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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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야 하는 이유.

유모토 가즈미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살아있다는 것(북뱅크)

 


생각이 많아지는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있는지도 몰랐던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위로, 위로 올라와 내 목구멍을 턱-, 하고 막는 울컥함을 느꼈다. 내 마음이 얕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 그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다. 그 시작에 살아있다는 것이 함께여서 위로가 된다. 이 책을 만난 건 2025년 시작을 외롭지 않게, 2025년에 나만의 호수를 발견하고 내 세계에 나 자신이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무언가의 바람이 내게 닿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과의 만남, ‘소년과 눈꽃 무늬 스웨터 아저씨와의 만남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할 것이다. 소년이 그랬듯이 아저씨와의 짧은 만남과 다리에 섰던 날들을 잊고 하루하루 살아가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기분과 들었던 생각을 들여보지 않은 날이 많아서 먼지가 쌓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이 그림책을, 소년과 아저씨와의 만남에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 내고 그 시간으로 향할 것이라는 사실을.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는 나로서는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 어렵고,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 같이 느껴진다. 숨이 붙어 있고 하늘을 환히 밝히는 해를 만나고, 주어진 시간을 내 선택과 계획으로 보내는 게 살아가는 걸까? 근데 왜 자꾸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소년이 다리 위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도 학창 시절에-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여러 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많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사치스럽고, 버겁게 느껴져서 애먼 신발코를 땅에 치며, 땅과 신발코의 경계만 매섭게 노려보다가 이내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꼭 강물에 뛰어든 것처럼-뛰어들어본 적 없지만 그럴 것 같다-순식간에 내 주변이 어두워지고, 아찔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나의 목을 순식간에 조를 것 같은 공포감을 느낀다. 그것도 품이라면 품일까? 나를 안아줄 품을 바랐지만, 어둡고 차가운 품은 바란 적 없는데 말이다. 그런 시기를 여러 번, 최근에도 겪었기에 다리 위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소년과 눈꽃 무늬 스웨터 아저씨의 만남은 필연이다. 아저씨가 모든 걸 알고 소년을 찾아온 아저씨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년은 생각지 못한 아저씨와의 만남으로 호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강에 몸을 던지는 대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생각지 못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저씨와의 만남은 두고두고 소년의 마음에 소년의 호수에 잔잔하게 일렁였을 것이며, 소년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종종 생각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짧은 만남으로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뀐다는 사실이 참 거짓말 같으면서도 그 만남으로 내 힘으로는 절대 안 되는 삶의 변화를 이루고 싶던 때가 있었고, 실제로 그런 삶을 몇 번 보았다. 소년에게 아저씨가 찾아온 것처럼 내게도 누군가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그 바람은 죽기 직전까지 간절히 유효하다. 아저씨와 같은 존재를 수도 없이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전과 달라진 지금의 나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고, 살고 있는 걸까? 버티는 것보다 살고 싶다. 온 힘을 끌어모아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나는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살기까지 수많은 이의 도움을 받았다. 혼자가 좋고 편했고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외로움은 지긋지긋하니까.) 소년은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깨닫고, 강을 선택하는 대신 집으로 향했다. 낯선 아저씨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소년의 마음에는-소년의 호수-에는 눈꽃 무늬 스웨터 아저씨가 살고, 수많은 사람(얼굴)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보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살아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년은 어린 나이에 겪기에 무겁고 아픈 시간을 지나 자유로워진 걸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소년의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가벼워졌길 바란다. 소년을 보니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리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늘 몇몇 얼굴이 머릿속에 하나 둘, 선명하게 생각난다. 지우려고 애쓰면 선명해지는 얼굴이 있고,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애쓰면 흐릿해지는 얼굴이 있다. 그 모든 얼굴들이 나의 오늘을 만들고, 나의 삶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언젠가 이 사실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의 호수를 발견하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을 품는다. 호수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호수를 발견하는 일은 드물다. 소년은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으로 호수를 찾았고, 호수에 비친 자신과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수많은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호수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걸까? 우리 몸의 길을 따라 흐르는 건 붉은 피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호수에서 나오는 투명한 물이 아닐까? 색이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까지 내다보고 창조주가 물줄기에 붉은색을 입힌 건지도 모른다. 하루도 쉰 적 없이 호수의 물이 내 몸을 순환하고 있다. 나의 호수에는 물의 갈래가 얼마나 있을까? 하나는 아닐 것이다. 여러 개의 갈래 중, 하나는 꼭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살아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다.


소년과 아저씨는 한동안 안개가 짙게 깔린 나의 호수에 유일하게 빛을 내는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비출 것이다. 틈틈이 두 사람을 떠올리며, 오늘도 어디선가 강을 바라보고 있을 누군가와 매일 강과 같은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누군가에게 눈꽃 무늬 스웨터 아저씨와 같은 존재가 늦지 않게 도착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북뱅크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신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지켜만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처음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신을 찾거나 원망한 적은 있어도 질문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질문이 신선하면서도 잔잔했던 마음이 일렁일 수밖에 없었다. 신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기에는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들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신도 고통과 분노를 느낄까?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주먹을 꽉, 쥐거나 만물을 만든 자신의 선택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후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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