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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ㅣ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평점 :
하다가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김청귤 장편소설, 『달리는 강하다』(래빗홀)
좀비가 득실대는 세상을 달리는 강하다! ‘강하다’라는 형용사를 인물의 이름으로 붙일 때는 강한 인물을 그려낼 작가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강하다’를 잘 만들었다. 달리는 하다를 좇아서 좀비가 득실대는 세상을 빠르게 뛸 수밖에 없었다. 하다의 달리기 속도와 몰입도는 비례했다. 순식간에 넘긴 책장이 아쉬울 만큼.
원인 모를 이유로 65세 이상 노인이 좀비로 변이되면서 태전은 봉쇄된다. tv에서는 65세 이상을 제외한 모두 빠르게 다른 도시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며, 현 상황에 대한 심각성과 원인을 찾고 있고 예방 방법은 모른다는 진부한 문장만 반복할 뿐이다. 하다는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어서 상황이 나아지거나 정부에서 구하러 올 때까지 태전에 남아 할머니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할머니는 본인 때문에 태전에 남는 하다에게 미안해하고, 하다는 그런 할머니를 위로한다. 까칠한 하다가 할머니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누군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좀비가 가득한 밖으로 향하는 모습은 현재 닥친 재난에 순응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이 엿보인다. 재난이 닥치면 노인, 아이, 여자가 위험에 가장 쉽게 노출된다. 재난 중 직면하는 직접적인 문제(식량)를 떠올리면 ‘강하다’라는 인물이 열아홉 살 소녀라는 점과 달리기가 빠르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날렵함과 단단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재난’에서 하다는 재난을 잘 넘길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지 않을까? 물론 하다가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다 곁에서 그녀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에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치는 재난을 ‘함께’ 넘길 수 있었다.
하다가 달리기를 잘하게 된 건 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0살 때, 맞벌이하는 부모를 따라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하다는 할머니 품을 그리워할 만큼 많이 외로웠고, 울어도 달래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양육 문제를 두고 싸우는 부모를 뒤로하고 달리다 보니 오래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달리고 나면 가벼워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 사실을 부모의 사랑이 고픈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하다가 안타깝다. 돈을 벌기 위해 바쁜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준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하다는 그저 오래 잘 달리는 달리기에서 멈췄을 것이다. 부족한 부모의 사랑을 채워준 건 할머니였고, 덕분에 하다는 위험한 상황을 알지만 은우를 업고 뛰었고 사랑이 분유를 위해 마트로 뛰었고, 혼자 있는 지민이를 데려와 가족으로 보듬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마음을 재난 속에 틈틈이 깨달으면서 엄마를 이해했다. 이름 따라간다는 말처럼 강하다는 날이 더해질수록 강해졌다. 강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성장도 이루어졌다.
분명 좀비가 득실대는 세상인데,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 65세 이상 노인을 좀비로 설정해서 그런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좀비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를 보면 과장과 자극이 심하다. 『달리는 강하다』는 자극적인 점 없이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가 세상을 점령하는 때가 오면 이럴 것이라고, 차분하게 말하는 것 같다. 재난이 닥쳐도 ‘사랑’과 ‘연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웃음 그리고 밥 내음이 끊이지 않는 하다 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픈 게 웃기지만, 웃겨도 잘 먹어야 힘이 나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마음을 훅-, 빼앗겼다.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가 재난일 수도 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재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재난에 순응하여 주저앉는 대신 하다처럼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맑게 갠 하늘이 자신을 향해 두 팔 벌리지 않을까. 웃음과 사랑이 피어나는 한 끼를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묶고, 좀비 세상으로 달려 나가는 하다를 따라서 오늘(내게 주어지는 하루)도 열심히 달리고 싶다. 힘껏 달리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둘러본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이냐고.’라며 기분 좋은 눈물을 흐를지도 모를 일이다.
절망적인 세상을 탓하는 대신 함께 버티기 위해(살기 위해) 오늘도 운동화 끈을 단디 묶고 뛸 수많은 하다를 응원한다. 가장 사귀고 싶은 친구가 하다라는 김혜정 작가의 말을 빌려, 하다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다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 아닐 거라는 알아서 걱정도 된다. 하지만 마당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하다이기에, 까칠하면서도 능숙하게 제 곁을 기꺼이 우리에게 나눠줄 것이다. 하다는 사랑과 연대를 아는 단단한 소녀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래빗홀’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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