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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평점 :
존재의
증거를 찾아서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동유럽 작가로,
때때로
밀란 쿤데라에 비견된다.
그녀의
대표작인,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2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
소설가 신경숙,
김연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명사들도 이 책을 권유했고,
많은
매체에서 다루기도 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헝가리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세계 대전 중의 헝가리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야기
역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깊이 드러난다고 전해진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3부
연작 구성이다.
1986년
발표한 ‘비밀노트
Le
Grand Cahier’, 1988년에
발표한 ‘타인의
증거 Le
Preuve’, 1991년에
발표한 ‘50년간의
고독 Le
Troisieme Mensonge’ 세
편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계획적으로 의도하지 않고,
독립된
소설들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며,
완결된
장편의 모습을 구성한다.
소설은
쌍둥이 형제,
‘루카스
(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1부
'비밀
노트'는
쌍둥이 형제가 엄마의 손에 의해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 맡겨지며 이야기가 벌어진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견딜 수 있는 갖가지 훈련을 하면서 그들끼리 글을 쓴다.
어느
날 찾아온 아버지가 국경을 넘으려하자,
이를
도와주면서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고 루카스는 할머니의 곁에 남게 된다.
2부
'타인의
증거'는
할머니 집에 혼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야스민’을
도와주고,
그의
아들 ‘마티아스’와
함께 산다.
‘빅토르’,
‘페테르’,
‘조제프’를
친구로 사귀게 되고,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루카스의 삶과 함께 그려진다.
소설
말미,
전쟁이
끝나자 루카스가 떠난 마을에 클라우스가 그를 찾으러 마을에 돌아온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클라우스(Claus)를
보며,
루카스가
아닌지 의심한다.
3부
'50년간의
고독'는
클라우스를 그리워하던 루카스는 드디어 그와 재회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더불어,
클라우스(Claus)의
정체도 밝혀진다.
쌍둥이는
어렵게 만나지만,
클라우스(Klaus)는
루카스를 단호하게 부인한다.
이와
더불어 클라우스(Klaus)의
시선으로 1,2부
이야기를 부정하는 듯한 가족과 주변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3부까지
읽게 되면,
독자들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소설을 되새기게 된다.
이
소설의 의문점은 ‘인간
실존 문제’에
접근해 풀어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소설의
특징인 ‘허구’라는
측면을 먼저 짚어보자.
3부
‘50년간의
고독’은
마치 1,2부의
허구를 뒤집는 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원제는 ‘Le
Troisieme Mensonge’로
직역하자면 ‘세번째
거짓말’이다.
결국,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독자는
세 개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는,
소설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구조라 볼 수 있다.
소설은
결국,
‘허구’에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는 셈이다.
허구와
진실에 혼란을 주면서,
소설이
가진 특성을 생각하게 하며 배경이 된 전쟁이라는 현실을 반추하게 한다.
살인,
근친상간,
S-M, 성적유린,
위악적인
인간의 모습이 자주 서술되는 것도,
현실
같은 거짓말,
거짓말
같은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데 그 역할을 한다.
이렇듯
작품은 소설이 지닌 특성을 이야기하며,
‘메타소설’의
형식을 지니게 된다.
1부에서
글쓰기 작법,
다양한
경험과 관찰을 하는 작가의 태도가 은유되기도 한다.
그
후,
작품은
소설이 실존 문제에 어떤 역할을 하는 지 풀이하면서 그 범위를 확장한다.
작품 속 ‘소설’이라는
글쓰기 행위는
‘인간
실존 문제’와
깊이 닿아있다.
이는
구조상에서도 드러난다.
1부에서
쌍둥이들이 글을 쓰고,
2부에서는
마티아스와 빅토르가 글을 쓴다.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p.302)라는
빅토르의 서술을 통해서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글쓰기의 행위로 확인한다.
존재의
증거를 글쓰기로 남기고자 한다.
후에
루카스는 자신의 원고를 클라우스에게 전해주며, "
네가
이걸 끝내도록 해.“(p.487)라는
부탁을 한다.
그래서
1,2부의
이야기는 클라우스가 루카스의 ‘존재의
증거’로
기록한 노트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루카스가 지어낸 허구이기에 빅토르와 마티아스의 존재는 알 수 없게 된다.
게다가
3부에서는
클라우스가 이 모든 것을 서술하게 되면서 이전 내용이 모두 허구일 수 있게 되고,
루카스
뿐만 아니라 클라우스의 존재까지 흔들린다.
작품은
소설 밖에 소설을 덧씌우는 액자소설로 구성된다.
덧씌움이
반복될수록 실존의 문제는 이야기가 갖는 허구 때문에 계속 흔들린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p.394)라는
표현은 작품 속 글을 쓰는 루카스,
클라우스
뿐 아니라 작품 밖 저자의 말이기도 하다.
실존이라는
문제는,
소설
속 ‘인물간의
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작품에는
‘존재는
관계를 통해서 유의미하다’ 라는
주된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
쌍둥이
형제는 “각자
홀로 살아가는 법”(p.257)을
배우기 위해 헤어지지만,
결국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밖에 없다고 깨닫는다.
이는
얼핏 쌍둥이의 분리불안처럼 보이기도 하나,
이보다는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이기도 한 관계를 향한 욕망에 근거한다.
루카스만
찾는 엄마의 모습에서 느끼는 클라우스의 소외감,
장애를
가진 마티아스가 루카스에게서,
루카스가
클라우스에게서,
클라우스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상실감 등이 그러하다.
마티아스,
빅토르,
루카스,
어머니
등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하자,
그들은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한다.
다소
잔혹할 수 있는 서술 속에서 ‘관계
속의 존재’은
죽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소설의
마지막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p.552)라는
클라우스의 독백 역시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관계와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는,
철학자
지젝이 이야기 한 ‘이웃이나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쌍둥이/부부/조부모
및 부모와 자녀 등의 다소 기이할 수 있는 ‘가족’의
모습으로 긴밀한 타자와의 관계를 재현하는데,
모든
존재는 관계와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음을 극화시켜 전달된다.
즉,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가장 큰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펼친다.
참담한
전쟁을 겪은 저자의 부조리한 삶 뿐만 아니라,
인간존재의
의의,
그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실존적 고뇌가 깊이 담겨져 있다.
게다가
‘메타소설’과
‘액자소설’이라는
다층적인 구조 때문에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때론
유머러스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며 흡입력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쌍둥이
형제가 고군분투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무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유럽의
근현대사를 짚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진실과
거짓’이라는
두 가지 모순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증거를 찾아보며,
글쓰기와
소설의 의미를 되짚어 봐도 좋겠다.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p.302)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p.394)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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