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심
고은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시작은 작은 오해였다.
“1930년, 여자는 죽었다.”
첫문장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을 놓친채로 수십장을 읽으며 은휘를 오해했다.

남편에겐 수면제를 먹이고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여자. 그 대가로 돈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여자. 남편을 대하는 태도와 내연남을 상대하는 말투가 극과 극을 오갈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뭐 이런 여자가 다있지?”

 

사랑은 커녕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그녀였지만 애초부터 이런 성품은 아니었다. 은휘였다가, ‘아가페’였다가, ‘연심’이었다가, 다시 은휘로 돌아오기까지 짧았지만 굴곡진 여정이 시대만큼 애처로웠다.


"연애 시절, 재우는 여주인공의 독백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며 찬사에 찬사를 늘어 놓았었다. 어쩌면 저렇게 처연하고 안쓰러운 데도 아름다울 수가 있어요?
 ...
그 독백, 직접 목구멍에 태워보니 아름답지 않았다. 독백의 독자는 독이 아니라 마시면 죽어버리는 독인가.
무대에서나 아름답지. "

 

달콤한 연애가 전부였던 시절, 영원히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관람하던 연극 속 여인같은 삶을 살게 될 줄이야.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길이다.

 

관계는 주고 받는거라 했던가.
그럼 꼬이고 꼬인 그녀의 남자 관계는 그녀 탓인건가. 제 아내가 짙은 화장에, 독한 향수, 화려한 옷을 하고 나가는데, 밤에 나갔다가 아침에 들어오며 돈을 쥐고 오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어쩜 이리 무심할 수 있지? 도대체 생각이란게 있는 사람인걸까??

 

 

“뭐 이런 남자가 다있어!!”

 

지금은 회복불능상태인 관계지만, 이들에게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붉은 자욱이 남을 것만 같았던, 열렬하게 서로를 사랑하던 연애 시절이 있었다. 은휘는 그를 너무 사랑해 조건 좋은 남자를 차버리고,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두고 집을 나와 살림까지 차렸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무채색이 되는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늘어져버린 두 사람의 화음은 무언가 맞지 않았다.
사랑을 맹신하고 목숨을 걸었던 일들이 우습게만 느껴지는 시간은 정말 문득이었다."

 

남편의 태도에 살짝 꼭지가 돌려고 할 때 즈음 남편인 재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국 신문사에서 일한 덕분에 자유롭게 세계 평화와 정세, 민주 정치를 논할 수 있었던 재우와 동료들은 일본 순사에게 “사회주의 혁명가”란 이유로 잡혀가 모진 고초를 당하게 되고, 결국 여섯 중 둘이 죽고 재우는 숨만 붙은 핏덩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사고가 아닌 고의로 육체와 정신을 말살시키는  모진 고초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도 살아남은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인지. 평생을 옳다고 생각했던, 믿었던 신념이 나를 죽음으로 내몰 때 느껴지는 배신감과 혼란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공포는 또 얼마나 큰지. 전쟁조차 겪어본 적 없는 난 짐작조차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저 재우의 곁을 어렵게 지키는 은휘를 통해 건너고 건너서 어렴풋이 느껴볼 수밖에 없었지만 은휘의 고통도 내겐 버거웠다.

 

과거를 붙잡아 보려는 그녀의 노력이 어리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한 때를 그리워한다. 더군다나 각박한 현실 속에서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어쩌겠는가. 그게 그녀가 살 수 있는 길인 것을. 

 

그러니 남을 보고 “왜 저렇게 밖에 못하고 살까.” 판단하지 말자. 훈수에도 상도가 있은 법. 남의 집 제삿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건 예의가 아니다. 모두의 삶엔 저마다의 십자가가 있고 말로 다 풀어놓을 수 없는 곡절이 셀 수 없이 많은 법이니까.

 

 


+
상황과 감정이 모두 글로 적혀있어 독자가 파고 들 공간이 없었다. But, 첫 술에 어찌 배부르랴. 쓸수록 여유가 생기겠지. :)
어쨌든 아쉬움보단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싶단 마음이 더 크게 남는다.

 

이상의 《날개》데칼코마니 버전(?) 느낌이 짙은데 작가의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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