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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를 것이다 -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태규 지음, 김덕기 그림 / 마음서재 / 2017년 11월
평점 :

소설가이자 국어 교사였던 이 책의 저자는 지금 루게릭병으로 7년째 투병 중이다. 루게릭병은 다른 말로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라 부르며, 이 병은 근육이 사라지고 척수 신경 다발이 굳으면서 온몸이 마비되어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는 희귀병, 난치병이다. 처음에는 디스크와 협착증으로 오진되어 수술까지 받았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고 1년을 그렇게 이병원 저 병원 떠도는 동안 루게릭병은 소리 없이 다가와 있었다.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곧 죽을 거라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하지만 루게릭병은 의식도, 감정도, 지식도, 심지어 간지러움도 그대로 느끼는데 근육만 말썽이다. 근육이 사라져 몸을 움직이지 못해 죽어가는 병이다. 겉으로 보기엔 서서히 죽어가는 것 같지만 죽는 순간까지 또렷한 의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평정심을 유지해보려 애써보자. 그래야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감히 내 병을 완치시켜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었다. 단지 내가 구상하고 있던 소설만큼은 완성하고 싶었다. 그만큼의 시간만 허락해달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아침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삶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옷을 입고 밥을 떠먹는 삶은 아니지만, 새로운 질서 속에서 내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 삶은 이제 근육을 움직여 사는 삶은 아닐 것이다.
노루귀, 괭이눈, 복수초여! 근육이 없는 저 꽃들의 삶을 어찌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현재 호흡기에 의지한 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꺼풀로 세상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에는 투병 이야기(1부)를 비롯해 그의 단편 소설(2부)과 에세이(3부) 글 몇 편이 더 담겨 있는데, 다행인 건 뒷장으로 갈수록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투병 이야기가 직설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1부와 달리 2부에선 우회하고, 3부에선 다루지 않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가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한 글이 가
진 힘이 아닐까.)
루게릭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이 책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아내와 두 아이에게 남기는 유산이 될 책을 읽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때문에 이 책을 덜컥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겐 꼭 읽어보라 쥐여주고 싶다. 특히 "아내"인 여자에게. "남편"인 남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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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속 서문에 있는 글을 읽다 보니 저자가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도 루게릭병을 앓았는데 같은 병을 앓았다는 것 말고 아래 내용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은밀한 기적》에서는 한 작가가 나치에 의해 부당하게 감금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형 집행 전날 밤, 그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작업 중인 희곡을 마무리하기 위해 1년의 시간만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한다. 그날 밤 그는 기도가 이루어지는 꿈을 꾼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는 음울하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총살 집행대 앞으로 끌려나간다. 그가 네 명의 병사 앞에 서자, "굵은 빗방울 하나가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뺨으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부사관이 큰 소리로 최종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갑자기 기적과도 같이 세상이 멈춘다.
“총이 일제히 그를 향했으나, 총을 쏴야 할 병사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사관은 어정쩡한 자세로 영원히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바람도 멎어버렸다. 그는 소리를 질러보려고 애썼다. 한마디라도 내뱉어보려고, 손이라도 틀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도중에 멈춰버린 말 한 마디조차, 아주 자그마하게 웅얼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추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1년을 신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전능한 신은 그에게 1년을 허락했다. 신은 그에게 비밀스러운 기적을 베풀었다. 결국 그는 신이 예정한 시간에 독일 병사의 총알을 맞고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발사 명령과 라이플총의 발사 사이에 1년의 세월이 그의 마음속에 흐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