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구직자 -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 다소 시리즈 5
정수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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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구직자뿐인 세상에서 들리는 침묵의 아우성‘(모순)

: 정수정 소설, 연쇄 구직자(다산시리즈)


 

이 소설을 읽게 되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읽으면서 한숨을 쉬지 않았던 페이지가 없다. 안타깝고 짜증나고, 화나고 답답하고. 그 이상일 때는 우울하기까지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최지수가 세상 곳곳에서 있고, 나 또한 최지수이기도 하니까. 우리 모두는 연쇄 구직자 최지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며 최지수로 살고 있다.


어렸을 때 2020년이 넘어가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생기고, 우주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시대라고 생각했다. 정말 어리고, 어린 만큼 무지했다. 과학의 날을 맞아 그린 과학 상상 그림 대회의 주제는 대부분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주를 이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상상하며 즐거워했을 테니까. 현실을 너무 잘 알아버린 지금은 당장 오늘을 살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내일이 고민이다. 매일매일 사는 게 가장 큰 문제고, 고민이다. 매일 하는 고민이 덜어지는커녕 계속 몸집을 키우고, 나를 괴롭힌다. 근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서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다. 다 다르지만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어린 날 했던 철없던 상상에 더해 한 번 얻은 일자리로 평생을 일할 거라는 확신도 참 어리석다. 고등학교 때 진로 수업을 들으면 이젠 일자리가 고정적이지 않고, 지금 있는 일자리도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길 거라고 했다. 물론 사라진 일자리도 있고 생긴 일자리도 있지만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그 세상에 빨리 발을 담그고 오래 있던 이글을 새로운 것을 원하면서도 경력을 들먹이며, 오래된 것을 찾았다. 얼마나 모순적이고, 불편한 일인가. 그런 이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긴장되는 마음과 떨어질 거라는 마음에 드는 95%의 불안, 혹시나 하는 5%의 설렘을 품은 이력서들은 언제나 가면을 쓴 웃음과 냉정함, 건성으로 버려진다. 그렇게 마음도 준비한 시간과 비용도 길거리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보다 더 쓸모 없게 버려진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면서 동시에 정직적인 것을 요구하니 요구 당하는 을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갑을 꿈꿔본 적 없지만, 그런 갑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보면 나는 그런 갑이 되지 않을 거라며, 내가 갑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근데 그것도 잠시 갑도 을도 진절머리가 나서 갑과 을이 없는 세상을, 일자리에 목매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어릴 때는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꿈꿨던 것들이 어른이 되고 나니 모든 게 시간 낭비고 당장 가치가 없어서 모든 게 낭비가 되고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최지수의 삶이 꼭 최지수 것만이 아니라서 다행이면서 참 안타깝다.


최지수는 직장을 제발로 나오고, 일을 다시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2023~2024년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불편하고 속상하고, 짜증났다. 지수가 그만두겠다고 나오는 장면이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그 뒤가 어떨지 알고, 내가 생각한 대로 상황은 이어질 테니까. 역시나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현실적인 지수의 일상은 괴로웠다. 알고 보면 좀 나을 거라던 누군가의 말은 틀렸다. 알고 보니 더 잔인하고, 괴로운 게 아니라 고통스럽다. 일자리를 그만둔 것까지는 일단 나쁘지 않았다. 지수가 스스로 선택했고, 참고 일했다면 더 최악의 상황이 지수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때 지수가 감정적으로 한 선택인지를 생각했다. 감정적일 때 마음을 먹고 선택하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지수의 마음과 감정이 그때 격했던 것 같지 않다. 모든 걸 집어 삼킬 듯이 거칠게 타오르던 불길이 겨우 진정해서 재와 연기가 뒤섞인 상태였던 것 같다. 너무 지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솔직히 그때 지수의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쉽게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에 힘들어하고, 직장이 없을 때 확실히 더 거친 세상으로부터 매번 불합격 도장을 받는 지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금방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여기 그만두고 조금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하면 구해질 거라고, 일하던 것보다 더 좋은 곳으로. 근데 그건 착각이었다. 내 희망사항이었다. 쉽게 구해지지 않고, 구직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별일 아닌 것들이 별일이 되고 생각지 못한 상황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돈에 그렇게 짜게 굴지 않았는데 돈에 짜게 굴게 되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매일 누워서 영상만 보던 나와 다르게 지수는 계속 구직 활동을 했다. 대단했다. 이력서를 몇 십통을 넣고, 뭔가를 배워보겠다고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듣고자 하는 강습을 신청하는 등 계속 움직이는 지수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수의 능력을 알아주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게 현실이었다.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짰다. 짠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었다. 무너져서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력서를 보고 면접 보러 오라던 곳도, 출근하고 나니 내일부터 그만 나와 달라던 곳도 최지수의 삶에서는 볼품 없이 쌓이는 경력처럼 보였다. 1일에 몇 시간을 일했듯 그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경력으로 보였다. 그 경력이 쌓이면 정말 만능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는 하나같이 잘하고 내 일처럼 일하길 원하는 곳뿐이다. 급여는 쥐똥만큼도 안 되면서 바라는 건 엄청 많다. 조건도 많이 따지고. 지수가 일을 오래 하지 않고 자꾸 그만둘 때는 뭐 그럴 수 있지, 계속 일했으면 호구에 등신, 나중에는 육체적심적으로 많이 다쳤을 거야, 등등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니 지수가 일할 생각이 있기나 한지, 이렇게 일일이 따지면 일할 곳이 있기나 한지 묻고 싶었다. 지수가 생각하고 바라는 조건이 얼토당토않는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지수가 바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지 않다. 그래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그리고 들어가야 한다. 부려 먹는 사람과 수그리고 들어간 사람의 차이는 돈의 주는 입장, 받는 입장이다. 그 차이는 동전 앞뒤만큼 간단한데, 간단해서 가장 잔인하고 냉정하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 있는 최지수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위로가 되지 않냐고. 세상이 자신한테만 지랄맞게 구는 것 같다면 옆을 보라고, 옆 사람도 부글부글 끓는 냄비처럼 속이 시끄러울 거라고. 경력만 따지고 내 일처럼 몸이 부서져라 일하기를 원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또 나를 써주면 금세 고마워지는 게 세상 아니냐고 덧붙여서.


일하고 있는데도 최지수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안 해도, 하고 있어도 문제는 언제나 발생한다. 곳곳에서 연쇄 구직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적나라한 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서 이어폰 뒤로 숨는다. 이어폰을 잠시나마 현실 소음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잠깐의 해방 뒤에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의 해방의 단맛을 놓질 못하겠다. 퇴근길이 울적하다. 얼마 되지 않는 시급을 받아가며, 사람들한테 시달린 오늘이, 내가 참 짠하다. 뭐 나만 짠하겠나. 버스 타고 멍하니 창밖으로 보는 최지수, 초점 없는 눈은 폰 화면에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빠르게 화면을 넘기는 최지수, 쩌억- 하품을 하며 피곤함을 드러내는 버스 기사 최지수, 아주 많다. 언제쯤 연쇄 구직자 없는 세상이 올까?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연쇄 구직자, 참 잘 지은 별명이다. 오늘도 누구는 연쇄 구직자가 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가 될 뻔한 위기를 겨우 면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에게 자신의 일자리에 대해 떠들어대며 같잖은 위로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최지수의 오늘 무게를 감히 추측해볼 뿐이다. 나도 최지수면서. 모두가 최지수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지수의 삶을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 같다. 그냥 최지수임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쇄 구직자 활동을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연쇄 구직자로 활동하는 기간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르겠지만. 연쇄 구직자 활동은 꽤 오래 할 수 있지만, 계속 하지는 못한다. 언젠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리다. 나를 써주는 곳, 나의 능력을 알아봐주는 곳은 분명 있다. 서로 운이 좋다면 낭비하는 시간없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좋게 생각하자. 연쇄 구직자로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구직을 포기하거나 일을 하지 않아도 뭐 괜찮다. 이 말을 적는 순간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걸로 보일까봐. 구직을 열심히 하고, 일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근데 지수가 최지수에 적응한다고 말하던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꾸 뭘하려고 애쓸수록 되는 게 없다고, 그러다보니 힘들고 괴로운 거라고. 그냥 나대로, 나 자신에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금은 나에게 적응할 시간을 건너는 중이라고.


제목이 뭔가 호기심을 끌어서 펼친 책에서 만난 너무 현실적인 최지수의 이야기가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생활하다가 내게서 최지수를 자주 볼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거나 답답한 마음이 들어 괴롭겠지만, 아주 가끔씩 웃어주고 싶다. 그 마음 안다고, 연쇄 구직자로 사는 게 많이 힘들지만 잘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제목이 연쇄 구직자이지, 한 사람의 삶을 하루하루 기록한 일기장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다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많은 크고 작은 일들. 남편, 시댁, 도련님, 아버지, 서나, 미옥언니, 미진선배, 원 선배, 다솜이 등등. 그 중 돈과 관계에 대한 지수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에피소드와 문장들에 눈길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남은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지수가 하던 일, 하던 생각 등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다. 지수는 가벼워보였다. 왜 일을 구하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렸는지 이유조차 사라졌다. 그냥 최지수로 있는 게 어색해서 최지수를 꾸밀 수 있는 수식어를 갖기 위해 스스로 괴롭혔다. 지수는 천천히 수식을 하지 않은 본인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연쇄 구직자 최지수의 침묵의 아우성이었지만 이제는 최지수의 소리다. 어렵게 찾기 시작한 소리를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세상 곳곳에 있는 모든 지수가.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에서 받았습니다:)

 

다산 : 서평 등록이 늦어진 점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참 힘들었는데 연쇄 구직자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위로됩니다. 그 시기를 내 시간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기로 꼽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최지수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적이어서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공감했습니다. 종종 지수가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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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최지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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