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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현대의 우리는 다양한 시대의 음악을 조합해서 연주할 수 있다. 17세기 바흐부터 20세기 쇼스타코비치까지, 3백년에 걸친 선인들의 유산을
연주할 수 있다."
천재가 천지에
널린 음악 세계에 제대로 된 스펙 한 줄 없는 지원서와 작고한 스승의 추천서를 들고 나타난 가자마 진. 그럴싸한 학벌도, 단 한번의 수상 내역도 없는 이 소년은 단 두번의 콩쿠르로
대중들에게는 '유랑하는 음악가, 꿀벌왕자',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의 신'이란 별명을 얻는다.(진은 꽃을 따라 이동하는 양봉가의
아들이었다.)
그의 연주를 들은
심사위원들은 경이롭다며 극찬하는 쪽과 외설적이라며 경멸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갈린채 설전을 벌이지만, 심사위원들은 진의 연주를 다시 듣고 싶어하고
진처럼 연주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못한다. 세상의 엄한 잣대에도 불구하고 정장은 커녕 흙뭍은 손으로 콩쿠르에 등장한 가자마 진은 순수 그
자체이다.
"후세에 남는 곡에는 저마다 곡이 갖고 있는 분명한 필연성이 있어.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설득력없는 피아니스트가 나쁜거야."
엄마를 잃고
피아노를 쳐야 할 이유를 상실해 '사라진 천재 소녀'가 된 에이덴 아야.
잔잔한 파도같은 우아한 연주로 대중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악의에 찬 비아냥을 흔적도 없이 쓸어내버린 무서운 실력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피아노가 간절하지 않다. 오히려 음악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마저 여유로운 천재 소녀.
'줄리어드의 왕자'로 불리며 어려서부터 피아노
천재로 불리고 스승도 잘 만난 운좋은 엄친아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모순되고 상반된 요소마저 자연스럽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도량을 가진 연주자로 그의 소리는 싱그러우면서도 원숙하다.
악기회사에서 일하며 아내와 아이를 위해 접어두었던 자신의 꿈을 위해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본
다카시마 아카시. 그 외에도 여러명의 쟁쟁한 IH급 경쟁자들이 콩쿠르를 거쳐간다. (IH급이란 '이'런데 왜 나왔나 싶도록 '한'없이 잘 치는
초절기교를 가진 레벨을 말한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가 들어도 IH타입인 이들은 이미 경쟁을 넘어선 그들만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그저 모인 곳의 이름이 "콩쿠르"일 뿐. 콩쿠르가 진행될 수록 가자마 진의 진가가 폭발적으로 발휘되면서 청중(대중, 심사위원,
참가자들)들 마음 속에 음악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음악의 신"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진가가 발휘되면서 콩쿠르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이들을 비교하는 부조리한 콩쿠르지만
참가자들 나름의 곡 해석과 자작 카덴차를 엿보는 행운은 재현성이나 희소성면에서 볼 때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고 잔인하지만,,
콩쿠르는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꿀벌과 천둥》의 줄거리는 딱 열자로 줄일 수 있다. '콩쿠르가 진행되는
과정'. 등장인물도 참가자들과 심사위원이 전부이다. 한정된 장소와 인물로 주변을 최대한 압축시켜 음악을 깊고 넓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글로 (행위(ex.춤)를) 배웠어요."란 우스갯소리가 한참 유행이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며 음악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육백페이지 넘는 책이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높아 두께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두꺼운 책을 읽었다 자랑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추천해도 될만큼.)
두께가 주는 편견과 클래식이 주는 난해함을 우아하게 격파해낸 작가의 수려한 글솜씨와 번역 덕분에
책을 청각으로 읽는 낯설고 신선한 경험을 맞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백 명밖에 연주하지 않는 악기로 1등을 해봤자 시시하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들
훌륭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더 훌륭해지고 싶다고 몸부림치며 자기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상에서 한 줌의 빛을 받는 음악가의 위대함이 더욱
두드러지는거야. 그 뒤에 좌절한 음악가들이 수없기 많은 걸 알기 때문에 음악은 더욱 아름다워."
+
수십개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붙이다 나중에 찾고 싶은 문장을 찾을 수 없을 거 같아 노트에 정리한 것만 3장인데,, 스포일러가 될거 같아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 아쉽다. 아쉬운대로 《꿀벌과 천둥》을 읽던 중 가장 좋았던 곡으로 마무으리.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
조성진의 연주를 듣고 감탄했고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고 숨이 멎었다.
조성진의 영웅 https://youtu.be/d3IKMiv8AHw
호로비츠의 영웅 http://blog.naver.com/paulrhe/80128003398
제목처럼 벌꿀의 날개짓 소리와 천둥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반전이 강렬한 곡:
쇼팽 발라드 2번 https://www.youtube.com/watch?v=2l9Wpg_y45g
라 발스 https://youtu.be/TMSgWhIEN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