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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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만해도 88만 원 세대란 말이 유행이었는데 어느새 88년 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혹독한 신입 환영회를 치르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조금 다른 모양의 버거움을 안고 있는 서른둥이들. 공감 가는 글이 많았다. 사실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서른 전후 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서른의 반격》속 주인공인 지혜는 아카데미 회사의 인턴이었다가 다소 씁쓸하게 정규직이 되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날 어시스트할 아르바이트생을 뽑은 일이 있다. 화려한 이력서를 보고 어리벙벙해있는 날 위해 과장님이 준 팁은 바로 “나이 많고, 학벌 좋은 사람부터 잘라."였다. 실제로 은행이란 이유 하나로 서울대 박사나 명문대생들이 백 명 가까이 지원해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서른의 반격》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시스트를 할 보조를 뽑는 과정에서 소설 속 이름도 없는 ‘또 다른 그녀’는 모자람이 없는 이력이 모자람이 되어 결국 직장을 얻지 못한다.

돌아보면 나의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카멜레온 같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도록 학습되어 주어지는 일들을 소리 없이 해냈고, 사회생활을 위해 퇴근해선 보지도 않던 TV와 연예 뉴스를 일부러 챙겨 보았다. 여의도의 수많은 인파 속에 묻히기 위해 그들과 같은 무채색 정장을 입고 LV나 G 로고가 빼곡하게 박힌 가방을 들고 다니며 야근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처음 학교가 생겼던 게 업무를 순종적으로 해내기 위한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서였다던데 그러고 보면 난 정말 학교가 적당히 잘 찍어낸 인형이었던 것 같다. 

"얼마 후 나는 출석부에 내 이름이 ‘김지혜(다)’라고 쓰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때로 그건 나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강아지, 고양이 같은 일반 명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좀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

 

우리 모두는 결국 지혜가 되도록 길들여져 자랐다. 내 삶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을 바꾸는 건 이미 삼십 년이나 인생을 살아버린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 지혜와 무리들은 세상을 바꾸려 한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세상에 휘둘리기만 하던 약자였던 이들이 모여 사회를 향해 반격을 시도해보지만 역시나 시원한 어퍼컷은 불가능했다.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을 희망하는 청춘들은 패기 넘쳤지만 미숙했고, 어설펐지만 당당한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뒷맛은 여지없이 씁쓸했다.

그들이 그토록 응징하고 싶어 했던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형체를 한 사회는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것이었고 그저 그런 비슷한 하루살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와 좌절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나름대로 악한 세상에 소소하게나마 한 방 먹여보자는 원대한 꿈을 안고는 있었지만 역시.. 피해는 약자들의 몫이었다. 


세상도 사람도 모두 문제투성이인 시대이다. 무엇부터 고쳐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내가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대답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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