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다른 세상,
그것은 이 세상 안에 존재한다.
-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언제부터일까. 대물림된 증오심, 적대감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무슨 악연인지 내 생각엔 우리나라가 일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게 학자들의 눈에 하나둘 띄기 시작하면서 일본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다.

몇 달 전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에도 살던 곳을 떠나 온천지로 도망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 출발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당시 내가 든 기분은 그저 갓 태어난 아기보다 낯설고, 두렵고, 어렵겠구나.. 정도의 막막함이었다. 그럼 이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일본만의 현상으로 봐도 되는 건지, 우린, 우리나라는 안심해도 되는 건지 말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게.. 누구에게라도 괜찮을 거란 말이 듣고 싶을 정도이다.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가출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본에 삼십여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일본만큼 '증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없다.

무엇이든 처리해주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가즈후미 사장은 1970년 어느 날 아침에 증발해버렸고 그는 사망자로 처리되어 있다. 《인간증발》은 이렇게 증발된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가족, 단 한 명이었지만 돌아온 사람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기 전, 버블경제 시기에 일본 서민들은 여기저기 대부 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대부 업체들은 야쿠자와 손을 잡고 연 100%가 넘는 과도한 이자를 받아 챙겼다. 빚에 허덕이던 많은 사람들이 야반도주를 택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그 수가 매년 12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증발된 사람들을 다른 말로 하자면 '점진적 자살자'가 적당할 것 같다. 그동안의 삶, 자아를 버린 그들은 이미 한번 자살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누구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고, 죽어서도 발견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서서히 자살 중인 사람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떠나온 이유처럼 떠날 수 없는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하다. 이들은 가족에게 준 상처와 짐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책임질 능력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들이다. 무책임하기도 하다. 딱 주는 만큼 받는 게 일본 사회의 풍토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회도 이들을 무시한다. 이렇게 실종자가 많은데도 실종자를 찾거나 도움을 주는 비영리 단체가 없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수도 안에 침묵한 도시, 유령 같은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에서 증발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산야는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곳이다.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거리는 소굴로 알려진 이곳은 정부는 지도에서 지워버렸지만 아직 존재하고 있다. 미나미 센주 지하철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지하에 산야 도시가 모습을 나타낸다. (사실, 증발된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곳 한 곳 만이 아니다.)

무책임한 막장 인생을 사는 모습에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어쩐지 무책임하단 생각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쩌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고 있단 느낌, 형벌을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줄 도움이든, 조언이든, 위로든 그 무엇도 이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는 현실이 어쩐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져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사는 세상을 사회라 부르는 만큼 우린 혼자가 아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늘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약자여도, 돈이 부족해도 적절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높은 목표치를 잡고 함께 달려야 한다. 다른 거 다 닮아도 이건 닮지 말았으면 싶은 내 마지노선은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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