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말 - 늘 곁에 있는 친구
제이크 비긴 지음, 최소라 외 옮김 / 퍼머넌트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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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른 말을 찾아서

제이크 비긴 글 그림, 최소라와 이코베 옮김 - 사랑의 말(늘 곁에 있는 친구)(퍼머넌트북스|북뱅크)

 


그림책은 늘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림책을 가볍게 읽고 넘기고 싶었는데, 사랑의 말은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내가 사랑의 말안의 소녀가 되어 써니에게 위로받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아니 앞으로 힘을 얻을 친구를 만났으니까. 살면서 어떤 존재를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도 누군가에게 행운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는 행복이 될 것이다.


써니의 등장으로 소녀의 삶은 송두리째 변한다. 살면서 겪는 무수히 많은 길 앞에서 하는 고민에 써니와 함께하면 숨바꼭질하는 대신 용기를 내고, 두려움보다 설렘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써니가 소녀에게, 소녀가 써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 일을 해낸 둘이 부럽다. 써니가 먼저 친구가 되어줄래?’라며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모른다는 소녀에게 다가간다. 먼저 다가와준다는 건 감사하고, 먼저 다가간다는 건 용기를 내는 행동이며 동시에 특별한 설렘을 갖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숨거나 도망가기를 택했는데, 소녀는 써니의 부름에 응한다. 써니와 함께 걸으며, 써니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을 숨김 없이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야말로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과 우정을 완벽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다. 사랑은 어디에나 전제되어 있는 근본이었다.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이론적으로 알았을 뿐, 현실에서 이론을 적용할 만큼 제대로 된 사랑과 우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묻는 소녀와 그에 답하는 써니의 장면이 정말 좋았다(방 벽 면을 그 장면으로 채워 넣고 싶을 정도로). 네가 만약 꽃을 좋아한다면 꺾어가겠지만, 사랑한다면 매일 물을 줄 거라는 말. 한동안 써니의 그 말 앞에서 멈춰 있었다. 닮은 듯 했지만 달랐다. 사랑과 좋아하는 것은 완벽하게 경계를 나눌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써니와의 동행하면서 소녀는 계속 부정의 말을 한다. 아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또는 하고 있는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러면 써니는 망설임없이 긍정의 표현으로 답한다. 소녀가 써니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스토리가 마무리되는 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둘의 엔딩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책제목부터 사랑의 말이니 당연히 사랑을 깨닫고 느끼며, 서로에게 사랑이 되어주겠거니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기까지 서로 얼마나 많은 진심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지, 또 사랑이 왜곡되지 않은 채로 전달되기 위한 방법을 얼마나 고민해야 할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가족을 제외하고- ‘사랑을 경험했던가? 사랑을 경험할 수 없었다.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있기에 사랑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사랑에게 냉정했고, 절대 자리를 내어주지 않겠다고 계속 밀어내는 중이다. 두려움에서 온 방어벽이고, 뽀죡한 창살이다. 내가 다치는 것이 싫어서 다가온 크고 작은 사랑을 밀어냈고, 밀어내는 중이다. 밀어낼 것이다. 한 번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은 본인이 잠궜지만 여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철컹-, 하고 단단히 잠기는 순간에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이 없는 내 안의 공간은 탁해지고 건조해진다는 것을 우정이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과 사랑이 너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라던 소녀와 써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근데 사랑을 어디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 먼저 굳게 잠군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써니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작은 것 하나를 골라봐. 그러고 나서 거기서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때?’라고 답할 것이다. 변화가 두려워 떨고 있는 나에게 세상 모든 건 변하지만 그 변화가 근사할 때도 있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마.’라고 다정히 말해줄 것이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쓱쓱- 빠르게 넘기기보다 음미하듯 넘겼다. 아니, 그림과 문장이 나를 붙잡고 안아줬다. 누군가에게 내가 해줬던 말들은 사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인데,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근데 사랑의 말이 소녀와 써니를 통해 말해줬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서 남들에게 진심을 다해 했던 말들을 말이다. 울컥해서 목이 메었지만 울지 않았다. 나오려는 눈물을 도로 돌려보냈다. 내 눈물이 소녀와 써니와 함께 하는 특별하고 소중한 동행을 젖게 만들기 싫었으니까.


소녀와 써니의 순간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사랑이었다. 오직 둘만 존재하는 시공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소녀와 써니의 관계는 늘 마음 한 구석에 꿈으로 남아있다. 내가 소녀 혹은 써니가 되거나 상대가 소녀 혹은 써니가 되어 또다른 사랑의 이름을 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늘 혼자가 편했고, 혼자면 상처 받는 일도 적어서 혼자가 되길 스스로 선택했는데, 그럼에도 받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갔고, 흉이 지워지지 않았다. 써니 같은 존재가 내 곁에 있다면 다음 날 해 뜨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은 내게 다음 날 뜨는 해를 선물처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고 했던가. 그 말을 비웃었는데 어리석었다. 혼자가 편하다고 확신하는 건 쓸데없는 오기를 부렸던 것이 크다. 이젠 혼자보다 둘이고 싶다. 너무 늦은 걸까 싶지만 어디선가 아니? 늦은 것 없어. 지금부터 시작하면 돼. 시작하기 위해 용기를 낸 너를 응원할게. 내가 함께 할게.’라는 써니의 말이 아침 특유의 상쾌한 바람에 실려 날아와 내 마음에 새겨진다(써니의 말이라고 믿고 싶다). 써니와 소녀가 함께 보냈을 것이다. 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았기 때문에 나의 오늘은 조금 특별해질 것 같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고 싶은 말을 한 권의 책으로 잘 묶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들을 묶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늘 작가님 마음에 있던 문장을 소중하게 감싸안아 꺼내어 종이에 옮겨 놓았을 뿐이라고, 엄청 대단한 말은 아닌데 평범해서 더 특별하고 대단한 힘을 발휘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거나, 멀리 내다보면 누군가의 삶의 걸음마다 숨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하며 그림책에 나의 마침표를 찍었다. 작가님께 고맙다고, 덕분에 위로받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내일의 힘은 또 책장을 펼쳐 소녀와 써니의 동행을 함께하며 얻겠다고 전하고 싶다. 세상에 사랑의 말이 가득 찬다면 우리는 수많은 사랑을 만나거나 만들거나, 간직할 것이다. 세상은 사랑이라는 씨앗을 곳곳에 심어 땅을 야물게 다진 후, 매일 물을 주고 함께 햇볕을 쬐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또다른 사랑의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다.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단단한 밑이 되고, 연결고리와 같은 끈끈한 역할을 한다. 사랑을 믿지 않고 살아온 나는-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었나?- 소녀와 써니를 통해 사랑이라는 심오한 세계에 조심스럽게 첫 걸음을 옮겼다. 가능하다면 근사한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먹구름, 그림자, 시야를 방해하는 모랫바람마저 품는 넓고 근사한 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곁에 있길,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길.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퍼머넌트북스x북뱅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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