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무진의 여름
권석 지음 / &(앤드) / 2024년 12월
평점 :
과정이 곧 결과.
권석 장편소설, 『리무진의 여름』(&)
전 무한도전 예능PD가 이 책을 쓴 작가라기에 궁금했다. 예능PD의 글은 얼마나 재밌을지, 어떨지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직업이니만큼 생동감과 현실성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생동감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끼고 싶었던 생동감이 잘 느껴져서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우진과 울룰루, 테일러와 베티와 함께 기나긴 여정을 보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런 착각이라면, 책장을 덮고 난 후 마음가짐에 조금 변화생길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리무진의 여름』이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제목이 시원하고, 어떤 여름을 보낼지 궁금하다. 이 책은 림우진이라는 소년이 새엄마 ‘세라’를 찾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우진이가 유치원을 막 다니기 시작할 무렵 처음 만나게 된 새엄마는 이모할머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미국으로 간다. 미국으로 간 새엄마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7살이 된 우진이 새엄마를 찾기 위해 광활한 미국 곳곳을 누빈다. 새엄마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이모할머니를 찾아야 했고 물어물어 이모할머니 집을 찾았지만, 이모할머니가 떠난 지 꽤 됐다는 부정하고 싶은 소식을 듣고 좌절감을 맛본다. 그러다 이모할머니를 알고 지낸 베티와 어쩌다 보니 이모할머니를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한다. 인연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때에 만나는 것일까. 장을 보기 위해 지나던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리의 시인, 테일러와의 만남도 베티처럼 우연이었다. 유타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타를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테일러와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테일러에게 詩 한 편을 써달라고 한 우진은 이미 테일러와의 인연이 단단한 실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속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테일러와 우진의 만남은 짧게 끝날 줄 알았지만, 테일러가 다시 캠프로 돌아오면서 새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인원이 늘게 된다. 우진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타국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AI 로봇 울룰루뿐이었는데 베티와 테일러를 만나 특별한 여름을 보내게 될 줄은. 남과 모든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고, 서로를 위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진은 처음에 베티의 호의에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의심했지만, 베티는 그저 예전에 피코맘(이모할머니)에게 받았던 도움을 피코맘의 손자인 우진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우진이 직접 깨닫고 봤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진은 새엄마를 찾길 간절히 원했고, 여러 사람의 도움과 정보를 통해 새엄마와 가까워진다. 새엄마를 찾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우진은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마음에 꾹꾹- 눌러 담기만 했던 말들을 밖으로 꺼내보고 길바닥에서 남들과 밥과 잠을 해결하고,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등 ‘처음 새엄마를 찾겠다는 마음만 굴뚝 같았던 우진’과 다른 우진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늘 결과만 중시하는 삶에 찌들었는데, 우진의 특별한 여름 여정을 함께 하면서 과정이 곧 결과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과정과 결과는 같을 수 없고, 과정은 결과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그 생각이 선택과 도전, 용기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했다. 새엄마를 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기꺼이 낯설고 광활한 미국의 여정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겨 부딪친 우진이 멋있고 대견하다. 보호자의 품에서 보호와 보살핌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느 순간 그 품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하는 때가 오면 쉽게 주저앉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인지 우진이과 함께 떠난 여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고, 혼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등 직접 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성숙해져 어른아이가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건 자라는 동안,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값진 기억으로 자리 잡아 앞으로 살면서 부딪힐 수많은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유연하고 다양한 방법을 만드는데 괜찮은 재료가 될 것이다. 『리무진의 여름』을 자신을 찾아 떠나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뭐가 맞고 틀린지 알려주는 인생의 매뉴얼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망설임 없이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과정이 곧 결과라는 사실과 더불어 어제 오늘 내일을 살아가는 나와 그렇게 살아서 만들어진 삶이 곧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매일 모호하고 거대하기만 한 삶이라는 여정의 출발선에서 심호흡하며, 갈수록 빨라지는 심장 박동수를 느낀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결국 마음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에는 나도 새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소리내어 고백한 우진처럼 한 뼘 성장하지 않을까. 20대 후반이 되니까 ‘성장’이라는 표현이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일 때는 성장이 확연히 드러났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성장이 더딘 것뿐만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세상의 웬만한 쓰고 단 일들을 경험했을 텐데 우진과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인물이 떠나는 여정을 통해 성장을 보여줬다. 그래서 싹도 틔우지 못한 나의 용기 씨앗이 꿈틀댔던 것 같다. 성장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성장이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 권석 작가님과 우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에서 받았습니다:D
#리무진의여름 #권석 #앤드 #넥서스 #청소년소설 #청소년문학 #성장소설 #미국 #새엄마 #여정 #친구 #믿음 #고백 #용서 #마음 #변화 #성장 #자유 #시간 #타인 #경험 #로키산맥 #여행 #죄책감 #기억 #사랑 #책추천 #책로그 #24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