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담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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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는 이야기, 흉담 들어봤어?
: 전건우, 『흉담』 👻 (래빗홀)

첫 페이지부터 무서운 속도로 읽히기 시작했다. 전건우 작가님 첫 책이 나에게는 『어두운 물』이고, 첫 만남이 너무 좋았어서 그뒤로 나오는 작품을 다 섭렵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다 『흉담』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서점을 갔다가 한번 헛탕치고, 두번째 서점 방문에서 재고 1권 남을 걸 구매했다! 쉽지 않은 만남이었고! 어렵게(?) 만난 『흉담』은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무섭고 빠른 속도로 페이지가 넘기게 만들었다. <경고>를 읽으면서 마음이 뭔가 쫓기는 듯 불안했다. 혹시나 이 책을 읽고 뭔가가 느껴지거나 내게 닿을까봐. 혹시, 설마하는 일이 일어나기 좋은 세상이니 말이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별의별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니 읽는 동안 감각과 신경이 더 날카롭고 빠르게 반응했다. 진짜 늦은밤에는 이 책을 넘기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가 자꾸 궁금한 게 아니겠는가. 꼭 공포 영화를 보면 하지 말라는 걸 하고, 가지 말라는 곳을 가는 이가 꼭 있고 그들이 예외없이 죽어서 발견된다. 경고문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 책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걸 계속 참고 있다. 퇴근해서 읽기에는 시간이 한밤중이라서. ‘근데 설마 나에게 뭐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마음이 고개를 불쑥, 들어올려 내 귀에 속삭인다. 읽어도 상관없다고, 그냥 책 아니냐고. 내 마음의 소리가 꽤 달달하게 들리는 이유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책을 넘겼다. 넘기고야 말았다. 경고를 무시하고 읽는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또 감히 감당할 수 있다고 어리석게 자신하며.
흉담을 들으면 반드시 죽는다, 사람을 해치는 이야기. 흉담이라는 단어를 발음만 해도 괜히 주변에 냉기가 한껏 도는 느낌이다. 이 소설을 통해 흉담을 처음 들었고, 흉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저주에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앙심과 상대, 그리고 대가. 내가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고, 다리 한쪽이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하면 내 한쪽 다리가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평소에 쉽게 누군가를 저주한 적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내 신경에 거슬리거나 나를 불편하게 한 이들에게 ’저거 가다가 넘어져라, 가다가 타이어에 구멍이나 나버려라.’와 같은 말들을 속으로, 가끔은 밖으로 내뱉었다. 이것도 저주라고 할 수 있을까? 저주의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내가 한 말들로 상대가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 스치듯 내뱉는 말이어서 저주의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발람이 말한 저주의 원리를 알고 나니 조금 괜히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볍게 한 말들이 저주가 되고, 그 저주의 대가는 반드시 내가 받아야 하니 저주를 해서 내가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실제 경험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뭐든 조심하고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차문수 교수의 죽음과 딸 차미조(편집자)의 연락을 시작으로 ‘흉담’에 다가가는 스토리. 듣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죽게 되는 흉담인데, 이런 흉담을 알기 위해 다가가는 이들은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작가와 차미조가 흉담으로 인해 죽어버리진 않을지 가슴을 졸여야했다. 그들을 긴장과 불안으로 뒤따라가는 나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을 듯 해서 여러 번 읽기를 멈춰야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고 하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끈을 놓치는 순간 순식간에 차문수 교수가 고통스럽게 죽은 것처럼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할까봐 두려웠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전건우 작가님의 『어두운 물』 이후 오랜만이다. 두려움과 공포의 감각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두려움과 공포의 감각은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는 감각이었다. 나의 두려움과 공포의 감각은 너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흉담 앞에서 비로소 솔직해진 감각이었다.
흉담을 차문수 교수에게 들려준 육모돈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스토리를 환기시키기 보다 더 극으로 몬다. 흉담을 퍼트리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지, 흉담을 어디서 들은 건지, 흉담의 시작은 어디인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을 빠르게 넘길 수 밖에 없다. 암으로 곧 죽을 육모돈에게 흉담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흉담을 들은 작가에게 악귀 차문수가 찾아오면서 문득 겁이 났다. 저주의 힘이 이렇게 강한가, 저주의 형태가 ‘말’인데 그러면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다는 것인가. 내가 그동안 뱉은 말들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포 소설을 좋아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공포를 떠나 말의 무서운 힘에 대해 알게 되니 여러가지 생각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럽다. 나도 뭔가 홀린 게 아닌가 약간 과장을 더해 생각한다.
흉담의 시작을 밝히기 위해, 저주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작가와 차미조는 흉담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것이 흉담을 멈추는 일인지, 아니면 흉담을 더 자극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앙심과 저주로 인해 벌어질 일들에 대한 공포는 너무 잘 알겠다. 저주로 인한 말의 힘을 알아버려서인지 생각과 말은 내 의지와 달리 늘 한걸음 더 빨리 나가는데, 가다가 주춤하고 멈추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겁이 생겼달까, 다행인 걸까.
육모돈에게 들은 저주를 말하지 않고 저주를 멈추기 위해 더 깊이 들어가는 작가의 태도는 작가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인 겁과 책임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악귀가 자기를 찾아오고, 이번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데 작가는 저주를 전하는 대신 당장 닥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다. 나라면 일단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저주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을 택할 텐데, 작가는 어째서? 저주를 옮기는 것 자체가 살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문수 교수 죽음으로 시작된 것이라서? 겁은 나지만 본인이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이 분야에 대해 너무 잘 알지도 너무 모르지도 않아서? 복합적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귀신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그의 선택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이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기는 하다. 차문수 교수 죽음에 대해 경찰들이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고통스럽게 죽을 리는 없으니 타살을 염두해 둘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근데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차문수 교수는 정말 육모돈에게 흉담을 전해들으면서 겁내지 않았을까? 육모돈이 흉담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듣는 것만으로도 죽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안다면 전하지 않아야 맞는 게 아닌가? 읽을수록 물음표가 많이 생긴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찝찝함이 아닌 개운함을 느끼고 싶다.
흉담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서늘한 바람에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 든다.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진실을 들춘다고 움직인 것 같기도 하고. 결국 흉담의 진실에 닿았다. 진실에 닿고 나니 악귀도 악귀이지만, 사람이 악해지면 정말 소름끼치고 무섭다는 것을 제대로 (소설이지만) 경험했다. 진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다.
공포 소설이라서 재밌게 읽고 말 거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재밌기도 했지만 재미 이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가질 수 있는 시간을 『흉담』이 선물했다.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준 전건우 작가님께 감사하다. 너무 잘 읽었다고, 재밌고 소름 돋고 무섭고 가쁜숨을 몰아쉴 만큼 몰입했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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