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표현들은 아디에서 건지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오늘로써 그마저 놔버린 셈이었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밑바닥에 누웠으니 사람 ‘꼴‘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사는 데 필요한 일을 할 필요도없었다. 이 사실을 몸만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위장 속에선 늑대가 하울링을 하고, 방광은 수도꼭지를 열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후자를 해결하러 정자 밖으로 나갔다.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문장들...어떻게 이런 단어들을 찾아내었을까!
하늑대며 걷는 꼴을 지켜봤다.여틈한 저녁 그림자가 덮히고 있었다.크고 작은 바위들이 발을 거는 험로이기도 했다.골짜기의 밤은 소나기처럼 온다.
옳은 말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다만 어떤 유의 인간은 알면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할 상황에서마저그렇다. 내가 바로 그 교본이었다.
문을 향해 발을 떼기 직전, 나는 인류가 저질러온 가장 전통적인 바보짓,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을 돌아보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흔히들 ‘오지랖‘ 이라 부르는 저주에 걸려든 순간이었다.
가정불화가 있거나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야단을 치는 등 부정를 계속 유발시키면 그 아이는 한마디로 바보가 됩니다. 우리나고 이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입관 때문이죠. ‘성적이나 공부는 머리만 좋으면 돼. 감정과는 상관없어‘ ‘공부는 재미없는 게야. 어차피 참고 해야 돼‘ 아이를 그냥 놔두면 공부를 안 할 것 같으니까 강제로라도 시켜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그러면 아이는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집중력도 저하되고, 문제풀이 능력도 저하됩니다. 아무리 머리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라 해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돼서 분노, 공포, 증오심, 두려움, 짜증을 느끼면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