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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재능
피터 스완슨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평점 :
어딘가에 ‘악마’, 그리고 그를 좇는 ‘그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터 스완슨, 『살인 재능』(푸른숲)(*가제본 서평단)
『살려 마땅한 사람들』 이후, 피터 스완슨 작가의 작품은 두 번째다. 처음 읽었던 작품이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스릴러 소설에서 가장 뛰어난 몰입도를 끌어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의 기대감이 높았다. 스릴러 대가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닌 만큼 이번 소설 역시 피터 스완슨의 재능이 전면에 펼쳐졌다. 그의 재능 덕분에 독자들은 매 순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고, 반전으로 바뀌는 공기의 흐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유일하고도 특별한 재능이 ‘살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 질문을 한 번도 생각하거나 들어본 적 없지만, 그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소설을 건넬 것 같다. 피터 스완슨이 보여주는 스릴러 장르의 세계는 모든 게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실제로 있었던 일 혹은 지금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법한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직접 보고 있는 것 같은 구체적인 묘사와 더불어 입체적인 인물이다. 스토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배경-흐름-인물이 박자를 이루어 리듬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피터 스완슨은 완벽한 리듬을 제공한 후, 몇 번의 손짓으로 독자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버린다. 그래서 책장을 넘긴 독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뛰는 것이다. 정신없이 한창 쫓기다가 숨 돌릴 틈이 생기면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 등 순식간에 낯설고 차가워진 공기가 닿아 돋은 소름을 애써 문지르며 호흡을 달랠 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입체적이다. 입체적인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그들이 된다. 마사, 앨런, 릴리, 이선이 되어 스토리에 완전히 녹아든다. 특히, 릴리와 이선에게 마음이 빼앗겼다. 릴리는 내가 그녀에게 빙의를 해서 연쇄 살인 사건의 전말을 파고들면서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두려움, 마주한 진실 앞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낯설지만,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선은 다른 결의 감정이다. 살인이 자신의 유일하고 특별한 재능인 이선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를 ‘악마’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를 어린 시절 있었던 일을 시작으로 집요하게 찾는다. 나 또한 이선의 연쇄 살인 이유를 그의 어린 시절에서 찾고자 했다. 특별한 일이랄 것이 없어서 내가 놓친 건 아닌지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은 앞이 아닌 뒤에 있었다. 이선은 그냥 지루했고, 누군가의 삶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게 얼마나 쉬운지 또 사람을 죽이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게 된 것뿐이었다. 살인을 그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게임, 사냥이라고 말하는 이선의 모습에 공포를 넘어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였다. 악마도 이렇게까지 잔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선의 대답을 들었지만, 자꾸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재미를 위해 사람 목숨을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인지 알 수 없다. 이선은 자신이 특별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살인이 재능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째서 우월함까지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데, 나는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피터 스완슨이 이것마저 계산한 게 아닐까?). 이런 내 모습에 이선은 아주 비릿한 웃음을 흘릴지도 모른다.
이선의 마지막은 릴리 킨트너가 함께 했다. 그녀의 마지막을 정했던 이선은 결국 그녀의 손에 볼품없이 (본인 생각인) 우월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연의 섭리가 아닌 누군가는 찍어줬어야 할 ‘악(마)’마저 두려워서 피할 삶이라는 점에서 릴리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 하지만, 이선의 리스트를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숨겨 놓을 거라는 릴리의 선택은 잘 모르겠다. 자신이 죽고 나서 리스트가 발견되고, 자신의 업적에 대해 세상이 떠들썩해지는 걸 원하는 이선의 꿈을 정말 꿈으로 남겨두는 건 이선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하지만, 그의 손에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스물여섯 명의 이야기를 묻히게 둬도 될까?(리스트는 언젠간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그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진실을 마주한 릴리의 몫이 있었던 것처럼 이 소설을 읽어버린 독자로서의 몫은 작가와는 다른 결말을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 재능』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살인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어쩌면 모두 잠정적인 살인 재능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살인’ 뒤에 붙은 ‘재능’ 때문에 ‘살인’ 글자의 어감이 부드러워지는 건 왜일까?
■ 이 가제본 도서는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 푸른숲 : 가제본 도서 서평단 활동을 너무 늦게 마무리했습니다. 기한 내 서평을 올리지 못한 점 사과드리며, 피터 스완슨과 두 번째 만남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릴러 소설은 이제 피터 스완슨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을 만큼 신작 역시 대단했습니다. 긴장과 의심,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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