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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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을 때쯤, 나는 세 가지를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는 나와 같은 MBTI를 가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가진 기질적 특성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현되느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열등한 점이 좋은 방향으로 사회화되지 못하고 극단적일 경우 발생할 사태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반대로 나의 장점이 더 극화된다면 어떤 점이 좋고 부족한 점도 어떠한 식으로 커버하면 좋을지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하나는 나와 MBTI가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나와는 다른 타인에 대해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점이 달라서, 그들의 주된 관점은 무엇이어서 같은 일에 대해 다르게 접근하고 때로는 서로 논쟁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물론 다양한 사회화 과정을 경험한 현실의 인물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전 속 인물들은 캐릭터의 특성을 개성있게 그리기 위해 더 극화된 면이 있기에 어떤 MBTI가 가진 성향을 파악하기 더 좋았다. 마치 조작변인이 완전히 통제된 개념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마지막 하나는 이 책에서 다룬 고전 중, 내가 읽었던 작품은 새롭게 다가와 다시 읽고 싶고,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서 만난 인물해석을 기반으로 인물을 좀 더 면밀하고 꼼꼼히 보게 될 것 같다.

 

내가 처음 MBTI를 만난 건 취준생 시절 진로 검사를 통해서였다. 요즘처럼 MBTI가 일상에 적용되기 전인 무렵이라 주로 기질적 적성과 어울리는 직업을 찾으며 경험했다. 그리고 십년쯤 뒤, 두 번째로 MBTI를 만났다. 그때는 누군가의 가시 돋친 말로 인해 모진 상처를 경험한 뒤였다.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심리지식을 접할 무렵, 다시 MBTI를 만났고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온몸으로 몸부림치던 시절을 넘겼다. 그는 왜 나에게 굳이 그런 말로 상처를 줬고, 나는 그 말에 그토록 비수가 박혀 오랜 세월 털어버리지 못했을까. 이번에 감사한 기회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를 읽으며 해묵은 고민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고전 작품을 분석하며 작가의 깊은 통찰로 입체적인 시각에서 인물들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리고 어떤 사건 속에서 MBTI가 가진 강점과 열등한 점이 어떠한 식으로 발현되어 인물이 지혜롭게 대처하거나 혹은 엉뚱하게 일을 키우는지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일상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되지 않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16가지 유형별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2가지씩 채택해 서술하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각 MBTI 유형마다 4가지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주기능(정체성), 부기능(조력자), 3차기능(놀이), 그리고 열등기능(약점)이다. 4가지 기능에 의해 유형별 사고방식과 언행이 결정되는데 고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어떤 점을 보완하고 강점이 있고, 혹은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은지 생각해볼 수 있는 치트키를 주고 있다. 저자는 작품 분석에 앞서 프롤로그를 통해 심리유형론을 구성하는 밑바탕이 과학이 아닌 철학임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개인의 성격을 진단하는 과학이 아닌,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철학적 길라잡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모든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사람이기에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MBTI를 잘 활용한다면 그 자체가 좋은 세상이지 않을까 한다. 요즘 나와 다른 남과 선을 긋기 위한 방식으로 MBTI를 활용하는 이들이 많아서 안타까웠던 찰나, 정말 좋은 책을 만난 것 같다.

 

어린 두 눈에 비쳤던, 그저 멋지고 완벽해 보였던 이들 또한 나름의 고민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압니다. MBTI는 우리에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라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워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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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만나는 시간 -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앨런 제이콥스 지음, 김성환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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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다.
섬에 사시는 할머니가 손녀 보러 이따금씩 우리집에 오시는 날에는 할머니와 함께 누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시작하는 전래동화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들던 어린 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로 권선징악을 소재로 하는 흥부와 놀부나 광개토대왕과 같은 영웅의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착하거나 의협심이 강한 주인공이 선하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역경을 헤치고 성공하는 행복한 결말을 가지는 이야기이기에 나도 착하고 성실한 어린이가 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그런 시대, 폭력이 당연하고 지배자에 의해 백성들은 통제되는 무서운 시대의 살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치관을 지키며 살던 옛 사람들의 활약은 어린 내게 너무나 매력적이고 닮고 싶었다. 비록 현대적 가치관에서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지라도 분명 시대를 막론한 가치가 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고전을 읽는 일이 앨런 제이콥스의 말처럼 ‘인격의 밀도’를 올리는 일이겠지만, 솔직히 내게 고전은 너무 어렵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막상 완독에 성공했을 때는 남들은 모르는 엄청난 것을 혼자 발견한 것 마냥 신나지만, 완독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지난가을, 고전독서 모임을 통해 오뒷세우스에 도전했었다. 아직 완독하지 못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즈음 고전을 읽어야 하는 가치에 대해 납득할 수밖에 없는 설득을 펼치는 앨런 제이콥스의 저서, <고전을 만나는 시간>을 만났다. <고전을 만나는 시간>을 읽으며, 내가 오뒛세우스를 읽으며 피곤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러나 계속 읽어나가야 하는 두 이유를 모두 찾게 되었다.

앨런은 저서를 통해 ‘과거는 심하게 잘못되었고, 진부하며, 사람들이 극복한 끔찍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람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사이다 발언들을 서슴없이 이어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이 사회는 옛 가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고,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은 무조건 좋은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보 과부하와 사회적 가속화로 인해 눈앞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정보 트리아쥬’ 세상에 갇혀있다고 꼬집는다. 트리아쥬는 전쟁터에서 의료진들이 부상자를 분류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화 비평가 매슈 크로퍼드가 말한 ‘주의력 공공재’가 거의 지켜지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눈앞의 문제에 대해 어떤 역사적 앞뒤 맥락을 생각하기보다는 지나치게 현재의 관점으로만 보는 경향이 상당하다. 책에 나오는 래퍼티의 글처럼 한 시대 앞서 오늘날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옛글도 있다.

p38 “이 책에서는 과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인격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격의 밀도’라는 작가의 표현이 참 와닿는다. 몬다우겐이 말한 “사람들의 삶이 과거와 미래를 더 많이 포괄할 때, 인간의 대역폭은 더 두터워지고 인격 역시 더 견고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감각이 현재에 더 맞춰질수록 그만큼 더 보잘것없어진다”라는 문장을 인용해 그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한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의문이 드는 내용들도 있다.

p88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은 그들이 미국 독립 선언서에서, 그리고 훗날 헌법에서 제시한 이념들이 노예 제도와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최근 남편과 체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부모나 교사에 의한 체벌은 일명 ‘사랑의 매’로 불리는 훈육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못된 훈육방식이고 어떤 식으로든 무력은 폭력이며 아동학대로 간주 된다.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회초리를 맞는 일은 내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당연한 일이었고 어떤 의문도 품지 못했다(물론 비인격적으로 무분별하게 분풀이하듯 아이를 때리는 어른은 제외). 그러나 지금 우리가 훈육할 상황이 온다면,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일에 대해 불과 2~30년 사이에도 가치관과 시각이 달라진다. 즉, 어떤 역사적 문서가 작성되던 그 시기에는 그 때의 핵심 이념들이 결코 당연시 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살던 시대에서는 종전보다 한 걸음 진보한 것이었고 그 자체도 파격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 안에 담겨있는 현재에도 유의미한 가치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p54 “이 책에서 만나는 죽은 이들(철학, 예술가, 사상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산 사람의 피, 즉 우리의 관심이다. 그러니 제발 관심의 피를 너무 아끼려고만 하지 말고, 그들에게 발언권을 줄 수 있는 우리의 권한을 마음껏 사용하자. 만일 그들이 충격을 주거나 비위를 거스른다면 우리는 언제든 그들에 관한 관심을 거두고 그들을 침묵하게 할 수 있다.”

내가 고전을 읽을 때 가지게 되는 마음은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옛 사람들은 어떻게 접근했을까?’이다. 따라서 건강하게 과거와 관계 맺는 법 쳅터는 내게 의미있는 대목이 많았다. ‘현대 독자를 위한 고대의 지혜’라는 <아날로그 아르고스> 시리즈를 출간한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의 경우나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와 같은 책을 예전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서고에서 집어 들고 그 내용을 그대로 흡수했을 것이다. 스토아주의에 대한 현대적 논쟁의 여지를 간과하고서 말이다. 비록 그 시대의 행위들이 현대적 관점에서 비도덕적인 면이 있더라도 그 이면의 가치와 그 당시 시대상을 분석하는 힘이 필요하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현대와 차별해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똑같이 나쁜 건 나쁘다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모순점이 있지만, 어떠한 맥락에서 그러한 주장이나 메시지가 완성되었고, 지금 이 시대에도 이어지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이 작가가 말하는 ‘인격의 밀도’를 높이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주목받지 못한 ‘라비니아’라는 인물이 어슐러 르 권의 <라비니아>와 19세기의 걸작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뒤집어 20세기 걸작으로 재창조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예로 들어 위대한 작품들은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을 쓰는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고전을 열심히 읽으며 새롭게 조명해보고 싶은 인물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이번 독서는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는 방법론을 모색해본 시간이었다.

#미래북살롱5기 #미래의창 #고전을만나는시간 #오래된책에서오늘을사는지혜를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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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전쟁 -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새로운 지정학 전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클라우스 도즈 지음,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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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발생하며 국제사회는 뜨겁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이고, 해마다 난민 관련 문제는 더 급증하며, 우리나라 역시 독도를 두고 일본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또 왜 이러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더 이상 국경이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오늘 차린 밥상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에 살지만, 외국에서 온 재료들로 만든 요리가 한가득이다. 세계화의 여파로 생활 전반과 많은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국경을 넘은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고, 인터넷의 발달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세계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갈수록 국가적 차원의 개입과 힘은 약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전망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휩쓴 전 지구는 다시 국경의 문을 걸어잠글 수밖에 없어졌고,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게 무역업계에 한파가 찾아왔으며, 국경의 이동을 위해서는 2주 혹은 3주간의 격리 조치를 감수해야 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이 예고되었고, 국경에 대한 의미는 한층 더 강화되었다. 물리적인 국경선이 있지만 실제로 살아가며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 그것, 하지만 국경 때문에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 클라우스 도즈의 <국경전쟁>은 많은 것들을 시사하며, 독서 후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에는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정책으로 많은 논란이 양산되기도 했다. 니 땅 내 땅의 문제는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진보해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 문제인가보다. 모두들 치열한 일상을 사느라, 혹은 직접적으로 경험하진 않기에 피부에 와닿지 않을 뿐,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영토문제로 치열한 분쟁 중이다. 우리 국민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민들은 관광이나 비즈니스, 학업 등의 이유로 국경의 이동이 자유롭지만, 생존의 문제가 걸린 난민들은 국경의 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도 늘 잊고 지내지만,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과 맞닿은 동해, 중국과 북한이 인접한 서해에서의 바다 국경선에서는 어민들 간의 치열한 접전이 도사리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이 협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으로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와 어업활동을 하는 이국의 어민들로 인해 우리 어민들이 속앓이를 하고 해경이 고생하는 일이 빈번히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분쟁이 한반도 주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책의 모든 챕터들이 의미있었지만, 그 중에서 ‘수중국경’ 파트와 ‘무인지대’, ‘우주국경’ 파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국경을 만드는 하천, 그리고 연안의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 간의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는 어느 대륙에나 존재하는 일이었고, 인류 공동 유산인 바다에 대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서슴치 않는 지중국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
한반도는 DMZ라는 무인지대가 있다. 그런데 전쟁을 겪은 많은 나라에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무인지대들이 있다. 그리고 남극역시 무인지대의 대표다. 그런데 남극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남극 역시 어업문제를 두고 여러 국가가 대립 중이다. 영리의 목적으로 인해 인류 공동 유산일 뿐 아니라 생명의 유산인 남극이 도전받고 있다.
우주국경 파트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경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도 이렇게 난리인데, 우주라고 다를까. 예전에는 미국 공상영화에서나 나오는 소재라고 생각했지만, 인류의 기술문명 발전 속도를 본다면 머지않은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국경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슬픈 통사이며, 현재도 사라지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아주 큰 진행형 문제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국가가 등장하고 국경이 존재하게 된 것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그 의미가 확장 혹은 국경선 너머의 곳에 대한 도전으로도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우스 도즈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생각의 장을 열어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국경전쟁>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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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단자들 - 서양근대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
스티븐 내들러 지음, 벤 내들러 그림, 이혁주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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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학의 이단자들> 스티븐 내들러 글, 벤 내들러 그림, 창비

평소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식의 허기가 있었다. 채워야 할 것 같단 생각은 있으면서도 왠지 어렵고 낯설게 느껴져 쉽게 접하진 못했는데 서양근대철의 탄생을 만화로 다루어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학습만화는 학창시절 이후론 처음 접한 것 같다. 읽으면서 그리스로마 신화나 한국역사 시리즈를 만화로 보던 때가 생각나 흥미로웠다. 나같은 어른이에게 딱이다 싶었다. 제목에 <철학의 이단자들>인데 왜 이단자라 표현했나 싶었는데 딱 그 표현 그대로다. 근대철학이 형성되기 전 서구사회는 고대철학을 신봉했고 신중심 사회에서 교회에서 하는 말이 진리였기 때문에 현대를 기준으로 보면 매우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 사상들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과학적 질서를 발견하는 근대사상 철학가들은 교황에게 처벌 받거나 자택연금을 당하는 등 이단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단자로 취급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이들 덕분에 근대철학이 탄생하고 의미있는 진리들이 현대사회에도 많은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한다. 어떤 깨우침을 위해선 항상 당연했던 알을 깨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베이컨, 파스칼, 엘리자베스 공주, 홉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아르노, 모오와 콘웨이, 말브랑슈, 로크, 보일, 가상디, 라이프니츠, 뉴턴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17세기는 세상이, 우주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새로운 시각이 제기되었고 다양한 생각이 존재했다. 철학이 가장 빛나던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 시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과학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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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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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북한에 대한 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며 엄청난 숫자의 남북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며 회환의 고통과 피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을 목도할 때면 두 손 모아 통일을 기도하기도 하고 북한 어린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 한민족이란 맘으로 민간구호단체에 물품을 기부하기도 했던 유년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느끼는 북한은 우리 정부의 햇빛 정책을 비롯해 무수한 남한 국민들의 정성과 성의와 우리와 했던 평화약속들을 무시하고 걸핏하면 핵공격 위협을 하겠단 협박을 서슴치 않고 실제로 우리 군인들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뒤통수 천재들이란 인상이 나에게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저들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감사는 커녕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인지, 도리어 우리를 무시하는 행동들이 참 이해가 안 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씨 부자가 3대 째 세습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라고도 할 수 없는 괴상한 체제 독재 속에서도 김정은을 찬양하는 북한주민들 역시 사이비 신도같단 생각이 들어서 정말 한민족이라는 사실은 그들을 이해하기는 너무나 부족한 팩트였다. 그래서 서로 어떤 인류학적 문화차이와 역사의 차이가 이 지경을 만들었을 지 궁금했다. 문화인류학자가 쓴 북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보니 평소 궁금했던 점들이 해소되었다. 우리의 지원을 받는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뻔뻔한 태도를 고수하는 그들의 방식이 어떠한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저자가 오랫동안 실무관으로서 접한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어 단순한 이론이 아니기에 더 와닿고 저자의 노력과 애정이 엿보였다.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너무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한민족이자 이웃이기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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