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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평점 :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소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 21인 작가, 『소설, 한국을 말하다』(은행나무)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읽고 나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수많은 이유로 모른 척하거나 지나쳐야 했던 일들에 대해 누군가는 분명 책임을 지고 용기를 내어 펜을 들어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막중하고도 대단한 일들을 21인의 작가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라는 공통된 주제를 완벽하게 관통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야 말았다. 짧게 실린 21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21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된 것 같고, 인물들이 놓이고 겪은 상황을 내가 겪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분명 내가 겪었던, 느꼈던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21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펐다. 울기에는 비참하고 웃음은 나오는데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랄까. 21인의 작가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분노, 좌절, 슬픔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면서 객관적이고 명징하게 글을 써냈을까. 그들의 책임으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꼈다. 확실한 건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과거에도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거지방, 고물가, 오픈런, 번아웃, 중독, 새벽 배송, 현대적 삶과 예술, 식단, 낙인, AI, 콘텐츠 과잉, 사교육, 가족, 자연인, 팬심, 다문화 가족, 반려동물, 섹스리스, 노동, 돈’. 각각 21편 글의 키워드는 이렇다. 키워드를 하나씩 소리내어 읽고 나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에 무게가 더 해지는 것 같다. 휴대폰만 스크롤해도 알 수 있는 문제들, 뉴에서 앵커들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문제들, 세상이 어쩌려고 이러나 안타까우면서도 내 일은 아니고 당장 할 일이 많아서 무심히 지나치는 우리의 문제들. 키워드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보니 지금 한국 사회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지만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된 문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는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안 해볼 수가 없다. 나는 21개의 키워드 중, 와닿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번아웃, 중독, 현대적 삶과 예술, 콘텐츠 과잉, 가족, 팬심, 반려동물, 노동, 돈‘이었다. 와닿는데는 내가 어느 정도 경험했거나 알게 모르게 시선과 마음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소설을 읽으면 형광펜으로 시선이 오랫동안 멈춘 문장에 색을 입히고 내 이야기네-, 라는 문장에는 화살표를 붙여 내 이야기를 그리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낸다. 그러고 나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면서 동시에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으면서 나를 포함한 그들이 안타까워 울컥했다. 사회에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한 것인데, 편리와 긍정의 변화라는 가면을 쓰고, 부정과 피해의 면을 가져오는 것도 당연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변화에 악을 심는 것일까? 생각이 깊어지니 나도 모르게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개인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사회가 행복하지 않으니 사회의 구성원이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다. 개인의 행복이 곧 사회의 행복이고, 사회의 행복이 개인의 행복이라는 공식이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돈독하다 못해 서로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1편 이야기 중, 「화원의 주인」(강화길)을 읽다가 울컥하고 씁쓸했다. 키워드는 ‘중독’이고, 인간관계 안에 배려와 사과, 용서를 다뤘다. 미진과 영은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다. 학창시절에는 엄청 친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영은의 대학친구 지선까지 껴서 셋이서 어울리게 되었고, 미진과 영은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미진은 학창시절 때부터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중독되었고, 영은은 그런 미진을 잘 알았다. 끝없이 배려하고 사과하고 용서 받는 삶을 영은은 미진 자신보다 잘 알았다. 미진은 배려와 사과, 용서를 쉽게 자주 했음으로 중독된 것이 확실했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미진 자신을 위해서라도 멈춰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영은조차도. 영은은 알려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런 미진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즐거움과 희열을 느꼈을까? 이야기 끝에 다다랐을 때야 영은이 영악하고 무섭다고 느꼈다. 미진은 자주 눈치를 보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너무 많이 미안해했고 상대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만 얼마 못 있고 전화를 걸었다. 영은은 그런 미진을 너무 잘 알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진이 답장하지 않는 영은 자신에게 전화를 걸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영은의 확신과 달리 미진은 전화하지 않았다. 미진의 연락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영은은 미진의 연락을 기다리고, 왜 연락이 오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미진의 연락인가 싶어서 빠르게 화면을 보지만 미진이 아니다. 영은의 이런 행동을 미루어 봤을 때, 배려와 사과와 용서, 눈치에 중독된 미진처럼 영은 또한 상대의 배려와 사과와 용서, 눈치에 중독되었다. 중독된 지도 모르고 있다가 상대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중독 증상이 보이는 것이다. 영은은 미진에게 중독되었고, 그 중독이 미진과 영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훤히 보이고, 그 관계의 끝이 ‘파국’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은의 자기합리화 같은 엔딩의 마침표까지 읽고 나면 「화원의 주인」이라는 제목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화원은 ‘마음’이고 주인은 ‘나’인 것이다. 화원에는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꽃들이 넘쳐나고 꽃향기를 따라 나비와 벌이 들른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화원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화원의 주인이 허락한 사람만 가능하며, 화원은 언제나 주인의 관리를 받는다. 다시 말해, 나의 주인은 나이며 나의 마음이 시들지 않게 틈틈이 관리하며 보살펴야 한다. 미진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중독되어 화원이 시들어 가고 있고, 영은은 생각지 못한 자신의 화원을 과할 정도로 돌봐주는 미진에게 중독되어 화원이 시들어 가고 있다. 각자의 화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을 맴돌고 있는 이 둘의 관계는 끝이 보인다. 관계가 끝이 난다면 화원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하루빨리 미진과 영은이 자신의 화원을 되찾아서 꽃을 가꾸고 나비와 벌의 방문을 환영하며, 여유를 갖고 차를 마시며 편안함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미진과 영은이 화원의 주인이 되어 ‘자신을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혀야 하며, 전해지고 전해져서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동시에 그 문제의 피해자가 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 책 앞에서 나는 오랜만에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사회에 속할 수 없는, 속하기 싫은 마이웨이 개인이라고 자부했는데 사실은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싫든 좋든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와 보장을 받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고 있지만-이미 시들었는지도 모른다-한국은 위기에서 일어날 ’단단하고 밝은 힘‘을 갖고 있기에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번의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가서 이겨냈다. 당면한 문제 또한 ‘한국인의 힘’으로 해결할 것이다. 필요할 때 늦지 않게 나타나는 촛불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촛불은 밤하늘에 떠있는 둥근 달보다 환하다는 사실 또한.
2024년 12월, 한해를 마무리하며 따뜻하게 보내야 할 연말에 생각지 못한 소식에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분노하며, 자신만의 빛을 들고 추운 것도 잊고 거리로 뛰어 나갔다.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모두가 뛰어든 거리에는 절대 꺼지지 않을 수많은 다양한 빛이 있었고, 함께 한다는 사실이 추운 날씨를 이겼다. 지금 한국 사회에 찌든 문제가 하나씩 뿌리 뽑혀 나가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불씨‘를 품은 위로를 전한다. 희망은 잔인하지만 앞으로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희망을 품은 자에게는 내일이 ‘반드시‘ 와야만 하고, 희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닿은 하루하루가 모인 우리의 삶은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할 것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D
◎ 은행나무 : 서평단 활동을 너무 늦게 마무리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책장을 넘기고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 책을 기획한 의도를 책장을 덮고 나서 90% 정도 이해했습니다. 두고두고 꺼내 읽으면서 슬퍼하고 분노하고,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책을 만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4년이 다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은 건 아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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