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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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표지에 농담이란 제목을 보곤 고급스럽지만 조금은 웃을 수 있는 유의 농담을 예상했다. (내가 놓친건가?) 앞 부분의 아테네로 여행온 동상이몽인 작가의 가족 이야기 말곤 그리 웃기지 않았다.

이건 내 생각이고, 저자에겐 이 책의 내용 자체가 정말 농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유발 하라리와 친구라니 어쩐지 둘에게 이 정도(?) 세계사는 차 한잔에 곁들이는 농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는 객관적 진실을 붙잡는 학문이 아니다.  역사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관점으로 정리된 결과이다. 사실로 가득한 한 무더기의 서류철보다 동화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응축되어 있을 때도 있다."

 

사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역사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발견된 증거를 토대로 이러 저러한 설을 풀어놓고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걸 우린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오로지 진실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그 진실은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창조주 외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일단 믿고 들어볼 수 밖에. ;)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도 아니라고 하고, 시작부터 사담을 풀어놓아 '표지만 그럴싸한거 아냐?'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우려와 달리 저자는 꽤 그럴싸한 농담을 시종일관 풀어놓는다. 역사나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대세로 인정받고 있는 주장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기에 "헐, 왜이래!?" 싶은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세계사와는 다른 차원의 책이다.

 

"로마가 멸망한 공식 연도는 476년이다.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물러났을 때 지금처럼 '속보!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폐위'와 같은 식으로 전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변화는 물 흐르듯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났다. 인기 많은 공공 온천장의 질적 수준과 서비스가 떨어져 가고, 원형투기장에서 재미삼아 사람을 맹수 앞에 던져 놓는 일도 점점 사라져 갔다. 로마는 그렇게 몰락해갔다."

 

이름이 붙여진 사건, 사건이 일어난 날짜, 사건을 일으킨 인물 등 왠지 외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드는 편집은 찾아볼 수 없다. 사건을 일차적으로 서술하는 구성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책은 그림도, 연표도, 지도도 없이 우아하게 읽어야 한다고 자찬하고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럴만 한 책이었다.

 

 


"1364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매시간 종소리를 울리는 시계탑이 처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로 인해 훗날 약속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고 남의 지시에 얽매이는 삶이 펼처지리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14세기 유럽에 불어닥친 흑사병도 여기 저기 돌연 죽음이 등장하고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지면서 유럽인들의 영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죽음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힘이 유럽인들에게 민주주의적 각성이란 체험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당시 그려진 그로테스크하고 흥겨운 '죽음의 춤(미하엘 볼게무트 作)'을 증거로 제시하는데 친구라는 유발 하라리는 중세엔 이런 깨달음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18세기나 되서야 인류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수준(지적)에 도달했다 말했다. 누가 맞고 틀리고보다 둘의 농담이 배틀까지 이어지면 참 재밌겠단 생각이 드는건 나뿐일까.

인쇄기 역시 폭발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생각의 폭발이었다. 자유자재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활자 덕분에 전해지는 고문서를 경건하게 옮겨 베끼는 일은 과거가 되었다. 단어와 문장을 무궁무진하게 조합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주장과 반대 의견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기도 쉬워지면서 대중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는 읽고 있음 또한 이 덕분이니 역사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분야에 <코스모스>가 있다면 역사엔 <사피엔스>가 있다. 둘의 유일하면서 공통된 흠이 있다면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는 두께가 아닐까. <사피엔스>가 두꺼워서 읽기를 포기했다거나, <코스모스> 문체로 역사를 느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쨌든 교양 가득한 역사철학서임은 분명하다. ★★★


+
드물게 뒤로 갈수록 글이 좋아지는 책 +_+
경쟁이 치열한 우리집 책장에 입성.
저자가 유명한 분이라는데 처음 들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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