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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물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4년 6월
평점 :
가장 어두운 물은 현천강이 아닐지도 몰라. (물속은 아무리 어두워도 보이거든)
: 전건우 장편소설, 『어두운 물』(앤드)
오싹함과 뭔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쫓기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기며, 두려움과 불안감과 같은 감정들을 즐기면서 읽었다. 문장이 명확하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빠르게 읽혔다. 빠르게 넘기는 페이지가 아까워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금방 페이지를 넘겼다. 정말 재밌고, 오싹했고 서늘한 바람이(서늘한 기운일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을 감싸 안았던 것 같다. 전건우 작가님이 왜 호러 소설의 대가(장인)인지 알 수 있었고,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소용돌이』는 물론 앞으로 작가님 작품을 애정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르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현천강과 수귀를 중심으로 『어두운 물』은 아주 무서운 속도로 읽는 독자를 빨아들인다. 가만히 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물이 나를 빨아 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꼭 그 말이 이 소설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현천강에 수귀가 있다는 익명의 제보 전화 한 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강에 수귀라니. 강도 얼마나 어두우면 '어두운 물'로 불릴까. 시청자들의 관심과 언론의 입김이 더해지면 시청률은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기에 제작팀에서는 프로그램 한 편으로 만들기 아주 좋은 소재이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 물고 뜯는 걸 즐길 수 있는 자극적인 주제가 아닌가. 제작팀은 무당과 교수 등 전문가를 섭외하고, 촬영 할 준비를 하고 현천강으로 향한다. 현천강에서 무당이 담긴 컷을 촬영할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다. ‘어두운 물’이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현천강을 아주 검고 어두운 기운을 뿜는다. 제작팀 입장에서는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관심이 가장 큰 목적일 뿐, 수귀가 실제로 있다고 믿지 않는다. 세상에서 이유를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인간의 개입으로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들 같은. 하지만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민시현’이다. 민시현은 막내 작가로 선배들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가며, 나름 빠릿하게 움직이며 일한다. 민시현은 '남들이 믿지 않을 비밀'이 있다. 바로, ‘사이코메트리’! 그녀는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에 깃든 상황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할 때 볼 수 있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좋지 않은 장면을 앞뒤 맥락없이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불편한 능력이다. 그녀의 능력이 현천강, 현천마을의 비밀을 풀게 되는 계기는 물론, 열쇠가 된다. 민시현이 현천강에서 바람에 날려 자신에게 떨어진 ‘댕기’를 줍고, 마침 찾아온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흰 소복을 입은 여성이 살해되는 장면과 시체를 건져 올리라는 남성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소설은 보다 흥미로워지고, 스토리는 점점 깊어진다. 현천강에서 촬영하면서 서늘한 기운은 물론 이상한 일들이 자꾸 발생하더니 결국 제작팀 중 작가 '전수라'가 시체로 발견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수라의 죽음, 전수라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이들, 시체를 작은방에 두고 다른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에 퉁퉁-, 문을 두들기던 수귀.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단순히 현천강과 수귀로 시청률 대박을 노리려고 시작했던 이번 편은 점점 심연으로 빠진다. 수귀는 실제로 존재했고, 원한이 깊은 수귀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등 알아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찾고, 퍼즐 조각 맞추듯 상황을 정리하면서 드러나는 현천마을의 비밀, 현천강의 비밀은 충격적이다. 누군가(소설에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현천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제멋대로 부리고, 짙고 비릿한 피의 냄새를 풍긴 채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원한이 깊어 복수로 물들어 버린 수귀보다 더 잔인하고 악한 존재가 인간이구나, 가장 어두운 물은 현천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구나, ‘물속은 아무리 어두워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결코 그러지 못한다고, 그리하여 그런 마음이 귀신도 만들어 내고 저주도 만들어 낸다’(279쪽)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즐거웠고, '그 즐거움이 독자에게는 오싹한 두려움으로 잘 변환되어 전해지길 바란다'라고 했다. 작가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오싹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으니. 수귀가 문을 두드리는 장면에서는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누가 두드릴 것 같았고, 누군가 낫을 들고 쫓아오는 장면에서는 민시현이 되어 살기 위해 열심히 달렸고 피할 수 없을 때는 공포와 더불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누가 나를 지켜보면서 잔인하고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팔과 다리에 소름이 오도돋, 돋고 목뒤는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부적 수세미를 근처에 두고, 서늘한 바람이 나를 스칠 때는 수세미를 만졌다. 호러 소설을 완벽하게 즐겼다. 내가 한발 앞서 예상한 부분이 맞으면 스토리 전개가 더 극적으로 다가왔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힘이 빠졌다. 뭔가 꽉 쥐고 있다가 놓는 느낌이랄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몰아쉬자, '살았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현천강의 비밀을 알아냈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물’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이 기분이 씁쓸하고도 비릿했다. 그 누구도 ‘어두운 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내 안에 물이 고여 탁해지지 않도록 '비우는 것'을 배우고 반복하며, 수시로 들여다봐야겠다고 느꼈다. 낫을 든 피 비릿내가 진동하는-수귀보다 더 악한-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호러 소설의 즐거움은 물론, 책장을 덮고 나서는 깨달음과 더불어 ‘인간과 삶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어두운 물』은 호러 소설을 빙자한 삶의 깊이를 ‘어두운 물’에 비유하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지 않을까. 우리가 봐야 하는 진실,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드러나는 진실, 어둠으로 절대 가릴 수 없는 진실. 물속은 아무리 어두워도 보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게 새삼 두렵고, 내 마음을 나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두운 물’이 있을까, 그 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작가의 말>을 인상 깊게 읽었다. 장르 소설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지고, 진솔해서 좋았다. 전건우 작가님 작품을 찾아 읽고, 앞으로 나올 작품도 읽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님이 계속, 쓰고 또 쓰길 바란다. 독자로서 호러 소설의 장인을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어두운 물』과 같은 '깊이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영광을 가능하다면-, 계속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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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소설 장면에서는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명장면 탄생하겠다!', 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곡성>과 <파묘>의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영화로 제작된다면, 여러 번 볼 것 같다. 영화 <파묘>와의 첫만남을 잊지 못해 여러 번 본 것처럼.
◎ 전건우 작가님! 『어두운 물』 너무 잘 읽었습니다. 호러 소설의 장인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최고의 글이었습니다.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소용돌이』를 찾아 읽어볼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호러 소설에 열광하는 저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많이 써주세요! 감사히, 즐겁게 읽겠습니다:D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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