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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 비교와 강박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을 되찾는 마음의 기술
전미경 지음 / 갤리온 / 2025년 5월
평점 :
받아들일 때, 진정한 ( )를 만날 수 있다.
: 전미경, 『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비교와 강박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을 되찾는 마음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갤리온)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발견한 것은 없었다. ‘받아들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이 배움은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이며, 이 배움을 실천하지 못해서 지나온 과거가 힘들었고 지나는 중인 현재가 힘든 것이다.
‘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라는 제목만 봤을 땐 조금 불쾌하고, 외로웠다.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나인 걸 아는데 제목마저 내게 그러니 ‘진짜 나는 특별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 직관적으로 읽히지 않고 그 안의 의미를 파악했을 때는 위로의 말로 읽혔다.
우리는 늘 특별함을 쫓는다. 남들과 끊임 없이 비교하며,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하거나 치켜세워주는 무언가를 갖길 원하고 하길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갖거나 함으로써 그걸 증명하듯 sns에 올려 좋아요와 조회수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 만족감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더’를 외치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본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이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즉 슬픔과 우울, 고통, 힘듦 등 진짜 모습을 숨기거나 거리를 두고 행복과 웃음, 여유 등 거짓으로 꾸며진 일상을 매일 수십 개의 피드를 올림으로써 누군가가 누른 좋아요와 써준 댓글에 만족한다. 숨기거나 피함으로써 사라지거나 넘겼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우리가 회피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반드시 더 크고 깊게 찾아온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되찾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관계 속에 놓인 우리는 진정한 관계를 꿈꾸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진정한 관계가 손에 꼽을 정도거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요나 목적이 있는 수단으로 맺어진 관계뿐인 현대사회에서는 놀랍지 않다. 진정한 관계는 타인을 완전히 인정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맺을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매번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빨리 친해지길 원하고, 아낌없이 주는 편이다. 상대는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경우에서 혼자 상처 받고,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많다면 자책한다. 상대를 거의 알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 결과였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관계에 진저리를 치고, 목적이 없다면 관계를 맺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타인은 우주와 바다보다 더 미지의 존재라는 것을 까먹는다. 타인을 미지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매번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상대와 있었던 일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혼자 분석하고 의미 부여하며, 스토리를 만들고 결국 스스로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괴롭지만, 멈추는 것이 두렵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받아들임’이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관계, 진정한 삶을 가져다주는 것을 이 책에서 여러 번 말한다. 핵심이 ‘받아들임’이다. 내가 가장 못하고, 어려운 것이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뭔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 착각이다.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넘기는 것이다. 변화를 줄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아서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계상황처럼 말이다. 당연히 마음과 머리에 계속 남아 되감기를 하고, 진실과 멀어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쓰는 건 금방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좇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정말 고단하고 외롭다. 근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깨닫는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 것 같던 가족들이 떠나거나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을 때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서야 말이다.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산다. 당장은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현재에 집중 못 한 결과물은 현재를 받친 미래에서 잔인한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미래가 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안다. 하지만 그 이론을 적용하여 현재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사는 이들은 드물다. 이론이 바탕이 되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치듯 산 삶은 돈과 명예, 지위로 완전함을 손에 쥘 것 같았지만 결과는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완전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고, 수준 맞는 사람(이 수준이라는 것이 뭘 말하는지 모르지만)과 결혼하고 모두가 그런 것처럼 아이를 낳고, 자녀를 좋은 대학을 보내고 대기업에 취업하도록 지원하는 등 뻔한 스토리 말이다. 언제부터 이런 진부한 흐름이 ‘완전함의 기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틀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만든 삶이 완전하다고 믿는다. 대부분 완전함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품고 살아서 나중에 환상이 깨지는 순간에 처절히 무너진다. 애초에 환상 같은 건 깨부숴야 한다. 완전한 것은 없다. 이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미완전함 안에서 이미 완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완전함을 꿈꾸고 좇는 것이 덧없다는 것을 일찍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환상 속에 사는 것이 고단한 현재를 위로할지 모르지만 잠깐이다. 그 환상 속에서 시들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보바리 부인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은 유한하다. 알고 있지만 죽음은 나에게 너무 멀고 희미한 세계라서 ‘유한성’이 와닿지 않는다. 유한한 삶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처음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한하니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나만의 삶을 살자? 유한한 삶이 눈앞에 다가온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살기 시작하고 그동안 놓쳤던 일상의 순간들을 소중히 느낀다. 인간은 참 어리석고 찌질한 존재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왜 뒤늦게서야 후회하고 반성하고, 깨닫는 걸까? 뒤늦게라도 후회와 반성, 깨달음을 얻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삶이 유한하다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유와 선택이 있다. 자유와 선택을 온전히 누리며, 타인이나 세상에 맞춰진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자신에게 가치 있고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이 유한한 이유는 고통과 불행에도 끝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끝에서 만날 달콤함이 얼마나 황홀할지 기대가 되는 것도 같다.
유한한 삶. 문득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니 제 수명을 다하고 길거리로 떨어져 바람과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쉽게 치이는 나뭇잎, 갈색 옷을 입고 겨울바람에도 단단히 서 있는 나무,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리는 차들, 바깥 풍경을 가득 채운 것이 덧없이 느껴진다. 진짜 인생은 춘몽이다.
삶은 고통이다. 불행과 고통이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니까, 부정적인 것과 거리를 두려고 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삶은 애초에 고통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는 각자 주어진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이런 선물을 원한 적 없으나, 불행과 고통을 준 대신 삶이라는 거대한 도화지를 줬다. 네 것이니 마음대로 그리고 지우고, 칠하라며. 우리는 각자 도화지가 있음에도 남들을 따라하고, 더 좋은 것을 좇다가 신이 준 도화지를 버리고 자신을 잃어버린다. 신은 버려진 도화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신은 이마저도 예상했을지 모른다. 신은 혀를 차거나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신은 우리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준다. 유한한 삶, 고통과 불행으로 굴러가는 삶의 단맛을 맛보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받아들임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발견을 내 몫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 ‘받아들임’을 경험하고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오를 것이다. “아, 받아들임이 비로소 내 것이 되었구나.”
‘특별하지 않다’,가 아니라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있는 그대로 특별하다고 말해준 이 책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여정에 있는 이들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갤리온’(웅진지식하우스)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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