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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정재은 지음 / 플레인아카이브 / 2025년 8월
평점 :
📖 정재은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플레인아카데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p.11 "거울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가? 내가 보여주기 싫은 것도 보고야 마는 거울이?"
p.55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 사이를 중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이야기를 만든다는게 가능하긴 할까.
p.69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데 다른 플롯에 대해 눈치채거나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놀랐다. 관객들이 나보다 이야기의 방향을 크게 바라본다는 것도 알았다.
p.75 당분간은 편하고 자유롭게 정기용의 옆에서 그의 일과 그의 말을 지켜보기로 하자.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책을 하지 말자. 오늘 하루도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p.91 야산 배수로 통나무 다리 위에서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에 관한 시를 읊는 모습을 촬영하지 못하다니, 나는 자신을 책망했다.
p.92 그날도 집에 돌아와서 촬영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p.107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났다. 내가 화를 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고통스러웠다.
p.109 솔직히 폭주하는 주인공을 촬영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런 감정 괜찮은 건가.
p.111 이 모든 설정이 작위적이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극영화에서도 이런 과잉된 연출은 관객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p.112 인물 다큐멘터리를 하기에 나는 속이 좁은 편이었다.
p.116 방금 우리가 경험했던 일이 통 현실 같지가 않았다.
p.117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결정한 적 없는 삶의 사건들이 늘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작품의 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관찰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p.130 매 순간 초조했다. 촬영된 푸티지들을 리뷰하면 늘 아쉬웠다. 뭔가 더 있어야 할 텐데 부족해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결핍감을 느꼈다.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p.153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정기용이라는 한 인물의 삶이라는 사건을 한두시간짜리 영화로 박제화하고 봉합해 버렸다는 자책이 있다.
p.163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주인공과 큰 갈등도 겪게 되지만 이처럼 미묘한 불편함도 느끼게 된다.
p.176 다가오는 상황에 여유 있게 응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서서히 깨닫는 중이었다.
p.177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떻게 삶과 말을 압축해 보여주는지에 관심이 간다.
p.207 정기용의 삶이 끝나자 영화도 끝났다. 그런데 그게 영화의 엔딩이라는 게 이상했다.
p.229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들은 여러가지 나와 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창작자들의 내면 갈등을 충분히 설명하는 책이 없는 것이 아쉬웄다. 나는 나의 마음의 갈등을 보여주기로 한다.
이 책은 정재은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며 건축가 정기용을 만나 제작기를 넘어,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에세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 뒤편에서 어떤 고민과 선택이 있었는지, 또 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한 순간들이 감독이 어떻게 기억하고, 글로 이어지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 미처 카메라를 들지 못했던 순간들 아쉬워하고, 이래도 되나 싶은 순간에서의 기억과 윤리의 경계까지 사유하게 만든다. 읽는 내내 정재은 감독의 성찰이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어떤 마음으로 쓴 에세이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처음 일을 할 때 매우 혼란스럽고 다 부족해 보였는데, 정재은 감독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현재는 건축 다큐멘터리 4편이 나왔다고 한다. 단순한 제작기를 넘어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책이기에, 다큐멘터리 감독은 물론 창작의 길 위에 있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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