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펀드 -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권산 지음 / 반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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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의 귀농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정말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맨땅에 펀드'였다. 표지 중앙에 있는 대야를 들고 있는 할머니와 펀드라니..참 이상한 조합이지만 그렇기에 그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나는 이 책의 줄거리보다는 느낀 점을 위주로 말하고 싶다.

정말 농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자의 직업은 미술을 전공한 디자이너이란다. 그런 그가 운명과 같이 지리산 닷컴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그는 별 볼일 없는 도시생활을 접은 후 전남 구례로 터를 옮기면서 좌충우돌 농촌 생활이라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된다. 그런데 귀농생활의 방식이 참 독특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는 말 그대로 펀드를 통해 남의 돈을 가지고 그 돈을 운용해서 맨땅을 임대하고 그 곳의 거주 농민들을 매니저로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참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은 시간 순서에 따라 달라지는 농지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지리산 닷컴' 컨테이너 사무실이 옮겨지는 모습과 임대한 농지를 포크레인으로 정리하는 사진, 또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정리는 되었지만 황량한 농지와 그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보는 내가 걱정이되고 안타까울 정도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사진속 논, 밭들은 새싹을 틔우고 토란대가 쑥 자라나며 탱탱한 청매실로 가득한 사진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김장 김치와의 대란을 치루고 쌀과 김치, 무, 배추, 고구마, 청국장 등을 마지막 배당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대평댁은 수석펀드매니저인데 시골 터줏대감격인 할머니다. 전라남도의 구수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겨 놓아 정말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고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 정확한 데이터도 없지만 오랜 세월 경험으로 체화된 노하우를 전하는데 매우 해학적으로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사람 헛갈리게 하는 게 또 있는데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저자 외에 또 다른 귀촌인인 전직 프리랜스 프로그래머 출신이면서 이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조연급 주연을 맡고 있는 '무얼까?'이다. 보수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만 늘 부지런히 책 속에 등장한다. 잘못 구매한 스프링클러용 호스로 펀드 자금을 축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모든 것은 해피앤딩이다.

제 철에 심고 난 농작물들은 펀드 투자자들에게 배당문과 함께 실물이 발송되는데 그 때의 그 감격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의 펀드운용 대차대조표는 그리 감격스럽지 못하다. 수입과 지출이 거의 같은데 그 중에 그들의 인건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타적 투자의 지속성'이라는 다소 무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땅이 주는 보람과 그 대가로 얻는 정직한 소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이일을 2013년에는 투자자를 늘려 계획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무모한 맨땅의 펀드가 직접적으로 농민들을 위하고 소비자들을 위한 실험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매우 가치 있는 도전이며 바람직한 가치추구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귀농에 대한 마음도 더욱 강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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