 스타일이 맞는 것 같다). 내가 그였다면, 참을 ‘인’ 세 번을 새기기 전에 장인어른한테 엎어치기를 수백 번 당한다고 해도 이혼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말로 타이르거나 화를 내도 들어먹지 않으니, 곁을 떠나는 게 본인을 위해 나은 선택이니까. 아이도 이렇게까지는 말을 안 듣지는 않을 것이다. 뭐든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내를 데리고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라고 남편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편이 많이 참고 물러서고, 배려하는 건 확실하다. 아내도 그걸 알고 더 제멋대로 구는 걸지도 모른다. 한민서와는 다른 결이지만 엄마와 한민서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아빠의 고충에서부터 나오는 짙은 한숨과 이마의 주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어젖히고 뭐가 웃기냐며 같이 보자고 엄마가 다가올 것 같아 혼자 있는 방을 괜히 두리번거린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결혼 생활, 부부 생활의 적나라한 면을 알게 되니까 ‘결혼제도’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 같다. 행복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줄어든다는데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더 불행한 건 뭘까? 다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결혼이 언제부턴가 의무가 되거나, 기피 대상이 되었는지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지만 그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솔직히 결혼하고 싶은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니다. 결혼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건 맞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결혼 시기가 되면 부모님과 부딪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와는 많이 달라진 요즘 세대를 부모님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더 좋은 세상이라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만 반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옛날에는 단칸방에서 7남매를 낳아 길렀으니까.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살기 편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의 범위와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졌다. 지금도 하루에 수십 번 결혼이나 임신과 관련해 부모와 다투는 부부들이 많을 것이다. 내 일은 아니지만(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능력이 된다면 혼자 살라고 하신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근데 나를 닮은 자식이 궁금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혼자 살라는 말이 100퍼센트 진심은 아닌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한 공간에서 함께 하고 싶고, 상대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 아이가 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결혼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것들을 반영하니 그 행복을 갖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이 많았다. 희생이라는 표현이 그렇지만, 희생 말고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종이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쓰고 주변에 가지를 쳐서 적다 보니 비어 있던 종이가 가득 채워졌다. 내 글씨가 징그럽게 보이긴 처음이다. 글씨들이 꼼지락, 움직이더니 형체를 갖춰 각 상황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결혼하게 되면’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종이에 끄적이는 내 모습이 웃프다. 20대 후반이라서 그런지 종종 결혼이 불쑥- 하고 고개를 내민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지만, 시선은 쓰레기통을 향하고, 마음이 소란스럽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한 번에 표현하는 것은 길고 짙은 한숨이다. 한숨 끝에는 구겨진 종이에 머문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강지웅의 입장에서 한민서의 입장으로 넘어갈 때는 아이 같은 그녀의 입장에 혀만 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같은 여자이지만 한민서의 생각과 행동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철없는 사람이 너무 싫다. 철없이 구는 건,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허용되는 것이니까. 어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해서 함께 할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상대가 있는데도 제멋대로 구는 것을 보고 있는 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는 목구멍 앞까지 올라온 욕을 내뱉고 싶을 만큼 그녀가 남편 강지웅에게 한 행동이나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결혼 생활을 편하게 하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다. 결혼은 서로가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맞춰 나가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쪽만 배려하는 결혼 생활은 끝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한민서는 제멋대로 모든 것을 한다.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 나쁜 것은 아니나, 그것도 때와 장소 그리고 본인의 상황에 맞아야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생각을 많이 하기 보다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한민서의 태도가 부럽기는 하지만, 나라면 더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녀의 태도는 나와 정반대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그녀에 대해 하고 싶은 좋지 않은 말이 속에 쌓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강지웅과 닮았다. 성실, 근면, 정직 그리고 안정적이고 미래를 위해 아끼고 대비하는 스타일. 한민서와 같은 사람과는 어울리길 꺼릴 정도로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그래서 굳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거나 도전할 용기를 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아직 해보지 않은 경험들이 많다. 그녀가 변하는 걸 바라지도 않았다. 변할 사람이 아닐 만큼 막무가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 강지웅의 비뇨기과 사건 이후, 민서처럼 변하기 시작한 강지웅을 보고 점점 철들어 가는 민서를 보고, 안 변한다고 확신한 내 마음이 부끄럽고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 또한 자신이 바뀔지 몰랐을 것이다. 마음대로 노출을 감행한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올려도 당당하던 그녀는 본인과 상의 없이 1,000만원 대의 자전거를 구입하고, 함께 유튜브를 찍어 올리자며 적극적으로 촬영하고 편집해서 부지런히 올리는 강지웅을 보고 현타를 세게 받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강지웅이 본인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을 하나씩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처음에는 웅이가 민서에게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늘 참고, 포기하며 살아왔고 그것이 편했던 웅이는 결혼마저도 민서가 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웅에게 민서는 행복인지 불행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사랑해서 결혼했겠지만, 민서 때문에 마음고생한 웅이를 생각하면 행복보다 1-2%는 불행에 더 기울어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저울은 언제든 균형을 맞추거나 행복으로 많이 기울 수도 있다. 아마 앞으로 둘이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고 걸음을 맞춰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뇨기과 사건이 웅이의 삶에서 민서 이후에 가장 충격적인 이벤트였고, 그것이 웅이가 포기 대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열정을 보이는 계기가 된 건 좋았다. 수동적인 웅이가 사실은 ‘적극성과 창의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던 비뇨기과 사건은 다시 생각해도 안타깝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서가 현실을 보기 시작할 때, 웅이가 현실이 아닌, 꿈꾸는 세계에 갇히기 시작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이 둘은 정말 서로 맞지 않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닮는다고, 맞춰 가는 거라고 하지만 같이 가기보다 서로 정반대의 길을 가는 느낌이랄까. 언제 끝을 내도, 누가 끝을 내도(솔직히 웅이가 끝을 내는 쪽이 더 현실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젠 막무가내 부부 느낌이었다. 테트리스는 서로 딱 끼워 맞춰지면 쌓이지 않게 아래가 사라지는데, 강지웅과 한민서는 자꾸 쌓이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넘겨야 할 책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둘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것 같기는 했다. 둘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연애하는 커플 말고 진짜 부부처럼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무조건 우리가 흔히 부부라고 생각하면 떠올리는 부부가 될 필요는 없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부부의 모습 또한 이제는 불필요한 것 같다. 자녀를 가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딩크족이기는 하나, 세상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던 민서가 아랫집 쌍둥이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고, 난자를 얼려 놓을 생각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 둘에게 진짜 부부의 모습이 기대된다. 부부지만 진짜 부부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둘이 살기도 벅찬데 아이까지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완벽한 준비는 없다지만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뭐가 되든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웅과 민서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한 과정에서 ‘뭐라도 터지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이것저것 제 멋대로 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극한 부부 투쟁기를 겪는 중이다. 웅과 민서 같은 부부가 세상에 얼마나 될지 상상하다가 대부분 그럴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남들 못지않게 살기 위해 오늘도 아등바등 열심히 살고 있는, 살기 힘든 시대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이 책이 분명 현실적으로 팩트 폭탄을 여러 개 날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풉- 하고 싱거운 웃음을 흘릴 수 있고 현실적인 위로를 받음으로써 사람 사는 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타임머신이 있다면, 부모님이 나를 낳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읽어보라고 권하면 현실 웃음을 터뜨리며, 당신보다 너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라고 내쪽으로 책을 밀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죽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다. 한 판의 게임이 끝났을 뿐,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웅과 민서는 행복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살 것이다. ‘행복’을 찾는 그들만의 방식이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러다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될 테니까. 행복한 삶은 모두가 바라는 삶이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든 상관없다. 그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삶도 자신의 삶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도 자신의 삶이다. 지난 삶은 진 게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게임 시작을 누를지 말지는 본인 선택이다. 테트리스가 맞춰지지 않아 쌓여도 상관없다. ‘GAME OVER’라고 뜨면 우리는 ‘게임 시작’을 누르고, 전과 같은 실수 대신 차근차근 내려오는 테트리스를 끼워 맞춰 한 줄씩 없애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테트리스 게임과는 다르게 하루하루가 쌓여 틈을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삶이라는 걸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사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혼자 또는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더 많을 수도) 걸작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쉼 없이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잊지 말자, 혼자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지만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다, 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니까 언제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다. 웅과 민서의 새로운 시작, 모든 부부의 극한 투쟁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미래의 내가 혼자일지, 부부일지, 한 아이의 엄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떠올리며 웃을 날이 올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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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부부 ㅣ 새소설 20
권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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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강지웅과 한민서의 부부를 응원한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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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ㅣ 에세이&
이근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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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을 위한 詩’

이근화 詩인 산문집,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창비)

 



‘삶을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는 작가님의 마음이 내게 잘 닿았지만, 삶의 반도 살아보지 않은 나는 삶의 소중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겠지만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하나씩 더하다 보면 ‘삶의 소중함’이라는 걸, 내 삶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고 간직하고,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는 이근화 詩인의 일기장을 몰래 본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일기장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불안에서 나오는 두근거림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한 번 마음을 빼앗긴 내용에 멈추지 못하고 긴장감으로 버벅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것 같달까. 읽을 쪽수가 줄어들수록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이근화 詩인의 솔직하고 담백한 삶의 일부 장면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마음을 붙드는 것들은 詩와 음악과 아이들이라고 했다.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는 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밧줄,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작년 여름 마음이 너무 아픈 시기를 보내면서 괴로웠던 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 것, 내 마음을 붙들 무언가가 없다는 거였다. 전에는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할까? 붙들면서까지 살아야 할까?’ 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어둠과 지내는 시간 동안 붙잡을 게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 마음과 생각처럼 쉽게 움직여주지 않는 몸이 충돌했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 것 같은 이 충돌은 다행히 빛을 볼 수 있게 사방이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벽면을 부숴버리는 데 힘을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천천히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숨 가쁜 일상에서 놓쳐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었지만 나를 찾기보다 이근화 詩인 그녀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詩인의 삶을 내 마음대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함을 빠르게 발견하고 글로 쓰는 詩인의 삶을 동경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했던가, 詩인이 아닌 사람들과 닮은 삶을 사는 詩인의 삶에서 당연하게도 사람 냄새가 났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삶이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詩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번 기회에 이근화 詩인 시집을 한 권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닦이며 나란 사람, 나의 인생에 의문이 생기고 헤매게 되며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몸짓’이라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리는 몸짓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외로 쉽게 잊는다. 살아있음을 매순간 인지하면서까지 살지 않는다. 숨 가쁜 일상에서 살아있음을 잊고, ‘나’를 놓치는 일은 어렵지 않게 누구나 겪는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녀가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라는 날개를 붙여 세상에 날려 보낸 이 책은 아마 숨 가쁜 일상에서 놓쳐버린 그녀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기록하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당장에 내일의 날씨를 몰라도,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가 닥쳐도 삶은 지속되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삶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기 위한 묵직한 다정함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향할수록 이근화 詩인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점을 느꼈다.


각자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삶이라는 정원을 내 마음대로 내 것으로 가꾸는 것, 다정한 온기로 나만의 방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시작점과 목표에 닿기 위해 걷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한곳에 모이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근화 시인의 숨 가쁜 일상은 다양한 감정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수많은 두리번거림과 몸짓이 가득 채워져 다채로웠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삶의 소중함과 애정을 가득 담아 독자들에게 선물한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를 읽을 수 있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며, 그녀만의 문장으로 그녀의 시간을 뒷짐 지고 여유롭게 뒤따라 걸으며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할 길을 발견한 것 같다. 시작은 어렵지만, 하나씩 기록하다 보면 늘 꿈으로 간직한 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엮어 세상과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는 날을 멀지 않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근화 詩인의 발걸음이 내 마음 수많은 길 중 하나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걸음 위에 내 발걸음을 덧대기 시작하지만 언젠간 내 발걸음이 짙게 새겨진 길이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새기지 않을까 바라본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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