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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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게 부서진,

하서찬 글, 박선엽 그림 - 샌드힐(웅진주니어)(가제본)

 

첫 문장을 시작으로 스윽스윽, 책장이 넘어갔다. 지훈은 사막이고, 라희는 오아이스라고 생각했다. 라희는 오아시스 같으면서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오아시스였다. 결국 지훈에게 오아시스로 계속 남아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훈은 중국 사립학교 펑동(얼어붙은 토지)’에서 '왕따'. 학교를 가는 게 싫어서 버텨 보지만 강압적이고 버티기만 하라는 아빠 손에 끌려 학교에 억지로 가게 된다. 학교에는 지훈을 괴롭히는 애들이 수두룩하고, 지훈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다른 애들이 보지 않을 때만 지훈에게 다가와 친한 척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지훈은 그런 학교생활과 그 생활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역겨움을 느낀다. 직접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류웨이와 달리, 애들이 보지 않을 때 다가와서 친한 척하는 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는 지훈이 이해가 되어 장이 미웠다. 차라리 장이 지훈이 대신해서 류웨이의 괴롭힘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른인 내가 어른인 척하는 아이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사건으로 류웨이의 폭력이 지훈이 아닌 장에게 향했을 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장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지훈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최악의 상황은 아무도 지훈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격적이랄 것도 없다. 현실에서는 더 잔인한 형태로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고 있으니까. 지훈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지훈의 삶에 균열을 만들다 못해 부숴버렸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봤으면서 오히려 지훈이 잘못 본 거라고(축구공을 골대가 아닌 지훈의 배를 겨냥해 맞춘 상황에서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보였던 말과 행동), 지훈의 탓을 하며 상황을 손쉽게 정리했다.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지훈에게 상처는 물론, 희망마저 앗았다. 애초에 지훈에게 희망이란 것이 있었을까?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와서 하는 학교생활은 지훈에게 지옥이다. 지옥살이 중, ‘라희는 지훈에게 오아시스, 파라다이스, 숨구멍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훈에게는 잠깐 숨구멍도 허락되지 않았다. 라희와 가까이 지내면서 지훈은 더 이상 모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라희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버텼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지만) 겨우 버텨왔던, 원래 망가져 있던 것이 완전히 산산조각 부서진다. 가장 잔인한 것은 지훈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이해하고, 함께 하며 상처가 아물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할 아빠가 지훈에게 가장 냉정하고 강요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공을 들먹이며 형의 몫까지 해야 한다며 지훈에게 부담만 짊어주는 것이다. 지훈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하고, 이미 지훈이 알고 사실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지루해서 하품이 수시로 나오는 하루가 필요하다. 지훈은 여전히 그날, 그 일에 머물러 있다. 그날 이후로 흐른 적 없는 지훈의 시간은 타인에 의해 겉으로만 흘러갈 뿐이다. 지훈의 시간은 가장 의지하고 좋아하던 형을 잃으면서 멈췄다.


지훈의 부모는 매일 싸웠다. 물건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마지막에는 아빠가 현관을 박차고 나가는 엔딩으로 끝난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훈과 형은 그 싸움을 피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가야 할 것 같은, 나가야 더 안전할 것 같을 때가 지훈과 형에게는 매일이었다. 지훈에게 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부모님이 싸웠고, 던져진 물건에 부화 직전에 있던 병아리가 맞아서 죽었고 숨이 붙은 병아리 한 마리를 데리고 형과 밖으로 향했다. 한강을 가자던 형의 말대로 둘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형이 발견한 아지트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학교에 가기 위해 둘은 서두른다.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던 형은 지훈이 잘 오고 있는지 뒤돌아서 확인했고, 그러던 중 달려오던 트럭이 형을 순식간에 삼켰다. 이미 불행은 시작되었지만, 그때부터였을까? 항상 미소만 띄운 채 주변을 맴돌던 불행이 이젠 기지개를 켜고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드러낸 순간이. 형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고, 형이 병원 생활을 한 지 2년이 되던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차라리 더 빨리 이혼했다면, 서로에게 아니 지훈과 형은 덜 불행했을까? 거의 형을 잃은 거나 다름없는 지훈과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형이 안타깝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보호와 돌봄을 책임지고 실천해야 할 부모의 역할을 지훈의 부모님은 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부모 때문에 지훈의 삶은 균열이 계속 생기고, 메꿀 틈도 없이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 계속 부서졌다. 그렇게 이혼한 당사자들보다 자식들이 더 괴로운 엔딩으로 지훈의 불행 서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는 한국에서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아니 깨어나지 못하고 호흡기에 기대어 숨만 붙어 있을 확률이 높은 형의 곁을 지키고, 지훈은 이미 정해진 계획에 몸만 덩그러니 실어 아빠를 따라 중국으로 간다. 지훈의 중국행에는 지훈의 의견이 0.01%도 없다. 그저 아빠가 독단적으로 한 선택에 희생, 아니 피해자가 되었을 뿐이다.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지훈의 말에 가려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문대에 가고 나서 가라고, 한국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은 정말 최악이다. 지훈은 아빠보다 현실을 더 잘 알고 있다. 아빠는 그저 한국에서 병상에 누워 있는 형과 엄마에게서 희망이 없기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말 희망이 있다고 믿는 걸까? 희망을 찾아 떠나온 중국에서 희망을 찾았던가. 지훈 아빠는 일에서 희망과 성과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지훈은 모든 것을 잃었다. 형을 잃은 순간부터 모든 것을 잃고, 한국과 중국 거리보다 더 멀리 와버렸다. 지훈이 여기까지 온 데는 지훈의 선택이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라희와의 관계는 지훈이 선택했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지훈과 라희의 엔딩은 모래 알갱이가 입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듯 텁텁하고 씁쓸했지만지훈이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가 텅 빈 마음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라희가 지훈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훈 또한 라희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면 서로 타국에서 외로움의 자리에 희망을 심어 싹을 틔우길 바랐지만, 그건 내 바람이면서 동시에 지훈의 간절히 뻗어도 닿지 않을 잔인한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라희와 지훈의 관계는 그 시기에 겪는 당연한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일들과 감정들이 뒤섞여 물건이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창문과 문 없이 벽으로만 이루어져 공기가 통하지 않는 숨 막히는 공간처럼 느꼈다. 처음에는 공간이 낯설어 두리번거리다가 답답해서 눈에 보이는 물건을 치우지만 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답답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날이 서면서 서로 갖고 있는 상처가 한 사람은 칼날이 되어 상대방을 향해 겨누고, 다른 한 사람은 칼날을 막을 수 없는 모래 알갱이를 뭉쳐 만든 방패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지훈에게 항상 말을 거는 쪽은 라희였는데, 라희는 언제나 목적을 갖고 지훈에게 닿았다. 목적이 있지만 라희 덕분에 지훈이 아주 잠깐 어둠 속에서 작지만, 선명한 빛을 보았다. 빛은 빠르게 달아났지만.


샌드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검색했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정식 출간본이 나오면 <작가의 말>이나 완성된 스토리에서 내가 샌드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막에 바늘 찾기만큼 샌드힐의 의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샌드힐이라, 샌드(sand, 모래)와 힐(kil, 페르시아어 gil/진흙, 점토)의 합성어인가? 형이 준 조각칼로 점토를 조각하여 사람을 만드는 지훈에게 딱 제격인 제목이기는 하나, 정확하게 의미를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 아마 샌드힐은 읽는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세상 곳곳에서 각각의 샌드힐이 생길 것이다. 세상 곳곳에 지훈과 라희가 있을 것이고, 점토를 조각해서 탄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조각하여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점토 인간들이 본인을 빚어준 이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위를 목적지 없이 걷고 있다, 지훈과 라희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아마 나만의 샌드힐을 찾기까지 목이 마른 것도 느끼지 못하고, 사막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나만의 샌드힐에 닿을 때쯤이면 지훈과 라희가 부서져 떨어진 부스러기로 단단한 성벽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지훈과 라희가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이 자꾸 고개를 내민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이 너를 강하게 만들 거야.’라고 지훈에게 뻔한 위로의 말을 하던 라희 본인이 듣고 싶었던 말을 내가 그만 떠돌고 싶다고 말하는 라희에게 해주고 싶다.). 내가 바랐던 엔딩과 다른 엔딩이라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지만,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것을 훌훌- 털고 가벼워지지 못한 지훈과 라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지훈과 라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덜 불행할까? 불행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꼭 본인이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릴 테니까.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자마다 균열이 있고, 작은 부스러기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그 아래에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꼭 균열로 인해 생긴 부스러기가 모이고 모여 사막이 된 것 같다. 얼마나 많은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 사이로 다양한 크기의 부스러기가 떨어져야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사막이 생기는 걸까? 사막을 구성하는 모래는 아주 작은 입자다. 아주 작은 모래가 사막을 이루려면 수많은 균열과 충돌을 반복해야 할 텐데. 완전히 산산조각, 아니 파괴된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지훈과 라희의 삶을 파괴되었다고 봐도 될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부스러기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아무것도 없이 모래만 있는 사막에 모래와 다른 무언가가 떨어진 것 같다. 내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이래서 희망은 잔인하다).

세상 곳곳에 있을 지훈과 라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나를 응원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른 느낌을 느끼지 못하다가 생각지 못한 오아시스와의 만남으로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앉아 두 손으로 물을 퍼마시고, 다리를 주무르며 이제 살겠다.’라고 말하며 나의 샌드힐에 닿았음을 깨달을 때, 손을 모래 위에 얹고 눈을 감은 채 저 멀리서 다가오는 존재의 심장 박동을 느낄 것이다.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주니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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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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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선생님한테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어쩌면 각자 지나온 모퉁이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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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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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보일 때가 되면,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된 걸까?

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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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라는 제목 앞에서 멈칫-, 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쭈뼛거리는 모습이랄까. 마치 지금 내 나이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한다고 혼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보이는 게 없다. 매년 사회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나이를 하나씩 먹으며, 어른인 척하는 것이지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아이가 어른인 척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어른으로 사는 삶이 재밌고 자유롭게 보였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야 보이는 게 아니라 깨달은 것이다. 이 깨달음은 고달픈 하루일수록 더 깊은 깨달음이 된다. 요즘 자주 이 책 제목을 읊조린다. 이제야 보이네, 하면 정말 뭐라도 보일 것 같아서 말이다.


김창완 선생님은 라디오 DJ와 싱어송라이터, 배우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라디오나 노래를 찾아 들은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본 영화를 통해 배우로 만났다. 그때 맡은 역할과 스토리는 충격적이라 오래전에 봤어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렬한 첫 만남은 선생님의 인자한 웃음과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야 보이네선생님의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으로 오랜만에 두 번째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만남이 간절했던 건 단 하나다.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제야 보이네, 라는 말에 나도 뭐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야 보이네는 김창완 선생님이 살아온 날을 솔직하게 적어 놓은 일기장이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은 떨림과 궁금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낀 떨림은 그 사람의 비밀을 알아버리는 데 있고, 궁금증은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이 어떻고 나의 시간과는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부분이 닮았는지에 있다. 라디오 DJ, 싱어송라이터,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이 걸어온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훨씬 푹- 고와진 사골국의 깊은 맛을 냈다. 지금 내 나이를 보내면서, 더 어린 나이를 보내고 내가 곧 보낼 나이를 보내고, 아직은 멀지만 언젠가 내가 보내야 할 나이를 보냈고, 보내고 있는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입혀졌다. 1부터 10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고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선생님인데 오래전부터 가까이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졌다. 연예인은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도 비연예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줬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자주 쉽게 잊어버린다. 어떤 경우에는 보이는 것을 쉽게 믿어서, 또는 보이는 것을 의심부터 해서 소음이 발생한다. 이제야 보이네는 흙길을 따라 걸으며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풀과 꽃, 나뭇잎, 지저귀는 새, 열심히 부스러기를 옮기는 곤충들 등 안식을 가져다주는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 직사각형 모양으로 꼿꼿하게 서서 여유를 느낄 틈을 주지 않는 건물들의 코너를 돌면서 딱딱한 시멘트 사이로 기어코 생명을 틔운 민들레나 풀을 보며 잠깐이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면서 소음을 잠재운다. 선생님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창완이 아닌 인간 김창완으로 만나는 시간은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내가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특별한 산책길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선생님이 걸어온 길에는 바래진 발자국 없이 모든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 중, 빛을 내는 발자국도 있었는데 그것은 내 마음을 울린 순간(에피소드)으로 종종 머릿속에 떠오를 물기를 품은 선생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이 책을 읽은 독자들과 선생님의 비밀인 것이다.) 발자국에 내 발을 덧대어 걷는 동안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네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열심히 살지 않는 나는 지나온 모퉁이마다 아물지 않은 상처만 있다고 생각했지, 삶이 이야기를 건넸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에 갇혀 살았고, 과거를 괴로움으로 정의했다. 살면서 상처와 슬픔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만, 행복과 기쁨 또한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매일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지만, 나는 귀를 막고 내 말만 맞다고 인생을 쉽게, 함부로 이야기했다. 어리석고 철없는 나에게 삶은 언제나 변함없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지금도 말이다. 앞으로도 삶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내 삶을 쓰고 달고, 설익고 잘 여문 열매들(하루)로 양과 질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이야기를 건넬 것이 분명하다.


10, 20, 30, 40……, 나이대별로 보이는 것에 차이가 있다. 10대를 보내고, 20대 후반을 보내면서 똑같은 것 같지만 미세하게 달라진 나를 느낀다. 미세한 변화지만 큰 변화처럼 느껴질 때마다 낯설고 이상했는데, 앞으로는 삶이 내게 이야기를 건네는구나,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이제 열렸구나.’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살다 보면 김창완 선생님처럼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내가 단단해지고 삶을 내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나의 바람) 단단함과 여유로 균형 잡힌 내 삶을 위해, 지금 볼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로 보내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네라고 책 제목이 읽히는 건 왜일까. 무한히 확장된 김창완이라는 세계를 통해 상처와 슬픔, 우울, 불안, 걱정 등으로 오랫동안 닫혀만 있던 나의 세계가 아주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나 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들려준 김창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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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
브로니 웨어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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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후회들,

브로니 웨어, 나의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책읽는수요일)

 

제목에 이끌려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 좋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브로니 웨어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준 그들에게도.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오늘의 나보다 좀 더 나아진 내가 살아가는 하루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게 내게 가장 문제였지만).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간병인 브로니 웨어의 이야기로 인생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탱탱볼 같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5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앞으로의 긴 시간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면서도 불행한 것 같다. 이런 모순적인 마음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하루하루 사는 건 삶이 아니라 삶에서 멀어져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늘 쌓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려놓고 비우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섬뜩하게 느껴지면서도 내가 주어진 오늘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가 되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고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삶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아니 생명의 존재라면 이 순간을 피할 수 없다. 그 모든 과정이 브로니 웨어를 통해, 그녀가 돌본, 그녀가 마주한 수많은 죽음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죽음의 잔인함과 사람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하는 가장 후회하는 것을 보면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의미 없고, ‘지금 이 순간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간병인 브로니 웨어가 돌보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환자들은 자란 환경, 갖고 있는 조건, 하는 생각 등 모든 게 다르지만 죽음 앞에서 같은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시들어가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남긴 말들은 브로니 웨어가 살면서, 혹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영원히 방향키가 될 것이다. 물론 나의 삶에서도 그들의 말이 반짝-, 빛을 낼 때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브로니 웨어 또한 그렇게 말했고, 그들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많은 배움과 교훈을 얻은 그녀의 삶은 특별하다 못해 삶을 향한 간절함 마저 느껴진다.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게 삶의 단 한 번뿐인 순간과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되돌릴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정말 내려놔야 할 것들은 손톱이 살을 뚫을 정도로 쥐고 놓지 않으면서 쉽게 삶을 포기하려고 했고, 삶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느끼는 불행에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의 충실한 부하가 되어 이리저리 휘둘린 채 나의 온전한 삶이 아닌 내가 아닌 것들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와 브로니 웨어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 놓았고,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다는 외로움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의 안도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모두가 간절한 삶을 어째서 나는 포기하려 했으며,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쉽게 잊었던 걸까? 삶의 소중함을 모르고, 삶을 잘 살아보자는 의지와 간절함이 부재한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부끄럽다. 신이 내게 인간으로 이 세상에 보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요즘 자꾸 혼자서 신을 끌어들이며 삶의 이유를 찾는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삶이 내게는 광활한 우주에 떠도는 먼지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는 사실에 나 또한 스스로 실망했다. 삶이 주는 수많은 것을 느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있는 내가 답답함을 넘어 이제는 안쓰럽다. 이 모든 것을 나의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가 아니었다면 깨닫고,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병인으로 지내는 8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주저앉고 싶은 날들도 많았겠지만 브로니 웨어는 긍정을 말했다. 그녀의 삶을 정말 눈이 멀어버릴 만큼 눈부셨다.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살면서 다양한 삶을 만났고 그 안에서 수많은 교훈과 배움을 얻었고, 자신을 위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했으며 간병인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고 구체화했다. 이런 삶이라면 후회를 찾아볼 수 없는 삶이 아닌가. 이 삶을 살기까지 그녀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피나는 노력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쉽게 그녀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그 누구의 삶에 대해 쉽게 말하거나 생각할 권리가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 또한 그녀와 그녀가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과거의 상처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을 때가 있었고, 여전히 그것들이 고개를 불쑥- 들어 그녀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것들에 휘둘리기만 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녀는 단단해졌고,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그녀가 돌본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거센 파도를 일으켰지만, 내가 완전히 주저앉아 울었던 부분은 브로니 웨어 삶의 변화였다. 그녀의 삶은 전부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부분 부분 알게 된 그녀의 삶은 알록달록했다. 그 색을 찾아 채운 게 본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가 있었고, 채우고 싶은 색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일에 용기 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를 모르지만,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나다운 삶,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삶은 태어나면서 당연히 쥐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 삶인데도 온전히 나로, 내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녀처럼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알고 나서 너무 공감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이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왜 부모님이 떠오른 건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떠오른 부모님의 얼굴은 어린 날의 내가 봤던 모습과는 (당연하다) 달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울컥함으로 목구멍이 막혔다. 죽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후회가 남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어쨌든 삶을 채웠던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보다 후회되는 것들만 자꾸 떠오른다는 것인데, 정말 인생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육체와 정신이 시들해지고 희미해지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후회가 이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또한 지옥에서 뒹구는 것처럼 괴로울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이 갖는 무게와 복합적인 감정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것은 혼자 겪어내야 한다. 후회만 하다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완전히 주저앉는 모습을 잠깐 떠올렸는데, 괴로웠다. 내가 사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이 내 곁을 서성이는 날들을 후회만 하다가 아주 고통스럽게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몰려들었다. 동시에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다. 떼어낼 수 없는.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나의 죽음 또한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죽는 순간에 후회를 덜 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눈을 감기 위해 이제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나를 위한 삶을 위해 말이다.

삶보다 죽음과 가까이 지내는 간병인의 삶을 살아온 브로니 웨어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만 느끼다가 눈을 감았을지 모른다. 그녀가 내 친구였다면, 우리 엄마의 친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녀를 친구로 둔 이들이 부러웠다. 브로니 웨어 같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죽는 순간에 후회가 아닌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이다. 아마 평화롭게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 아닐까. 모두가 브로니 웨어 같이 삶을 열심히 살고 사랑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온전히 나의 삶을 살기 위해 용기 내어 첫걸음을 딛는다. ‘나의 오늘은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마음에 꾹꾹- 눌러 새기며.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책읽는수요일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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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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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다!

하지현,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창비)(교양100그램)

 



하지현 선생님과는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감정 연습을 시작합니다(창비)가 첫 만남이었다. 그때도 꼭 읽고 싶었고, 읽고 나서 느끼고 배운 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3년 후, 다시 만난 하 선생님의 책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불안은 일상에서 나와 밀접하다. 불안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 느낌이랄까. 하 선생님 덕분에 불안에 대한 오해, 불안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생기는 이유 등등 불안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선생님께서 학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름과 취미, 가족 환경 등 세세하게 정보를 적어 오라며 종이 하나를 주고 우리는 각자 빈칸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채우는데, 이 책이 꼭 불안이 자신을 소개하는 그 종이와 닮았다. 또한 불안을 가진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처방전이다.


불안을 없애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안은 사라질 수 없으며, 우리가 길들일 수 있다는 하 선생님의 간단한 답에 잠깐 생각이 뚝-, 끊겼다. 불안이 사라질 수 없다는 건 너무 잘 알았다. 매일 크고 작은 불안을 경험하는 나로서는 불안의 소멸을 간절히 바랄 뿐, 이루어질 가능성이 단 0.1%도 없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다. 불안을 길들일 수 있다는 답이 희망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과제가 덜 끝났는데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겨 짜증이 올라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명쾌한 답은 아닌 것 같다. 불안에 잡아먹힌 채 살고 있는 삶, 이 삶이 익숙해졌기에 불안의 소멸보다 불안을 길들이는 것이 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뭐든 익숙해진다는 건 마냥 좋게 볼 건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말이다. 하 선생님이 꼭 내 생활을 한순간도 빼먹지 않고 보고 나서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아, 라고 생각했을 때 나의 불안을 정말 길들일 수 있겠구나, 불안에 휘둘려서 사는 삶을 끊고 싶다.’라는 용기가 생겼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결국 내가 언젠간 해야 할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면서 자꾸 미룬 것이다. 내 안에 독이 퍼지기 직전에 하 선생님과의 두 번째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루어졌다.


불안은 애초에 사라질 수 없는 감정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고 알고 있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약간의 불안은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불안을 없애려고 매일 애썼다. 나름 나를 타일러 보고 강압적으로 몰아붙여 보고, 불안의 늪이 끌어당기는 걸 가만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자극이 되었는지 몸집을 키웠다. 불안은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 중 하나이고, 불안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감정 중 하나인 불안을 느끼는 내 모습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쓰지만, 종종 불안이 그대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불안에게 나의 모든 것을 빼앗긴다. 아니 내가 모든 걸 준다. 불안도 그런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주 가끔은 찾아오지 않는다. 매일 찾아오지만 내가 덜 느끼거나 신경 쓰지 못하는 날이 아주 가끔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오늘만 같았으면하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지금 이 시기에 만난 건 병이 조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기 지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을 가고 약을 처방 받아먹으면 정말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 같아서, 약을 영원히 끊지 못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우중충한 내 삶에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 남을 것 같아서 계속 부정하며 전문의 도움을 받기를 거부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든 통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통제는 무슨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는 이유가 사라진 삶이 되어버렸다. 통제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시작은 우울이었다. 우울과 불안은 함께 찾아온다던 하 선생님의 말을, 일상을 점차 찾아가고 있는 지금 그 말을 나는 직접 경험함으로써 완벽하게 이해했다. 우울한 시기가 1년마다 열리는 페스티벌처럼 찾아오는데, 이번에는 너무 길었고 다른 때와는 무게가 차원이 달랐다. 주변 사람들까지 나를 보고 괴로워했으니 말이다. 결국 전문의를 찾아가 내 상태를 드러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겪고 있는 불안으로 보아, 이 얇고 작은 책은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명쾌하고 정확한 답만 모아 놓은 불안의 족집게 과외이다. 불안에 대한 나의 오해, 불안을 느끼는 이유, 불안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느끼는 감정 중 하나며 부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것,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세 가지 지침 등 아주 쉽게, 짧은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금방 읽을 수 있고, 시험에 나온다고 딱 집어주는 학창 시절 선생님을 떠오를 만큼 불안과 불안을 대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고, 불안과 잘 지내는 방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어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약을 매일 먹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는 항상 갖고 다니기 좋은 것 같다. 꼭 읽지 않더라도 불안을 느낄 때 꺼내서 덤덤하게 불안에 대해 말하는 하 선생님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불안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짧게 매일.


불안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생애주기에 따라, 아니 매일 크고 작은 수많은 불안이 자꾸 생긴다. 애초에 불안을 없앤다는 불가능한 생각을 하니 힘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또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내가 안타깝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불안을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닌 길들여서 내게 긍정의 영향을 주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불안을 불안이라고 느끼지 않을 때 이 책은 내 가방이 아닌 책꽂이 맨 위에 꽂혀 있을 것이다. 약을 도구로 생각하라는 하 선생님의 말처럼 이 책 또한 불안에게서 전혀 자유롭지 않은 이들에게, 불안 때문에 괴로운 이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세상은 편리해지는 데 반해 불안은 계속 커진다. 어째서일까? 그 답 또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불안을 길들이기 시작한 지 1일째 되는 오늘(25.04.11)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생각보다 잘 안 망가진다.’(힘이 되는 말이다)라는 하 선생님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끝은 분명히 있는 이 시간에 발을 들인다.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에서 불안의 자리에 행복이 들어가는 그날까지 불안을 길들이기 위해 부지런히, 종종 쉬면서 집착을 덜어내고 물에 종이배를 띄워 흘려보내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야겠다.

 

지극히 일상적인 불안에 대처하는 가장 확실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처방전 나왔습니다:)

: 정상의 범위를 넓히자(넉넉하게 살자)

: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을 내 존재론적 문제로 일반화하지 말자(가급적 상황이나 맥락적 관점으로 보자)

: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혼자 짧게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잠시라도 쉬자)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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