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깊은 곳
고은.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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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시를 읽고 책을 보다 문득 이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고은 시인은 ‘그 꽃’ 속에선 목적지만 보고 내달린 과거를 반성하고, ‘노를 젓다가’에서는 노를 놓치고서야 그러니까 자아가 흔들릴만큼의 위기가 닥쳐오고 나서야 큰 물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살면서 겪어온 자신의 과오를 수면 위로 끄집어올려 다른 이가 볼 수 있게 전시한다. 문학을 온 몸으로 살아낸다면 이런 모습일까.

 

<고은 깊은 곳> 또한 같은 맥락을 잇고 있다.


그의 유년기를 관통한 한국 전쟁 이야기부터 감옥살이도 모자라 고문으로 청력을 앗아간 유신정권 시절의 이야기까지 그의 삶은 고통 투성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동족을 향한 보복, 살육은 그의 정신에 상채기를 남겼다.

 

살아남은 이 모두에게 비슷한 상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나니 어르신들이 그냥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바스라지고 바람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연약함,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생기를 어딘가에 품고 있을 노인. 그런 어른들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는 까닭은 우리도 그 뒤를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은 숱한 죽음을 밀치고 살아남았지만 죽음이란 녀석은 결국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도 수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수에 그쳤고 지금은 시로 아픔을 토해내고 있다. 죽음으로 삶을 대변하려는 이에게 시인은 말한다.

 

“죽음을 놔두게. 그것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게. 사는 일의 허망을 죽음으로 메우지 말게. 죽음을 신성한 삶의 결론으로 삼게.”

 

내일이 없으면 좋겠단 생각이 연거푸 드는 요즘이었는데 고은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불길이 인다. 그간 살면서 내가 밀치고 제쳐온 이들에게 진 삶의 빚을 갚고 눈을 감을 수 있길 바라본다.

 

 

+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노를 젓다가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보았다.


한자, 일어, 한글을 동시에 알아야 했던 시대를 산 작가의 삶과 글을 보는 시선이 궁금하다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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