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한 인문학
이봉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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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내용을 책으로 엮을 만큼 내용이 ..  있을까?" 싶은 의심반, 호기심반 품고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만 의심이 무색하게 재미있었습니다. 결국, 여러 문학작품 이야기와 익숙한 대중문화 이야기, 생소한 팬티 인문학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역시 야한 건 재밌습니다.

 

인문학은 국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의미를 달리해왔습니다. 한국의 경우 문학, 역사, 철학 이 세 가지 학문으로 이해되고 미국은 예술이 포함되고, 프랑스는 사회학이, 독일은 심리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에 대중문화가 접목된 건 몇 십 년 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들만 향유하던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인문학에도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인문학 체계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성(性) 문화는 소수 중의 소수입니다.


"학문에는 어떠한 성역이나 금기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위 말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만 과연 이 음란한 인문학을 낯부끄럽지 않게 마주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작가가 훅- 들어옵니다. 시작부터 미성년자와의 섹스를 다룬 <롤리타>를 들고 나오더니 섹스를 직업의 도구이자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한 치치올리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엠마뉴엘 부인>까지 거침이 없습니다.
 
롤리타 이야기를 하며 한국의 대중문화 '걸그룹'을 롤리타 신드롬의 음악적 재현으로 미성년자인 여자아이들의 신체를 마음껏 훔쳐보게 만들어 정신적 퇴행과 집단 관음증을 정당화한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꼬집습니다. '삼촌팬'의 악플이 두려워 모두가 알지만 쉬쉬하는 걸 아주 노골적이고 음란하게 지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우스 클릭 몇번 만으로 이성의 알몸과 적나라한 성행위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휴대폰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식욕에 버금가는 성욕을 채울 수 있는 시대에 걸그룹을 보며 침을 흘리는 건 양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우린 음란한 것을 마주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까요?

 

요네하라 마리는 "부끄럽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감추라고 배웠기에 감추고 부끄러워하는게 당연하다 여기는 우리에 맞서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외치는 작가가 왠지 소수를 위한 대변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음란한 것을 통해 작가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에는 소수가 있었습니다. 성 문화 자체가 소수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 머피는 모든 것을 자기 통제하에 두고 싶어하는 수간호사에게 시종일관 맞섭니다. 정신병원에서 수간호사에게 대든다니. 무리수도 이런 무리수가 없습니다. 강요된 삶에 끊임없이 딴지를 거는 맥 머피의 모습이 어쩐지 작가의 글과 닮아 보였습니다. 계란일지라도 부지런히 치면 바위도 깨지는 날이 오겠지요. 인문학 변두리에 있는 대중문화 코드를 중심으로 끌어다 놓으려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구태의연한 관습에 끌려다니면서 입으로만 '똘레랑스' 정신을 외쳤던 나에게 어퍼컷 한 방 제대로 날리는 책 <음란한 인문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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