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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데이비드 위멧 지음, 김선희 옮김 / dodo / 2025년 8월
평점 :
침묵을 투명한 언어라고 부를 수 있구나.
데이비드 위멧,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도도출판사)(인스타 리뷰단)
소녀를 보고 울컥한 마음이 드는 건 소녀와 내가 닮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책상에 앉아 정면을 보면 바로 보이는 곳에 두고 표지에 가면을 쓰고 있는 소녀와 매일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녀라면 나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고. 우리 둘은 투명한 언어 ‘침묵’으로 오랜 시간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던 것이 어제일인데, 오늘 이 소녀와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소녀는 말하지 않는다. 세상 박자 밖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가끔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책을 읽는다. 소녀에게 책이 거대한 세상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을 때면 소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밝아 보인다. 소녀는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이지만, 어둠을 밝히는 밤하늘의 별과 반딧불같이 작지만 환하게 빛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소녀의 말이 잔잔한 마음에 파도를 일으켰다. 소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 또한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데, 타인은 자꾸 나에게 말하기를 강요한다. 침묵 너머의 언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 않을 거면서, 자꾸 강요하고 몰아세운다. 내 말의 의미를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인데, 타인은 나에 대해 모르게 없다고 말하며 내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만든다. 그럴 때마다 침묵을 선택한 내가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침묵이 투명한 언어라는 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침묵이 답이 될 때가 맞다는 것도.
소녀는 겁이 많고 작고,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지,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 많고, ‘가끔 장난감 속 딸랑이는 방울처럼 느껴질 때가 많고’, ‘음정이 맞지 않는 음표처럼 남들과 다르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연기 속으로 가라앉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머릿속은 언제나 다른 곳을 돌아다니고’, ‘이따금 자신이 가고 싶은 곳들을 떠올리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 자신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앉은 나뭇가지 아래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살아 있는 그 모든 존재 안에 자신이 있는 것만 같다.’라고 한다. 소녀가 덤덤히 고백하는 문장들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다. 겁이 많고 작은 건 약점이라고만 생각한 나에게 소녀의 고백은 위로와 동시에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말하는 세상이 오히려 틀렸고, 나는 다르지 않고 작지도 않다고 힘 있는 눈빛으로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소녀는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로 도시를 지을 거라고, 그 도시는 조용하지 않을 거라고 미래를 말한다.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빛나는 자신의 목소리로 언젠가 말할 거라고 다짐한다. 소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소녀가 어두침침하게만 보일 수 있는데 소녀를 따라 걸으면 어둠이 방어막이고 사실은 가장 환한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박자 밖에 놓인 듯한 느낌은 살다 보면 자주, 가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침묵의 시간’을 걷다 보면 침묵이 하나의 언어이고, 말하지 않는 순간이 우리가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는 그 시간을 걷는 중이고, 침묵이 투명하고 빛나는 언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침묵이 답답함과 분노를 유발하는 불필요하고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투명한 언어일 줄이야.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세상 곳곳에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소녀가 자신의 빛나는 소리로 언젠간 만들 도시에 꼭 가보고 싶다. 그 도시에서는 소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질 것이고, 소녀만의 색이 곳곳을 환하게 물들일 것이다. 그 도시에는 검은색이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소녀는 검은색을 어둠이 아닌 투명한 언어라는 것을 아니까. 그림책이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라서 조명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집 안을 밝히는 빛이 더 밝게 보인다. 어둠이 있어서 빛이 더 두드러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근데 빛이 되고 싶어 하거나 원할 뿐, 어둠과는 거리를 둔다.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소녀가 침묵을 유지하지만, 때때로 아이들과 멀어져 소리치거나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며,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로 세울 도시를 상상하는 것처럼 빛나는 순간을 향해 가는 것처럼. 아니, 소녀는 이미 빛나는 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 더 빛날 순간을 위해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중이다. 소녀가 자신의 도시를 만들어 나를 초대하는 날, 나도 나의 빛나는 목소리로 만든 도시의 초대장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소녀를 위한 꽃다발을 준비하여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소녀 앞에 설 것이다. 소녀와 나는 서로의 도시를 위해, 각자 투명한 언어 ‘침묵’을 응원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보낼 하루를 함께 기억할 것이다. 소녀와의 만남이 오랫동안 나를 보듬어줄 품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소녀와 만나게 해준 데이비드 위멧 작가님과 도도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 이 책은 인스타 리뷰단 활동을 위해 ‘도도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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