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자의 차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6
연여름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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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통제해도 통제되지 않는 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벅찬가.

연여름, 부적격자의 차트(현대문학)

 


리누트 바이러스로 인공지능 모세’, 즉 중재자의 범위 안에서 생존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하는 삶, 혹은 재앙으로 인한 삶에 균열이 일어나는 등 줄거리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써왔다. 하지만 연여름 작가가 부적격자의 차트를 통해 보여준 세계는 다른 작품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갖는다. 바로 중재자의 등장이다. 중재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키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사전적 정의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재자인 인공지능은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재앙이 들이닥치고 세상이 어수선해지고, 생존의 위협을 받기 시작할 때 중재자인 것처럼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그것이 권력이 되어 강압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길 강요한다. 재앙이라는 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힘(권력)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약한 자들은 강자들보다 더 쉽고, 자주 다양한 위협에 노출된다. 부적격자의 차트에서 인공지능을 중재자로 둔 것은 작가의 큰 그림이 아닐까. 사람이 중재자가 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냉정하고 객관적이라고 해도 언제라도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면 이야기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스토리와 다르게 흐를 수 있을 테니까. 인공지능이 재앙에 갇힌 인간들을 충분히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인공지능의 단점을 부각하는 짧은 생각이었다. 인공지능이 중재자가 되고, 인공지능이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계산하면서 그에 맞는 규칙을 정하고, 인간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익숙해진다. 오히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이방인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 말이 와닿는다. 불신과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어느새 적응하면서 따르고, ‘중재 도시라는 공간에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중재 도시는 상상은 금지되고 꿈은 병증이 되며 감정조차 오류로 치부되는 세계이며 부적격자의 차트는 중재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실무자)의 생활의 모순 경과를 기록한 것이다. 모순은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중재 도시에서의 모순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갈망하는 세계를 집요하게 쫓지만 금세 씁쓸해지는 느낌이다. 목이 타는 갈증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것처럼 중재 도시 밖을 남몰래 희망하던 이들의 갈증을 세인의 선택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봐야 할까? 중재 도시의 밖은 중재 도시 안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위험하고 쉽게 다양한 위협으로 노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인과 이폴은 되돌릴 수 없는-전혀 되돌릴 생각이 없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중재 도시 밖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독자인 나만 가질 뿐이다-선택으로, 중재 도시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세인의 선택과 세인의 중재 도시 밖에서의 기록에 영향을 미친 9세대 레드는 중재 도시 밖의 삶을 누구보다 갈망했다. 레드의 갈망은 시들고 말았지만, 세인의 선택으로 레드의 갈망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적격자로 처리되어 아예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부적격자가 무엇일까, 계속 질문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중재 도시에서 부적격자를 찾아내고, 그들을 소거하는 시스템이 맞는 걸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고 누려야 할 감정이 균형제 약물로 통제되고 꿈은 병증이기에 치료를 받아야 하고, 상상(허구)은 금지의 대상이며 고발의 대상자 조건이라니. 살기 위해 인공지능의 제안을 따랐고, 그렇게 시작된 중재 도시의 삶은 어쩌면 지극히 가장 현실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이런 삶이라면, 중재자인 인공지능과 다를 게 뭔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마침표를 찍을 때, 내 머릿속에 뒤엉켜 있던 실타래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생존과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중재 도시에서의 삶은 생존이라면, 중재 도시 밖에서의 삶은 사는 것이다.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우습게도 생존을 택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생존하고 나면 중재 도시에서의 삶에서 적응한 채 방벽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겁이 많은 나와 다른 세인과 이폴은 방벽을 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방벽 너머로 가고자 하는 결심이 그들의 앞으로의 삶이 눈부실 거라고 말해줬다. 생존과 산다는 것 중,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제 몫이다. 따라서 선택에 따른 대가도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세인은 레드와 나눈 대화에서부터, 아니 오래전부터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챔버를 만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방벽을 넘을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레드는 세인의 계획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흥분의 불씨에 바람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방벽 너머의 삶은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았지만 세인과 이폴은 후회하거나 중재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를 느끼고, 삶을 살았다’. 로봇처럼 살아야 하는 방벽 안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생존이 아닌 살아있음을 완벽히 느낀 것이다. 어쩌다 이 책을 만나게 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세인과 이폴, 그리고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를 이들의 증인이자 목격자가 되었다.


부적격자의 차트를 읽고 나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장르부터 스토리, 배경, 그리고 관계 등등. 나눌 것이 많은 책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만난 나는 행운의 독자였다. 추천사부터 작가의 말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소설이다. 나는 내일의 해가 뜨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시달리기보다 내일의 해가 뜨는 당연한 사실에 불안을 느낀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중이다. 세인과 이폴은 이런 나의 말에 분노하거나 어이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거나, -빈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볼 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을 갈증이니 말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진부한 것 같지만 가장 특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현실에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닌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 삶인지’, 그리고 자신이 던진 질문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질문에 죽을 때까지 괜찮은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매일매일 물어야 하며, 틈틈이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세상 곳곳에서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불리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 또한 현재 숨을 쉬고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부적격자일지도 모른다. 부적격자인 게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중재 도시에서 칭하는 부적격자와 다른 부적격자 말이다. 우리는 사실 중재 도시에 살고 있는 부적격자가 아닐까? 하루에도 수십 번 위협(상처)에 쉽게 노출되는 세상에서 사는 게 버겁다고 매일 생각하는 나는 방벽 너머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중재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현 세상에서 사는 게 아니라 생존만 하는 것 같다. 생존 이후에는 뭘 해야 할까? 생존으로 시작한 길이 사는 것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세인과 이폴의 증인이자 목격자가 된 나는 제2의 세인과 이폴을 꿈꾼다. 물을 들이켜도 해결되지 않은 갈증의 원인을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으니,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계획을 세워서 세인이 걸었던 쉽지 않은 여정을, 세인의 발자국에 나의 발자국을 덧댈 만만의 준비를 해야겠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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